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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대통령 「아세안순방15일」의 뒷얘기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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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전두환대통령의 아세안5개국 순방은「예상외의 성과」라는 것이 이구동성의 평가다
이같은 성과의 이면에는 그간 꾸준히 기른 국력의 바탕이 가장 큰힘이 됐음을 실감케 했다.
국제사회에서는 힘이 정의라는 얘기도 있지만「뭔가 도울수 있다」는 자부와 겸허속에 30도가 넘는 열풍속을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쉴새없이 뛴 전대통령의 아세안 순방 15일을 되돌아본다.

<베트남상공을 우회비항>
- 이번 전대통령의 아세안순방은 새로운 기록도 많이 세웠다.
우선 우리나라 원수가 동시에 다섯나라를 순방한 것은 이번이 처음. 두번째 기착지인 발리섬의 뎬파사르공항에 한국비행기가 내린 것도 처음이었다. 개항한 날 입국하게돼 전대통령은 싱가포르의 창이국제공항에 내린 최초의 국가원수가 됐다.
대통령특별기는 국가윈수를 모신만큼 안전제일원칙에 따라 방콕에서 마닐라로갈때 비수교국인 베트남등 인도차이나상공을 피해 샴만으로 남하하여 인도차이나 반도를 우회해 동북쪽으로 다시 올라가 1시간10분 더걸리는 노선을 택했다(일반 정기노선은 베트남상공을 통과하고있음).
- 이번 순방은 다섯나라를 잇달아방문하는 국빈여행이었으므로 의전절차가 까다롭고 스케줄과 스케줄사이가 10분정도밖에 안되는것이 허다했다.
특히 첫날은 앞으로 14일동안의 빡빡한 일정을 예고라도 하듯 6시간40분간의 긴 비행끝에 자카르타국제공항에 내린후 잇단 행사에 참석하고 마지막 민속공연참관이 끝난시간은 새벽1시20분(현지시간 밤11시20분).

<회담때마다 시간길어져>
- 모든 정상회담은 당초 예정과는 달리 모조리 정상끼리만의 단독회담으로 진행된것도 특징. 회담직전까지 각료배석인지 단독회담인지 명확치 않다가 정상끼리 만나기만하면 즉각 단독회담으로 돌변, 시작했다면 예외없이 30분∼1시간30분정도 예정시간을 넘겼고 2차 한·인니정상회담과 2차 한·태수뇌회담은 예정에도 없던것이 급조됐다.
6월27일 2차 한·인니정상회담은 두 정상이 당초예정인 9홀을 13홀로까지 늘려 골프를 치고도 아쉬운감이 있어 골프복차림으로 땀도 닦지않은채 「수하르토」대통령이 전대통령을 사저로 초대해 이뤄졌다. 두대통령이 간편복으로 나타나자「수하르토」부인이 당황해 자리를 떴을 정도였고 태국과의 1차수뇌회담도 농촌시찰후 작업복차림으로 즉석에서 이루어진 것.
태국에서 「푸미폰」 국와이 일정을 갑자기 바꾸어 캄푸체아 접경지역의 농촌지역에 전대통령을 초대한 것이나「마르코스」대통령이 여간해서 남에게 공개하지 않는 대통령전용요트를 전대롱령에 내놓은것, 「수하르토」 대롱령이 전대통령의 발리항에 자신의 전용기를 내놓고 외상과 공공사업상을 수행시킨것등은 친한 친구같은 사이가 아니면 좀처럼 어려운 일. 필리핀에서는 「마르코스」대통령이 우리교민들의 리셉션을 대통령궁내에서 해도 좋다고 호의를 베풀어 이미 리샙션장소인 마닐라 호텔에 모여있던 4백여명의 교민들이 부랴부랴 10대의 대형버스에 나누어 타고 생각지도 못했던 남의 나라 대통령궁을 구경하기도했다.
- 공동성명은 거의 우리의 원안이 그대로 반영돼 극히 성공적이었다.
다소 시간이 걸리고 실랑이도 있었지만 첫순방국인 인니에서 좋은 성과를 얻자 외무부당국은 앞으로 순방할 네나라에 조금씩 안을 강화시켜 교섭을 벌이도록 훈령했다. 이번순방을 통틀어 인니와 말레이시아를 제외하고는 거의 도착하룻만에 공동성명의 대강을 확정짓는「예상외」의 좋은 페이스를 보여 공동성명 교섭총책을 맡은 공노명(외무부정무차관보) 최동진 (아주국장) 조는 여정이 길어질수룩 안색이 밝아졌다.

