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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군은 총보다 카메라를 더 무서워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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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덜키

2011년 3월 탈랄 덜키(37)는 그리스에 있었다. 2003년 아테네시네마스쿨을 졸업한 영화감독이다. 몇 개의 픽션영화와 짧은 다큐멘터리 하나를 찍은 경험이 있다. 그의 고향은 시리아의 수도 다마스쿠스. 타지에서 조국의 내전 발발 소식을 들었다.

 카메라를 다룰 수 있었던 그는 시리아로 향했다. 시리아 정부는 자국 언론의 보도를 철저히 차단했다. 로이터·CNN 등 해외 언론의 리포터로 계약해 전장을 누볐다. “대학살은 충분히 보도했고 다른 건 없느냐”고 재촉하던 언론의 관심은 날이 갈수록 시들해졌다.

 장편 다큐멘터리 ‘홈스는 불타고 있다(원제 Return to Homs)’는 그렇게 탄생했다. 내전이 가장 치열했던 시리아의 도시 홈스가 배경이다. 영화는 시리아 축구 국가대표팀 골키퍼인 청년 바셋(당시 19세)의 감정이 흘러가는 대로 따라간다. 발랄하던 바셋은 내전으로 친구들이 불타 사라지는 참화 속에서 열정적 투사로 변신한다. 덜키는 동료 미디어 활동가 오사마와 함께 시민군의 내면까지 카메라에 담았다. 2011년 8월부터 2년간 시리아 내전을 생생하게 담은 이 영화는 올해 선댄스영화제 다큐멘터리 부문 그랑프리를 수상했다.

 25일 열린 EBS국제다큐영화제에 참석하기 위해 방한한 덜키는 어떤 순간을 얘기하든 투명하게 반짝이는 눈망울이 인상적이었다. 그는 자신을 미디어 활동가라고 소개했다. 총 대신 카메라를 들고 전장에서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생생히 고발하고 있어서다.

 시리아 정부군은 시민군의 총보다 이들의 카메라를 더 무서워했다. 시리아 내전을 찍던 미디어 활동가의 70%가 전장에서 숨졌다. 덜키는 죽은 친구의 휴대전화를 사용했고 ‘아부 유세프’라는 가명으로 활동했다. 덜키는 “카메라를 들고 시리아를 누비는 건 자살행위나 마찬가지다. 모든 스나이퍼의 첫 번째 타깃이 된다”고 했다.

 하지만 다큐에 나오는 이들은 의외로 평온해 보인다. 총을 든 앳된 젊은이들은 눈앞에서 동료가 죽어나가는 전투 앞에서도 활기를 잃지 않는다. 새 세상에 대한 열망과 죽음에 대한 공포가 스크린에 고스란히 포개진다.

 덜키는 이렇게 말했다. “오늘은 죽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동시에 나는 내세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위험성을 늘 염두에 뒀다. 저격수가 쏘기 좋은 타이밍이 있는데 그 1초보다 늘 0.5초 앞서 달려나가려고 했다.”

 하여 홈스에서 죽음과 삶은 0.5초 차이다. 영화에 등장한 동료 오사마는 2012년 8월 홈스에서 폭격에 다친 채 붙잡혔고 투옥됐다. 생사를 확인할 수 없다고 한다.

 “진실을 밝히고 정의를 구현하는 건 좋은 일이지만 늘 죽음의 그림자가 함께한다. 어디를 가든, 누구를 만나든, 어떤 직업이든, 무엇을 믿든.” 그는 현재 독일에서 살고 있다. 가족은 터키에 있다. 더 안전한 장소를 찾고 있다고 했다. 잊고 있는 사실이지만 시리아 내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정봉 기자

◆시리아 내전=2011년 3월 발발했다. 2010년 말, 튀니지의 반정부 시위가 이듬해 ‘재스민 혁명’ 등으로 번졌다. 이른바 ‘아랍의 봄’이다. 시리아 내전은 40년 독재정권에 맞서 민주화를 요구한 10여 명의 학생이 체포돼 고문당한 사건이 계기였다. 유엔은 올 4월까지 내전으로 인한 사망자가 19만 명, 그중 민간인은 3분의 1로 추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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