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사설 속으로] 오늘의 논점 - 박 대통령 8·15 경축사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0면

중앙일보와 한겨레 사설을 비교·분석하는 두 언론사의 공동지면입니다. 신문은 세상을 보는 창(窓)입니다. 특히 사설은 그 신문이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가장 잘 드러냅니다. 서로 다른 시각을 지닌 두 신문사의 사설을 비교해 읽으면 세상을 통찰하는 보다 폭넓은 시각을 키울 수 있을 겁니다.

<8월 16일자 26면>
박 대통령의 8·15 대북 제안, 작지만 의미 있다

QR코드로 보는 관계기사 <중앙일보>

박근혜 대통령이 어제 발표한 광복절 69주년 경축사에서 귀가 번쩍 뜨일 만한 내용은 없었다. 전체적으로 신중하고 차분한 기조였다. 남북관계와 한·일 관계의 경색을 푸는 돌파구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럼에도 몇 가지 의미 있는 제안은 있었다. 남북이 만나 합의만 하면 당장 해볼 수 있는 작은 사업들이 구체적으로 제시됐다. 이번 경축사를 계기로 남북관계나 한·일 관계가 바로 달라지진 않더라도 변할 수 있는 여지는 생겼다고 본다. 

박 대통령이 제안한 남북 협력사업들은 ‘드레스덴 구상’의 연장선에 있는 것들이다. 한반도 생태계의 연결과 복원, 남북을 가로지르는 하천과 산림의 공동관리, 문화유산의 공동발굴과 보존, 민생인프라 협력을 통한 생활환경 개선 등은 장기적으로 통일 준비에 필요한 사업들이다. 박 대통령이 “지금 시작할 수 있는 작은 사업부터 하나하나 추진해 나가겠다”고 밝혔듯이 북한 핵 문제나 5·24 조치 등과 상관없이 지금이라도 착수할 수 있는 사업들이다.

문제는 북한의 호응이다. ‘드레스덴 구상’을 흡수통일 의도라고 강력히 반발해온 북한이 박 대통령이 내민 손을 과연 잡겠느냐는 것이다. 우리는 못 잡을 이유가 없다고 본다. 환경·민생·문화 협력사업은 흡수통일과 무관하다. 더구나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 스스로 화해·협력을 통한 남북관계 개선 의지를 거듭 천명해 왔다. 그렇다면 북한은 작지만 의미 있는 박 대통령의 제안에 적극 호응해야 한다. 우선 10월 평창에서 열리는 유엔 생물다양성협약 당사국 총회에 대표단을 파견하고, 광복 70주년을 남북이 공동 기념하는 문화행사 개최 논의에 적극 참여할 것을 촉구한다. 

 남북관계의 근본적 개선을 위해서는 북한 핵 문제가 풀려야 한다. 그러나 핵 문제는 남북한만의 문제도 아니고, 단시일 내 해결될 수 있는 사안도 아니다. 그렇다고 남북관계를 지금 상태로 방치할 수는 없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남북 고위급 접촉이다. 현 단계에서라도 서로 협력할 수 있는 것들은 해야 한다. 그것이 핵 문제 해결에도 도움이 된다. 정부는 2차 고위급 접촉을 제안해 놓고 있다. 박 대통령도 경축사에서 북한의 수락을 촉구했다. 북한은 교황 방한에 맞춰 방사포 로켓을 쏘는 도발적 자세에서 벗어나 고위급 접촉에 나와야 한다. 북한이 인천 아시안게임 참가에 적극적인 만큼 정부도 선수단은 물론이고 응원단까지 북측이 원하는 대로 다 받아주는 통 큰 자세를 보임으로써 작지만 의미 있는 협력 의지의 진정성을 보여주기 바란다.

군대 위안부 문제의 해결이 한·일 관계를 푸는 열쇠라는 기존 입장에서 박 대통령이 달라진 것은 없지만 전에 비해 어조는 많이 부드러워졌다. 일본은 위안부 문제 해결에 성의를 보임으로써 내년으로 다가온 한·일 국교정상화 50주년을 양국이 함께 축하하고 기념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한겨레<8월 16일자 23면>
알맹이 빠진 광복절 대북·대일 메시지

QR코드로 보는 관계기사 <한겨레>

박근혜 대통령이 광복절 경축사에서 경색된 남북관계를 풀 수 있는 제안을 할 것으로 기대됐으나 그렇지가 못했다. 과거사 문제 해결에 소극적인 일본에 대해서도 원칙적인 언급에 그쳤다. 최대 정치현안인 세월호 특별법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군 폭력과 경제 활성화 등 다른 국내 사안과 관련해서도 기존 발언을 되풀이했다. 

