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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구·일제 맞서 싸우다 … 두 번이나 종손 잃은 문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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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안동 권씨 부정공파 대곡문중의 종손 권대용씨가 권전의 묘소에서 선조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종손이 일본에 맞서 싸우다가 두 차례나 순국한 문중이 있다. 임진왜란 때는 이순신 장군 옆에서 전사했고, 일제강점기에는 독립운동을 하다가 목숨을 잃었다. 노블리스 오블리주(사회적 지위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의 전형이다.

 바로 안동 권씨 부정공파 대곡문중(경북 안동시 남후면 검암리) 이야기다. 현재 종손은 권대용(66·안동시 송현동)씨다.

 먼저 순국한 종손은 권대용씨의 15대 종조부(큰할아버지)가 되는 권전(1549∼1598)이다. 당시 순국으로 대가 끊기고 차남이 종손을 이으면서 대용씨에겐 종조부가 된다.

 권전은 특히 관람객 1700만 명 돌파를 눈앞에 둔 영화 ‘명량’으로 관심이 높아진 이순신 장군과 같은 배를 타고 해전을 치른 장수이기도 하다. 안동시 풍산읍 막곡리 권전의 묘소에 있는 비문과 『충무공전서』 등에 따르면 권전은 조선 중종 때 이조판서를 지낸 마애 권예(1495∼1549)의 맏손자다. 그는 종손으로 선조 15년(1582) 무과에 급제한 뒤 경남 고성에서 고을 수령인 현령을 지내다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당시 삼도수군통제사인 이순신 장군의 휘하로 들어가 만호라는 벼슬을 받고 판옥선 함장에 임명된다.

풍전등화에 처한 나라를 구한다는 일념으로 현령직을 그만두고 스스로 수군에 들어가 최일선에 나선 것이다. 해전 때마다 수군의 선봉장으로 용맹을 떨친 그는 옥포·사천·당포·명량 해전에서 혁혁한 전과를 올리다가 아장(亞將, 준장군)이 되어 장군선에 올라 지근 거리에서 이순신 장군을 보좌한다.

그는 수하 장수의 선임으로 임진왜란에서 정유재란까지 이순신 장군과 생사를 같이 했다. 12척의 판옥선으로 운명의 노량해전에 나서게 된 그는 왜군 전함 500여 척을 격파하고 끝까지 분투하다 선조 31년 11월 19일 장군과 함께 장렬히 전사한다. 그의 나이 쉰이었다.

 그로부터 300여 년이 지나 일제가 한반도를 강점하면서 또한번 이 문중 종손은 항일에 뛰어든다. 종손 권기일(1886∼1920)은 천석에 이르는 전답과 종가 재산을 팔아 독립운동 자금을 마련, 1911년 만주로 건너갔다. 만주 통화현에서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을 지낸 이상룡을 도와 독립군을 양성하는 신흥무관학교 설립 자금을 댄다. 그는 이어 독립운동 비밀요원으로 신흥무관학교를 지키던 중 일본군의 습격에 항전하다 나이 서른여섯에 순국한다.

 이후 문중은 풍비박산 났다. 손자인 현 종손 대용씨는 택시 기사를 하며 겨우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한 분은 동짓달 차가운 노량 바다에서, 또 한 분은 살을 에는 동토의 만주에서 호국영령이 되셨지만 집안에서는 두 분 다 시신을 거두지 못해 한이 맺혀 있습니다.”

 ㈜안동간고등어는 대곡문중의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종가음식 브랜드인 ‘예미정’의 첫번째 이야기로 조만간 산업화에 나설 계획이다.

송의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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