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성시대 맞이하는 아마추어 연주자…프로도 위협하는 실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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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5ㆍ6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53개 오케스트라ㆍ앙상블이 무대에 올랐다. 연주자는 총 2200여 명. 모두 음악이 아닌 직업을 가진 사람들, 즉 아마추어다.

이날 무대는 세종문화회관 주최 ‘생활예술 오케스트라 축제’의 오디션이었다. 계획은 10여 개 단체를 추려 연주회를 여는 것이었다. 하지만 계획을 바꿨다. 참가팀 모두 무대에 올리기로 했다.

세종문화회관 공연기획팀 김우경씨는 “참가 단체가 예상보다 많았고, 실력과 열정이 아까워 규모를 확대하기로 결정했다”고 전했다. 축제는 다음달 15~18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다. 중도에 포기한 두 팀을 제외한 51개 팀 2120명이 무대에 오른다.

◇베토벤 교향곡 전곡 도전=아마추어 연주자들이 전성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우선 숫자가 많다. 이달 12~18일 열리는 대한민국 국제관악제에도 아마추어가 몰렸다. 주최측은 마지막 날 관객 참여를 기획했다. 시민들이 각자 관악기를 가져와 객석에서 연주하며 무대 위 공연에 합류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참가 신청을 하면 베토벤 9번 교향곡에 나오는 ‘환희의 송가’와 아리랑 악보를 미리 받을 수 있다. 악기 없이 합창에 참여할 수도 있다. 현재까지 신청자는 600여 명. 주최측은 “눈에 보이지 않던 아마추어 인구를 확인한 것”이라고 풀이했다.

실력도 만만치 않다. 세종문화회관 오디션 심사를 맡았던 류태형 음악 칼럼니스트는 “편차는 있었지만 프로 오케스트라를 위협하는 실력도 발견했다”며 “프로 단원이 이들의 연주를 들으면 긴장하게 될 것”이라고 평했다.

가장 좋은 예가 서울시민교향악단이다. 2001년 창단한 이 단체는 2012년 베토벤 교향곡 전곡(9곡) 연주를 시작했다. 프로 오케스트라도 쉽지 않은 도전이다. 2년 동안 세 번에 걸쳐 다섯 곡 연주를 마쳤다. 손정근(55ㆍ회사원) 단장은 “아마추어지만 대부분 10년 이상 악기를 다뤘다”며 “교향악단 실력을 정교하게 다듬을 때라고 생각해 베토벤 전곡을 시작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부분 아마추어 오케스트라는 매주 한 번 저녁에 연습을 한다. 매년 1~2회 공연을 기본으로 연다. 규칙도 엄격하다. 연습에 60% 이상 참여하지 않으면 공연에 서지 못한다. 매달 6만~7만원씩 회비를 모아 연습실ㆍ공연장을 빌린다. 입단할 때 오디션을 보는 곳도 많다. 해외 지부를 둔 곳까지 나왔다. 대구에서 출발한 베누스토 오케스트라가 호주ㆍ캐나다에 지부를 설치했다.

◇지역ㆍ직장ㆍ나이따라 모여=서울시민교향악단은 ‘테헤란벨리 심포니’로 출발했다. 이 지역 직장인의 모임이었다가 범위가 넓어지면서 이름을 바꿨다. 이처럼 지역별로 모이는 오케스트라가 많다. 김포 심포니, 송파 뮤즈 등이 활동 중이다. 또 현대자동차ㆍ서울메트로처럼 직장별로 모인 단체도 있다. 같은 연령대가 함께하기도 한다. 1999년 창단한 무궁화 시니어 윈드오케스트라는 60명 중 10명이 80대다. 나머지는 대부분 60~70대다. 막내인 허면회(56) 총무는 “노인 아마추어들이지만 실력만큼은 프로 젊은이 못지 않다”고 자부했다.

지금껏 아마추어 단체들은 각자 활동했다. 하지만 변화의 조짐이 보인다. 51개 연주단체는 세종문화회관 축제를 계기로 연합회를 결성했다. 마론윈드 오케스트라의 김택연(44ㆍ교사) 사무국장은 “연주자 교류, 연습 장소 공유 등을 할 수 있을 것”이라며 “아마추어 네트워크가 앞으로 음악계의 힘이 될 수 있으리라 본다”고 기대했다.

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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