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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채색 무대 위의 인간의 희노애락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화려하고도 잔혹한 인간드라머의 장을 찾아서, 나는 왕궁의 역사 속 한 지점 깊이 들어가 보았었다. 매우 특수한 환경, 극채색의 무대에 올려 놓여진 사람들의 동태가 심히 궁금하였었다.
정쟁을 포함하여 그 정치의 양상이 나라의 운명을 어면 방향으로 몰고 잤는가에 대해서는 사서들의 기록에 따라 대충 통일된 해석이 이미 성립되어 있게 마련이다. 또한 물론 이론이 없지 않지만 그 시비를 가려 나대로의 견해를 제시하자는 것이 이 소설의 목적은 처음부터 아니었다.
나는 그 때에 살아서 움직인 사람들, 그들의 희노애락, 그들의 삶과 죽음이 그들 자신에게 어떤 의미를 가졌었나 하는데에 보다 중대한 문체가 있다고 생각했다. 만약 고맙게도 이 소설을 읽어 주신 독자 가운데 그런 면의 흥미에 초점을 맞춰주신 분이 개셨다면 작자의 영광과 기쁨은 크겠다.
내가 여기서 연구한 주요인물은 물론 영조였고 사도세자였고 혜경궁 홍씨였다. 각기 유래 없이 푸렷한 개성들이고, 서로간의 관계는 아예 비극적인 도식위에 놓여있었다.
영조대왕의 고뇌는 그자선의 강렬함 속에 있었다고 보아졌는데, 써 내려오는 중에 나는 이 터무니없는 단점을 가진 임금님이, 그러나 또 비길데 없이 우수하고 염매한 지배자였다는 사실에 거듭 감개를 깊이 하였다.
그것은 모순이고, 하나의 인격 속에 그렇게도 큰 모순을 안고 있다는 일은 불가사의였다.
허나 더욱 기묘한 것은, 그러한 인격의 실재가, 무리 없이 내게 믿어졌을 뿐이 아니라 하나의 인물상으로 떨쳐버릴 수 없는 매력조차 느끼게 하였다는 것은 무슨 일이냐는 것이다.
그는 자기의 단 한명 뿐인 아들을 손수 지휘하여 뒤주에 가두고 질식사시킨 무도한 냉혈한이다.
극악죄인으로 벌받지 않은 것은 자신이 왕이었던 때문이고, 도덕적으로 지탄받지 않은 것은 그것이 정치세계의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이를테면 그 시점의 특수성이라는 것이겠는데, 그 같은 특수성을 배제하고 고금동서에 보편적인 시점에서 바라보더라도 그는 모순 투성이었다.
결국 그렇게 생길 수도 있는 것이 인간이라는 말이고, 시간과 공간의 특수성을 초월하면 옛 인간도 시방 인간도 같다는 말이고, 다시 결국 그들의 삶과 측용의 의미, 흑은 무의미는, 우리의 그것과 다름없다는 말로 귀착이 된다.
역사와 역사적인 인물의 탐구는 그러므로 하릴없이 나와 우리의 문제로 돌아와 버리는 모양이다.
소재의 관계로 우리 궁정의 영화의 자국- 고도로 연마된 문물의 아름다움 언저리를 줄곧 서성대며 작업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의 즐거움이었다.
아름다운 언어, 아름다운풍습 등은 그러나 그 속에 지옥의 겁화를 태우며 있어 대궐의 주인들은 대부분 여기 닿아 데어죽을 운명을 지고 세상에 나있었다. 아름다움으로 장식되었다는 일은 그 비참을 덜지는 못하였다. 슬픔의 색채를 황홀하게 비쳐 보인 뿐인 것이었다.
오랫동안 읽어주시며 격려를 아끼지 않으신 독자여러분께 깊이깊이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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