 북한과 관련된 새로운 내용은 하천·산림 관리 공동협력 사업, 북한 대표단의 10월 평창 ‘생물다양성협약 당사국 총회’ 참석 초청, 마을 생활환경 개선 협력, 내년 광복 70돌 공동기념 문화사업 준비 등으로 요약된다. 모두 남북관계의 큰 흐름과는 거리가 있는 내용이다. 최대 관심사인 5·24 조치 해제 문제와 금강산관광 재개 등은 비켜가겠다는 의도로 읽힌다. 최근 북한이 거듭 비판하는 체제통일(흡수통일) 우려를 덜어주기 위한 언급도 없었다. 이래서는 남북관계 전환의 계기가 만들어지기 어렵다. 박 대통령은 “통일을 준비하는 일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대적 소명”이라고 했지만, 남북관계를 풀지 못하는 한 공허한 수사일 뿐이다. 남북관계가 진전되지 않으면 북한이 핵을 포기할 가능성도 줄어든다.

일본에 대해서는 내년이 국교정상화 50주년임을 상기시키면서 위안부 문제 등 과거사의 상처를 치유하려는 노력과 결단을 촉구했다. 하지만 이날 일본 정부 각료들과 80여명의 국회의원이 보란듯이 야스쿠니신사에 참배했다. 아베 신조 총리는 참배는 하지 않았으나 자신의 이름으로 신사에 공물료를 납부했다. 박 대통령은 대일 비판의 톤을 낮췄으나 일본은 들은 체도 하지 않은 것이다.

광복절 경축사는 대북·대일 정책의 새 방향을 제시하는 통로로 나라 안팎의 주목을 받아왔다. 특히 올해는 그런 필요성이 더 큰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알맹이가 빠진 경축사가 된 것은 문제의식과 전략적 사고가 부족했기 때문으로 볼 수밖에 없다.

정부는 남북관계에서 기존 접근방식만을 고집할 게 아니라 북한이 호응할 수 있는 실질적 조처들을 폭넓게 검토해야 한다. 특히 남북관계의 기본이 교류·협력임을 인정한다면 5·24 조치 완화·해제와 금강산 관광 재개 문제를 피해갈 수는 없다. 박 대통령이 언급한 환경·민생·문화 협력도 상당 부분 5·24 조치와 충돌한다. 정부가 지금과 같은 태도를 고수한다면 지난 11일 제안한 고위급 접촉이 이뤄지더라도 눈에 띄는 성과를 내기는 쉽지 않다

