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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자리가 없어졌어요 … 움츠러든 금융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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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금융노조가 3일 총파업에 돌입한다. 2000년 7월 정부 주도의 금융 통폐합에 반대하며 총파업을 한 지 14년 만이다. 명분은 임금 인상(6.1%)과 비정규직 차별 폐지, 정년 60세 연장이다. 이것만 보면 제조업 노조의 명분과 별반 다를 게 없다. 지난 14년간 금융노조가 늘 해왔던 요구이기도 하다. 그래도 파업사태까지 번지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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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왜 이번에는 6만5000여 명이 참여(금융노조 주장)하는 전국적인 규모의 파업을 벌이는 걸까. 속을 들여다보면 2000년 파업 때와 비슷한 고용 불안감이 도사리고 있다. 금융노조가 이번에 파업에 들어가며 임금과 같은 근로조건 개선 이외에 ‘관치금융 철폐’라는 명분을 추가한 이유다. 지난해부터 불어닥친 금융권의 구조조정 회오리가 파업의 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얘기다.

 올해 전체 고용률은 전반적으로 크게 향상됐다. 지난해 말 63.9%이던 고용률이 올 6월 말에는 65.0%로 뛰었다. 제조업과 서비스업에서 큰 약진을 보였다. 그런데 유독 금융업은 예외다. 지난해 8월 5만4000명 늘었던 취업자가 지난해 말 2만3000명으로 뚝 떨어졌다. 올해 들어선 이 숫자가 아예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4월에 1만1000명 줄었고 7월엔 무려 4만9000명이나 감소했다. 2009년 금융위기로 5만5000명이 준 이래 가장 큰 폭이다.

 금융권이 고용의 ‘약한 고리’가 된 것은 수익성 악화 때문이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금융권의 부가가치 비중은 2008년 6.5%에 달했으나 지난해에는 5.5%로 줄었다. 같은 기간 부가가치액은 3조360억원에서 마이너스 4조4350억원으로 반전됐다. 지난해 11월 금융위원회가 “금융권의 GDP 대비 부가가치 비중을 10년 안에 10%대로 끌어올리겠다”고 한 발표가 무색한 수치다.

 이런 흐름이 쉽게 멈출 것 같지도 않다. 고용노동부 정형우 노동시장정책관은 “금융시장이 포화인 데다 온라인 거래가 증가하는 등 구조적 요인이 금융권 고용률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6월 전체 입출금 거래에서 창구를 통해 이뤄진 것은 11.2%에 불과했다(한국은행). 한 시중은행 인사담당자는 “창구거래 비중이 크게 준 마당에 효율성 측면에선 점포와 인력을 예전처럼 운용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은행권에선 지난 1년 새 전체의 5%에 해당하는 269개 점포가 폐쇄됐다. 인력도 덩달아 감소했다. 씨티은행은 203개이던 점포를 134개로 줄이면서 전체의 15.2%에 달하는 642명을 감원했다. 동양증권에서 500여 명이 회사를 떠났고, 삼성증권에서도 희망퇴직 형태로 300명이 짐을 쌌다. 대신증권은 창사 이래 첫 희망퇴직을 실시해 302명을 집으로 돌려보냈다. 삼성생명에선 희망퇴직이나 자회사 전출로 1000여 명을 감축했다. 이렇게 최근 1년 새 줄어든 인원이 지난 6월 말 현재 은행권 1575명, 증권 3913명, 생명보험 2224명에 이른다. 정식 직원이 아닌 사람들의 피해는 훨씬 크다. 은행 대출모집인과 보험설계사만 해도 지난해 2분기에 비해 3만 명가량 줄었다.

 고용률 70% 달성에 사활을 걸고 있는 정부도 바빠졌다. 고용부 권기섭 고용정책총괄과장은 “이들은 대부분 대졸 이상 학력자인 데다 40~50대가 많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2일 임금피크제를 도입하면 임금의 일정액을 보전해주고, 근로자 개인에겐 200만원 한도로 전직지원 프로그램 지원금을 지급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금융권 고용지원 대책을 내놨다.

 하지만 이런 대책에 대한 반론도 만만찮다. 금융노조 관계자는 “금융권에서 다른 금융권으로 이직하거나 중소기업으로 옮길 수 있는 직무 개발이 돼 있지 않다”며 “전직지원 프로그램을 갑자기 도입한다고 재취업이 되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회사의 잘못을 인력 구조조정으로 메우려 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권순원(경영학) 숙명여대 교수는 “금융권의 수익이 악화된 배경에는 저금리 장기화 외에도 주식이나 파생상품과 같은 비이자손실(18조7000억원)이 있다”며 “이런 거대 손실을 메우기 위해 그나마 안정적인 이자수익 부문의 사업을 축소하려고 점포와 직원 구조조정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2012년 말 기준으로 우리나라 성인 인구 10만 명당 점포 수는 18.4개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25개에 못 미친다”며 “단기적인 비용 조정을 목적으로 구조조정을 서두르기보다 숙련된 금융인력에 대한 투자와 안정된 근로여건 보장을 바탕으로 경영혁신을 하는 것이 근본적 대안”이라고 지적했다.

 김기찬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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