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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 수요관리 돕는 스마트그리드 시장 이끈다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옴니시스템 박혜린 회장

산업통상자원부가 6개 에너지 신산업을 발굴해 미래산업으로 육성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이 6개 산업은 수요관리 시장 창출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관건은 정부와 산업계가 얼마나 힘을 합쳐 시장을 만들 수 있느냐다.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과 시장을 성공적으로 형성하기 위해 민관이 힘을 모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가운데, 에너지 신산업의 롤 모델이 된 기업도 속속 탄생하고 있다. 그중엔 여성 CEO가 이끄는 옴니시스템, IDRS(Intergrated Demand Response Service)가 있다. 근육질 문화가 지배했던 에너지 업계에서 보기 힘든 우먼 파워의 성공 사례다. 옴니시스템의 박혜린(46) 회장, IDRS의 강혜정(47) 사장을 만나 에너지 신산업의 현재·미래를 들었다.

옴니시스템 박혜린 회장

“싱가포르·베트남 이어 중국 진출 개도국에 한국형 스마트그리드 보급할 것”

지난 7월,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제18회 올해의 에너지위너상’에서 옴니시스템의 ‘실시간 양방향 전력량계’가 융합부문 에너지위너상을 수상했다. 옴니시스템은 스마트그리드 관련 시장에서 선두를 차지하고 있는 디지털 전력량계 생산업체다. 옴니시스템을 이끄는 박혜린 회장은 수 차례의 인수합병(M&A)을 통해 기업을 키워온 ‘M&A의 귀재’로 잘 알려져 있다. 한국뿐 아니라 중국·베트남의 스마트그리드 신도시 개발사업에 진출하는 등 황무지 같았던 스마트그리드 시장에서 여성 CEO의 성공신화를 써내려 가고 있다.

작고 왜소한 체구. 앳돼 보이는 조그마한 얼굴. 박혜린 회장의 첫인상은 여러 개의 기업을 지휘하는 ‘회장님’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인터뷰를 시작하자마자 다소곳한 인상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말 한마디 한마디마다 호탕함과 강단이 느껴지는, 의심할 여지없는 ‘보스’였다. 23세부터 사업을 시작한 박 회장은 현재 상장업체 2곳을 포함해 신용카드 제조업체인 바이오스마트, 의료장비업체인 AMS(Advanced Medical Science) 등 10여 개 기업을 이끌고 있다. 명실상부한 여장부인 셈이다. 박 회장은 “산전수전은 물론 공중전까지 다 겪으며 여기까지 왔죠”라며 웃음을 터뜨렸다. 자동차 타이어 가게부터 스마트그리드까지 그의 사업 스토리가 펼쳐졌다.

-처음 시작했던 사업이 타이어 판매업이라고 들었다. 어떻게 장사를 시작했나.
“대학 졸업 후 외국계 IT기업에 합격했지만 뭔가 새로운 일에 도전해 보고 싶어 창업을 생각했다. 당시 내가 살던 동네(송파구 방이동)에서 가장 잘사는 사람이 수입 타이어 도매업을 하고 있었다. ‘저 장사가 돈이 되겠다’는 생각에 1991년, 스물셋의 나이로 서울 삼성동에 매장을 열고 수입 타이어를 팔기 시작했다. 호기롭게 시작했지만 여자가 타이어를 파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그 분야에서 여자를 찾아보기 힘들다. 일단 사업을 시작하니 영업망이 가장 중요했다. 남자들을 상대해야 하는 전쟁터에서 영업 능력을 키우기 위해 수입 타이어에 대해 밤새워 공부했다. 그때 쌓은 인맥이 지금까지 사업의 밑거름이 되고 있다.”

-그러다 제조업에 뛰어들었지 않나.
“제조업을 시작한 것은 우연한 계기였다. 2003년, 당시 갖고 있던 건물에 ‘바이오스마트’라는 신용카드 제조 기업이 입주해 있었는데, 경영권 분쟁을 겪고 있었다. 건물주이다 보니 회사 사람들과 친하고, 속사정을 잘 알고 있었다. 그 회사 사람들이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는 것을 그냥 두고 볼 수 없어 덜컥 회사를 인수했다. 인수 후 영업을 직접 챙기며 연구개발에 힘을 쏟아부었다. 회사가 안정화 단계에 접어들어 현재는 국내 시장 점유율 60%의 1위 기업으로 성장했다. 지난해 매출 400억원, 영업이익 30억원을 기록했다.”

