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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취재일기

요구안보다 양보안 먼저 낸 독일의 노사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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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김기찬
김기찬 기자 중앙일보 고용노동전문기자
박근혜 대통령이 1일 청와대에서 열린 노사단체 간담회에 참석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김기찬
고용노동선임기자

2008년 이맘때쯤이었다. 독일 금속노조(IG Metal)의 거점인 볼프스부르크에 자리 잡은 폴크스바겐을 방문했을 때다. 회사 견학을 시켜주던 노조 간부가 이렇게 말했다. “몇 년 안에 우리가 세계 1위 기업이 될 것이다.” 당시 폴크스바겐은 세계 3위 업체였다. 그는 “지역민과 사용자, 노조, 지방정부가 한 몸이 되어서 움직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미국 자동차 회사나 현대차에는 이런 모습이 없다고 했다. 일본 업체에선 너무 기계적이어서 인간미가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서 1위는 따놓은 당상이라는 게 이 간부의 부연설명이었다.

 올해 6월 다시 찾은 폴크스바겐은 세계 1위 기업으로서의 질주를 계속하고 있다. 이 회사 관계자는 “1990년대 초 장을 볼 만한 마트 하나 변변치 않아 유령도시 소리를 들었던 이곳이 지금은 자동차 제조뿐 아니라 문화도시로 탈바꿈했다”고 자랑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파트너 당사자들이 요구만 하지 않는다. 우리가 내놓을 것이 뭔지 먼저 생각한다. 회사는 근로자와 지역에, 노조는 회사와 지역에 뭘 기여할 수 있을지 늘 고민한다”고 덧붙였다.

 1일 박근혜 대통령이 노사정 대표 54명을 청와대로 초청해 가진 간담회에서 “민감한 현안에 대해 서로 조금씩 내려놓는 마음으로 해결책을 모색해주기 바란다”고 한 당부와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우리 사정은 그리 녹록하지 않다. 한국노총의 복귀로 노사정위원회가 재가동됐지만 아직 회의체 구성도 못 하고 있다. 회의체에 참석하는 정부 측 인사의 직급을 놓고 노동계와 정부가 갈등을 빚고 있어서다. 경영계도 “협상을 하더라도 기업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정책은 못 받는다”며 결의를 다지고 있다. 노사정이 서로 요구안을 관철시키려다 어그러지는 경우를 자주 봐 온 국민들로선 슬슬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사회적 대타협은 고사하고 갈등만 증폭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다. 2일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한국노총과 한국경영자총협회를 방문한 자리에서도 이런 걱정이 나왔다고 한다. 두 단체에서 요구사항만 잔뜩 들은 김 대표는 양보를 누차 강조했다.

 네덜란드 경제를 이끌고 있는 사회경제위원회(SER)의 노조 측 자문관인 암스테르담 자유대학의 클라라 분스트라(노동법) 교수는 지난해 8월 기자에게 이런 말을 했다. “협상이 잘 안 될 때 정부는 6개월 안에 결론을 가져오라고 요구하기도 한다. 그러면 우리는 그에 맞춘다.” 요구하기보다 양보하며 맞춰가는 ‘타협 경제’는 그 무엇보다 강력한 경쟁력이자 경제성장의 원동력이라는 점을 강조한 말이다. 경제를 살릴 골든타임이 계속 흐르고 있는 지금, 노사정이 되새겨보면 어떨까.

김기찬 고용노동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