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가에서…|어린이 입장에서 세상을 보아주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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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얼마 전까지 상상치도 못했던 일들이 연달아 일어났던 기억이 난다.
교황피격사건, 열차추돌 사건, 쌍둥이 사건….
여러 날이 지난 지금에도 눈에 아른거리는 건 부상한 엄마 옆에서 처절하게 울어대던 두어 살난 아기의 모습이다.
조금만 낑낑거려도 곧 응답을 해주던 엄마가 아무리 흔들어도 대답이 없을 때 그 아긴 얼마나 놀라고 무서웠을까?
이 아기보다 조금 덜할지는 모르지만 놀란건 향미·민아도 마찬가지였을 게다. 거의 2년 동안을 정들어 지내던 엄마·아빠가 갑자기 친엄마·아빠가 아니라니. 게다가 더 철렁한 일은 향미나 민아가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이해를 못한 채 일을 당하고 있다는 점이다. 차근차근 앞뒤를 가려서 알아듣게끔 얘기한다해도 분별을 못할 이 아기들에게 들이닥치는 기자들, 환한 TV카메라의 조명, 구경하러 몰려드는 사람들….모두가 아기들을 놀라게 하는데 총분했다.
며칠동안이나 쌍둥이 얘기를 쓴 기자들. 양쪽 부모와 아기들을 데려다 놓고 열심히 면담프로를 엮었던 TV관계자들, 의정부의 S병원 의사, 간호원들, 동정반 흥미반으로 설왕설래했던 어른들이 이 놀라고 어리벙벙한 아기들의 입장을 한 번이라도 생각해보았는지 의문스럽다. 심지어는 그들의 부모들조차도.『쌍둥이 부모야 건강한 애 돌려 받았으니까 괜찮지만 다른쪽 부모야 얼마나 가슴이 철렁했겠어』『그 아이가 발육이 좀 떨어진다지. 날벼락이었을 거야.』
부모들의 권리나 입장은 꽤나 고려되었고 사람들은 이 어른들의 마음을 이해하려고 애쓰고 있었다. 향미를 낳은 부모의 심정은 이렇구 저렇구, 민아를 기른 부모 심정은….
우리 모두가 생각했어야 할건 아기들의 심정이었다. 말로 표현하지 못했지만, 항변하지는 못했지만 통곡을 하고 야단을 치고 싶은 건 아기들이었다.
이 세상에 나와 처음으로 애착을 느끼게 된 사람들을 떠나 새 어른들과 다시 사귐을 시작해야 하는 두 아기는 정말 이 세상의 외톨박이였고 피해자였던 것이다. 생후 5개월만 되어도 낯을 가릴 수 있고 두돌될 때까지는 애착이 제일 많이 일어나는 발달특징을 볼 때 이 아기들에게 일어난 일은 청천벽력과 같은 얼이었다.
우리 어른들이 아기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태도를 지녔던들, 아기의 인권을 진심으로 존중하는 아동관을 가졌던들 이런 일은 아예 처음부터 일어나지도, 일어날수도 없었다. 태어난 직후 이름표도 게대로 붙여졌을 것이고 방에서 나가고 들어올 때도 조심스레 다루어졌을 것이 아닌가. 일이 터진 후에도 어른들은 아기를 놓고 큰소리를 내지 않았을 게고 어느날 갑자기 물건 바꿔가듯 아기를 바꿔가지도 않았을 것이다.
우리 어른들은 모두 이기주의자다. 자기들만 안다. 아기의 눈 높이에 맞추어 세상을 볼 줄도 모르니 작은 가슴속의 일들은 더 헤아릴 줄 모를 수밖에. 산도를 뚫고 나올 때 아프다고 소리지른 엄마의 고통은 인정하지만, 소리를 내지 못했지만 머리가 찌그러질 정도로 애쓴 아기의 고생은 모르지 않는가. 커도 마찬가지다. 무거운 책가방으로 척추가 위고 고개가 6시5분전으로 갸웃해져도 그거 하나 해결해주지 않고 있지 않은가. 재래식 변소가 싫다하여 어른들은 수세식 양변기로 바꾸었으면서도 국민학교 변소는 구멍이 뻥 뚫린 냄새나는 재래식이 아닌가. 어른들은 열심히 줄길 거리를 찾으면서 아이들이 놀면 큰일이라고 공부를 강요하지 않는가.
아이의 입장에 서서 세상을 보아줘 보자. 어린 아기의 인권이 존중될 때야 이 땅에 비로소 민주주의가 싹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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