-스마트그리드 사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2009년에 옴니시스템을 인수하면서 사업에 뛰어들었다. 우연히 ‘스마트그리드’라는 사업의 가치와 발전 방향에 대한 정보를 듣게 됐는데, 충분히 투자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했다. 신용카드 제조업과도 관련시켜 시장을 확대하고 싶은 욕심도 있었다. 지금은 계량기에 카드리더기를 삽입해 신용카드로 전기요금을 선불 결제하는 제품까지 개발한 상태다.”

-기업을 인수합병할 때 본인만의 철칙이 있나.
“사업으로 돈을 버는 것은 ‘천운’이다. 나는 과한 꿈을 꾸지 않는다. 많은 사람이 100원을 투자해 200원을 벌려고 하지만 나는 100원을 투자해 100원을 지키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그 때문에 투자를 결정할 때는 철저히 7대3 법칙을 따른다. 100원을 투자해 30원까지 손해를 감수할 수 있다고 판단되면 사업을 시작한다. 사업을 하다 보면 10원을 버려야 할 때 신호가 온다. 20원을 버려야 할 때가 되면 정리를 준비해야 한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20원을 손해봐도 포기하지 못하고, 200원이 될 거라는 희망을 갖는다. 사업은 ‘버리기’를 잘해야 한다. 지금까지 기업을 키워오면서 손에 넣은 것도 많지만 버리고 포기한 게 더 많았다.”

-스마트그리드 사업 분야는 남성들이 주도하고 있다. 여성 CEO로서 힘든 점은 없나.
“사업에 몰두하다 보니 결혼 시기를 놓쳤다. 평범한 여자의 삶은 포기했지만 사업을 하면서 누구보다 큰 행복을 느낀다. 다만 불필요한 구설수나 루머에 휘말릴 때는 괴롭기도 했다. 사업가로서 능력을 평가할 때 여자·남자로 구분해서 말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스마트그리드 사업에서는 더욱 더 그렇다. 그동안 수많은 회사가 스마트그리드 사업에 도전했다가 실패하는 모습을 봤다. 과거로부터 축적해 온 기술력은 물론 위기관리 능력과 인내심이 필요한 사업이다. 에너지 패러다임이 곧 산업 패러다임이다.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면 실패할 수밖에 없다.”

-옴니시스템의 스마트그리드 시스템이 우리나라 신축 빌딩의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그 요인은 뭔가.
“지난해 매출이 500억원이었다. 올해는 600억원을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연구소에 많이 투자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옴니시스템을 인수한 후 가장 중점을 둔 것은 바로 ‘기술력 강화’였다. 초소형 전자식 전력량계부터 실시간 양방향 전력량계에 이르기까지 최첨단 제품 개발에 주력해 왔다. 그러나 단순히 제품만 잘 만들어서 이룬 성과는 아니다. 관리사무소와 세대 사이에 전용 통신선을 연결해 각 세대에서 사용하는 에너지 사용량을 원격으로 검침해 납입고지서 및 영수증까지 발행해 주는 종합관리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타워팰리스, 여의도 국제금융센터를 비롯해 싱가포르의 창이공항과 마리나베이샌즈타워, 베트남의 하노이 경남랜드마크 등이 옴니시스템의 스마트그리드 시스템으로 움직이고 있다.“

-중국의 스마트그리드 사업에도 참여한다는데.
“중국에선 인구 100만 명 이상의 에너지절약형 친환경 도시를 200곳 이상 건설하는 스마트시티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스마트그리드를 비롯한 정보기술(IT) 부문은 약 120조원 규모인데 2020년까지 사업이 진행될 예정이다. 지난해 7월 중국 정부의 스마트그리드 신도시 건설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는 ISS(아이소프트스톤)그룹과 조인트벤처 설립에 합의했다. ISS와 협력해 신도시 내 전력·수도·가스 등을 통제하는 인프라를 구축할 예정이다. 이 프로젝트에 본격 참여하게 되면서 장기적인 매출처를 확보하게 됐다.”