[논리 vs 논리] 중앙 “당장 할 수 있는 사업 제시” 한겨레 “북 호응할 조치 부족”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는 국민들에게 그 해 후반기 국정 운영의 방향을 제시하고 북한과 일본 등 주변국에 새로운 메시지를 전달하는 기회로 활용돼 왔다. 그러나 올 해 광복절 경축사에는 귀가 번쩍 뜨일 만한 내용이나 경색된 남북관계를 풀 수 있는 실질적인 제안 등이 담기지 않았다는게 대체적인 평가이다. 이 점에서는 <중앙>과 <한겨레> 두 신문이 같은 입장이다. 다만 경축사에 담긴 구체적인 내용이나 의미를 평가하는 부분에서는 분명하게 다른 시각차를 드러낸다. <중앙>은 전체적으로 신중하고 차분한 기조였고 작지만 몇가지 의미있는 제안은 있었다는 평가인 반면, <한겨레>는 알맹이가 빠진 전반적으로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실망스런 경축사였다는 주장이다. <중앙>은 남북이 만나 합의만 하면 당장 해볼 수 있는 작은 사업들이 구체적으로 제시되었다면서 이를 계기로 남북관계나 한·일 관계가 바로 달라지지는 않더라도 변할 수 있는 여지는 생겼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했다. 반면, <한겨레>는 남북관계에 대한 전향적인 제안이 없는 것은 물론이고 과거사 문제 해결에 소극적인 일본에 대해서도 원칙적인 언급에 그쳤으며 최대 정치 현안인 세월호 특별법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는 점 등을 들어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두 신문의 광복절 69주년 경축사를 통해 박대통령이 제안한 남북 협력사업을 바라보는 시각차는 분명하다. <중앙>은 ‘드레스덴 구상’의 연장선상에 있는 내용들로 한반도 생태계의 연결과 복원, 남북을 가로지르는 하천과 산림의 공동관리, 문화유산의 공동발굴과 보존, 민생인프라 협력을 통한 생활환경 개선 등 장기적으로 통일을 위해 준비해 나가야할 사업들이기 때문에 북한 핵 문제나 5·24 조치 등과 상관없이 지금이라도 착수할 수 있는 실현 가능한 사업 제안이라는 입장이다. 북한의 호응만 있으면 당장이라도 시행할 수 있는 내용들로 북한의 적극적인 호응을 촉구하고 있다. 이에 반해, <한겨레>는 이러한 제안들이 모두 남북관계의 큰 흐름과는 거리가 있는 내용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최대 관심사인 5·24 조치 해제 문제와 금강산관광 재개 등을 비켜가겠다는 의도로 읽히며 최근 북한이 거듭 비판하는 체제통일 우려를 덜어주기 위한 어떠한 언급도 없었다는 점을 들고 있다. 박대통령이 ‘통일을 준비하는 일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대적 소명’이라고 했지만 남북관계를 풀지 못하는 한 공허한 수사에 불과하고 남북관계가 진전되지 않으면 북한이 핵을 포기할 가능성도 줄어든다는 입장이다. 일본에 대한 언급과 관련해서는 두 신문 모두 논조가 비슷하다. <중앙>은 군대 위안부 문제의 해결이 한·일 관계를 푸는 열쇠라는 기존 입장에서 박대통령이 달라진 것은 없지만 전해 비해 어조가 많이 부드러워졌다는 평가를 했다. <한겨레> 역시 박대통령이 대일 비판의 톤은 낮췄으나 일본의 반응이 없다는 주장이다. 

김기태
호남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대안 제시에 있어서 두 신문은 미묘한 시각차를 나타낸다. <중앙>은 남북관계의 근본적 개선을 위해서는 북한 핵 문제가 풀려야 하지만 핵 문제는 남북한 만의 문제도 아니고 단시일 내 해결할 수 있는 사안도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지금 상태로 방치할 수도 없는 일이기 때문에 당장 필요한 것이 남북 고위급 접촉이고 이를 위해 정부가 이미 제안해 놓은 2차 고위급 접촉에 북한의 수락을 촉구하고 있다. 북한에 대해 교황 방한에 맞춰 방사포 로켓을 쏘는 등 도발적 자세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점도 아울러 강조하고 있다. 반면, <한겨레>는 남북관계에서 기존 접근방식만을 고집할 게 아니라 북한이 호응할 수 있는 실질적 조처들을 폭넓게 검토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특히 남북관계의 기본이 교류·협력임을 인정한다면 5·24 조치 완화·해제와 금강산 관광 재개 문제를 피해갈 수 없는데, 박대통령이 언급한 환경·민생·문화 협력도 상당 부분 5·24 조치와 충돌한다는 것이다. 정부가 지금과 같은 태도를 고수한다면 우리 정부가 이미 제안한 고위급 접촉이 이뤄지더라도 눈에 띄는 성과를 내기는 쉽지 않다는 전망까지 덧붙이고 있다. 결국 남북관계 개선의 전제 조건으로 북한의 입장 변화와 우리의 접촉 제안을 받아들이라는 <중앙>의 주장과 먼저 북한이 받아들일 수 있는 조처들을 선제적으로 내놓고 남북대화를 유도하는 적극적인 통일 정책이 필요하다는 <한겨레>의 주장으로 나뉜다. 다만, <중앙>이 우리 정부에 대해 ‘북한이 인천 아시안게임 참가에 적극적인 만큼 정부도 선수단은 물론이고 응원단까지 북측이 원하는대로 다 받아주는 등 통큰 자세를 보임으로써 작지만 의미있는 협력 의지의 진정성을 보여주기 바란다’고 언급한 점은 주목할 만 하다.

김기태 호남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