<외신기자들의 관심고조>
- 전대통령을 맞는 각국의 모습도 갖가지. 인니·말레이지아·싱가포르는 양국기 게양과함께 붉고 푸른 휘장을 곳곳에 내걸었고 태국·필리핀은 양국기만으로 환영을 표시. 한가지 미흡했던것은 곳곳에 게양된 태극기가운데 부정확하게 그려진 것이 상당수에 이르렀다는 사실이다.
예포가 전혀 없었던 싱가포르에비해 필리핀의 의전절차에도 예포가 많은 것이 특징. 공항에서의 환영·환송행사때는 말할것도없고 리잘기념비헌화, 무명용사비와 한국전참전비 참배때도 각각 예포와 조총을 쏘고 나팔수의 진혼극 연주가 뒤따라 의식의 장엄미를 더옥 가중. 태국당국은 환영현판등을 우리대사관에서 한글원고를 받아 스스로 그렸는데(?) 글씨라기보다 그림이 많아 우리공관원이 하루종일 페인트를 사들고 다니며 틀린곳을 바로 잡아주었다는 얘기.
- 전대통령의 이번 순방은 가는곳마다 외신기자들의 관심을 집중.
이가운데 특히 일본기자들의 관심이 두드러졌는데 한국의 대아세안외교진출이 일본의 아세안기존관계에 미칠영향때문인듯.
자카르타주재 한 일본특파원은 전대통령이아세안순방에 나선 지난달25일『오늘NHK단파방송 국제뉴스 톱기사가 전대통령의 아세안순방이었다』면서 『이만하면 일본의 관심과 시각을 알수있지 않으냐』고 했다.
홍콩에서 발행되는 시사주간지 아시아위크 (7월10일자) 는 『한국이 인니로부터 LNG를 사게된 것은 일본의 전매(monopoly)를 깨뜨리는것』 이라면서 『전대통령이 순방첫날 말한 「위대한 태평양시대의 개막을 만일 일본의 수뇌가 말했다면 틀림없이 악명높은 대동아공영권의 악몽을 되새기게 했을것』이라고 보도.

<정장않은 기자 취재불허>
- 국빈방문(State visit)인데다가 말레이지아와 태국이 입헌군주국이었기때문에 심지어 취재진에게까지 까다로운 의전이 요구됐다.
태국에서는 AP사진기자가 양복차림이 아니라는 이유로 1시간 후면 도착하는 전대통령의 태국입국취재가 거부돼 호텔에서 양복을 갈아입고 30도가 넘는 혹서속을 달려 가까스로 도착시간에 eof수 있었다.
말레이지아에서는 국왕의 공식만찬에 정장을 하지않은 사진기자는 아예 인장부터 금지됐다.
필리핀에서는 취재수칙에 남자기자는 바릉(남방셔츠같은 그들의 고유의상)이나 짙은 색깔의 양복, 여기자는 무릎길이의 드레스나 블라우스와 스커트를 입도록 요구됐다.
순방국중 취재가 가장 까다로왔던 곳은 보안이 철저했던 필리핀.
행사장이 바뀔 때마다 취재비표가 달라졌고 카메라등은 렌즈를 뽑아 보는등 사전에 일제히 점검을 받아 검증필태그를 붙여야했다.
한·비정상회담때는 먼저 공보부에 가서 비표소지자와 취재등록이된 기자가 동일인임을 확인받고는 말라카냥궁 초소에서 다시 본인임을 확인받은 뒤 일반비표이의에 확인필증을 또하나 목에 걸고야 궁안에 들어갈수 있을 정도.

<매립공사 앞당겨서 계약>
- 전대통령의 아세안순방기간중 경제계에서는 경제4단체장은 물론 그지역과 관련된 큰기업체의 최고경영자 30여명이 현지로 출장했다.
현지에 다녀온 기업인들은 이번 아세안순방으로 경제협력의 분위기가 고조됐다고 전하면서 이분위기를 어떻게 구체적인 상담으로 이끌어 ?윰캅?앞으로의 과제라고 했다.
이번 전대롱령의 방문으로 직접적인 득을 본 기업도 적지않다.
현대건설은 7, 8월로 예정했던 싱가포르정부발주의 테콩섬 매립공사계약체결이 싱가포르정부의 배려로 한달이상 앞당겨졌다.
또 현지직원들과 임금문제로 법정에까지 비화될뻔했던 외환은행 싱가포르지점의 분규도 원만한 타경을 보았다는 얘기다.
공교롭게 아세안상공회의소 연합회임시총회가 6월24일부터 7윌l일까지 마닐라에서 열려 이기간과 겹쳐 순방국에서는 현지의 중요경제인들을 만나기가 어려운 형편이었다.「하심」인도네시아상공회의소회장과 「엄기명」싱가포르상의부회장등 상당수의 현지 기업인들이 마닐라회의참석도중 귀국해 환영연에 참석, 우리기업인과 만나고 다음날 새벽 다시 마닐라로 떠나기도했다.
현지진출 .업체들의 분석으로는 아세안국가들의 일본에 대한 경계심이 우리에 대한 더 큰 환영으로 나타나는것 같다는 것이다.
「스즈끼」일본수상이 지난 5월 인도네시아를 방문했을때는 일장기를 꽂았다가 국민감정 때문에 회수했다가 도착당일에 다시 게양했으나 태극기는 전대통령방문 1주일전부터 펄럭였다.
이번 순방으로 다져진 한·아세안제국간의 실질협력의 기반은 오는10월 서울에서 열릴 한·아세안 경제지도자회의에서 구체적 결실로 나타날것같다. 그래서 이회의를 주관하는 전경련은 공동성명을 분석하는등 이회의의 성공적준비에 부심하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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