-향후 계획은.
“아직 전력 인프라가 갖춰지지 않은 나라에서 더 많은 사업 기회가 있을 것으로 전망한다. 개도국 중에선 전력량계, 즉 미터기조차 제대로 보급되지 않은 나라가 많다. 이런 국가에서 인프라 구축을 시작할 때 스마트그리드 시스템을 채택하도록 권유해 사업을 확장해 나갈 계획이다. 이미 베트남을 시작으로 해외 진출의 발판을 마련해 놨다. 우리나라의 스마트그리드 시스템을 여러 나라에 수출하는 데 힘을 쏟을 계획이다.”


IDRS 강혜정 사장

“백화점·리조트 300곳 넘는 사업장 지능형 에너지 수요관리 맡아”

강혜정 사장이 이끄는 IDRS는 ‘부하관리 사업의 넘버원 기업’을 표방하는 전력수요관리 업체다. 지능형 수요관리 시장 초창기부터 공격적인 투자를 이어가며 KT, 벽산파워와 함께 지능형 수요관리 3강(强) 기업으로 인정받고 있다.

?지난 4월, 전기사업법이 개정되면서 수요관리사업자가 발전사업자와 대등한 위치에서 시장경쟁을 하게 됨에 따라 수요관리 시장 판도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IDRS 역시 한 단계 더 발전할 계기를 맞이했다. 강혜정 사장은 부하관리 사업자들이 모여 창립한 ‘수요관리협회’ 회장을 맡는 등 수요관리사업 활성화에 앞장서고 있다.

 -2010년 전력수요관리 사업을 시작한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
“20년 가까이 IT기업을 운영하고 있다. IT기업이 할 수 있는 융·복합 솔루션에 대해 알아보다가 4년 전 수요관리사업을 알게 됐다. 에너지 시장이 공급 중심에서 수요 중심으로 변화하고, 효율적인 전력소비를 이끌 수 있는 방법이 ‘수요관리’에 있다는 것을 확신하게 된 후 사업에 뛰어들었다. 수요관리 사업자는 전력거래소와 수요관리 참여 사업장 사이에서 연결고리 역할을 한다. 단순한 부하관리 사업자가 아니라 사업장의 에너지 절약을 컨설팅하고, ICT 기반 인프라를 구축하는 등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며 시장을 확장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에너지 신사업 분야에서 여성을 찾아보기 힘들다. 어려운 점은 없었나.
“처음 사업에 뛰어들면서 우여곡절이 많았다. 지능형 수요관리라는 개념 자체를 모르는 곳이 대부분이었다. ‘맨땅에 헤딩’하는 심정으로 빌딩·마트 등 사업장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설득했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문전박대를 당한 적도 여러 번이었다. 하지만 사업 발전 가능성을 믿고 포기하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전력을 아끼는 동시에 돈도 벌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한 사업장들이 동참하기 시작했다. 현재 마트·백화점·리조트 등 300곳이 넘는 사업장의 지능형 수요관리를 맡고 있다. 2012, 2013년 두 해 연속 30억원 이상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내년에는 30억원 이상의 이익을 예상하고 있다.”

-20년 넘는 동안 사업에 몰두하고 있다. 가정과 일,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
“20대 후반부터 사업을 시작하면서 일에 몰두하며 살았다. 사업체를 운영하면서 가정을 챙기는 것이 쉽진 않았다. 특히 딸이 태어난 후 친정 부모님, 시부모님께 신세를 많이 졌다. 육아 문제에 직면할 때마다 힘들었지만, ‘내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이 아이에게 가장 좋은 교육’이라는 생각으로 고비를 이겨냈다. 엄마가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면 아이 역시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으로 자랄 것이라고 믿는다.”

-전력 수요관리 사업의 전망은.
“전기사업법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네가와트 사업이 본격적으로 활성화될 것으로 기대한다. 수요관리 사업자는 단순한 부하관리 사업자 역할에서 벗어나 스마트그리드 사업을 이끄는 에너지 솔루션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다. 다만, 현 시점에서는 안정적인 사업기반을 확보하는 게 중요하다. 정부의 정책적인 지원은 물론 관련 기업들의 협력이 필요하다. 시장이 초창기인 만큼 기업들이 정보와 사업 노하우를 공유하면서 역량을 키워야 한다. 그래야만 수요관리 자원이 발전 자원과 동등한 믿을 만한 자원이라는 인식을 확산시킬 수 있다.”

글=신도희 기자 toy@joongang.co.kr, 사진=김수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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