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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기자의 24시|사건 속의 「사건」찾는 특종광|중앙일보 사건담당 김창욱 사회부 기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사건기자는 코가 발달되어야한다. 뉴스의 냄새를 맡을 수 있는 코란 바로 기자의 인생에 대한 흥미와 호기심이다』(칼·워런)
상오 5시30분. 기계처럼 눈이 떠진다. 기계적으로 펴보는 조간신문. 눈뜨면 아침 신문을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면서도 3개의 조간을 펴들 때마나 판결문을 받아드는 피고인처럼 두근거리는 가슴.
『내가 미처 알지 못했던 기사가 터지지 않았을까…. 간밤의 야근 중에 놓친 건 없을까…』
사건기자의 긴장은 바로 눈을 뜨는 그 순간부터 시작이다.
상오 6시, 현관에 선 채 우유 한 잔으로 아침식사. 후다닥 집을 나선다.
현관문을 닫아거는 아내는 『일찍 들어오세요』라는 애교 섞인 주문을 포기한지 오래다.
경찰서에 도착하기 전에 관내 종합병원을 들러봐야 한다. 사람이 상하는 사건·사고라면 경찰서로 가기 전 우선 병원으로 직행하는게 당연한 이치.
완전히 어둠이 걷힌 차창 밖에 거대한 도시가 윤곽을 드러낸다. 8백만 시민이 서로 사랑하고 증오하며 사는 생존의 현장, 지난밤 이 거대한 생명체 곳곳에선 무슨 일들이 벌어졌을까.
Y병원 응급실. 낯익은 숙직 간호원이 반갑게 맞아준다. CA(자동차사고) DOA(변사자) DR(추락사고환자)응 깨알같은 병원 용어 약자들이 응급환자 「리스트」에 들어있다. 병원 앰뷸런스가 갑자기 사이렌을 울리며 달려나간다. 구내 전화로 차량 대기실에 행선지를 물어본다. 화재현장 출동이 가까운 S동의 6층 건물이다. 택시를 잡아타고 현장으로 달린다. 사냥개처럼 속속 몰려든 사건 기자들과 한바탕 취재경쟁을 벌인다.
상오 7시30분, 시경 캡(사건기자 팀장)에게 관내서 일어난 사건 보고를 마친다.
그러나 취재는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건물에 불이 났다는 물리적 현상 속에 숨겨진 「α」를 찾아내야 한다.
그「α」란 우리사회의 구조적 모순일 수도 있고 표출된 사실 뒤에 은폐된 음모일 수도 있다.
서울 무교동 일식집 「청송」화재사건의「α」는「보험금을 노린 살인방화」였다.
그「α」의 성격과 특성, 중량과 질감에 따라 기사는 1단 짜리로 흘릴 수도 있고 때로는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할 특종으로 변신할 수도 있다.
때문에 사건기자는 의혹의 눈으로 「α」의 정체를 규명하는 특종귀가 될 수밖에 없다.
상오8시, 화재기사를 일단 마무리 짓고 이번엔 출입 경찰서의 사건을 채크할 차례.
H경찰서. 앞마당엔 오늘하루 함께 뛰어줄 취재 차가 대기하고 있다. 시경 캡에게 보고가 끝나고 급한 사건은 마무리 지었다. 다른 경찰서로 떠나기 전 이때가 빈속을 채울 찬스다. 경찰서 구내 식당에 라면을 주문한다. 계란 한 개를 풀어 끓인게 2백50원. 사건기자에게는 식사시간이 따로 없다. 틈나는 대로 먹어두고 요령껏 쉬어야 한다.
후닥닥 라면을 먹고 다시 다음 경찰서로 달린다.
B경찰서 형사실-. 경비전화 앞에 버티고 앉아 하품하던 당직 K형사가 가벼운 목례를 보낸다.
『어젯밤은 조용했읍니까?』 함축 있는 질문에 K형사는 밤샘으로 부석부석한 얼굴을 문지르며 씨익 웃을 뿐 대답이 없다.
결코 멀리할 수도, 그렇다고 지나치게 가까이 할 수도 없는 기자와 경찰의 관계. 사건 기자는 경찰과 언제나 일정한 간격과 거리를 유지하며 뉴스의 행방을 추적해야 한다.
당직 사건 처리부·영장 신청 대기자 명단·피의자 조서 등을 체크한다. 절도범·교통사고 운전자·폭행 불량배 등등 두꺼운 쇠창살 속에 웅크리고 있는 범법자들의 어두운 모습에서 우리 사회의 그늘을 본다.
취재 차를 타고 소위 「경찰 마와리」를 하고있는 사이에도 『사진을 구해라』 『전문가의 코멘트를 따라』『약도를 그려 들여보내라』는 등 데스크의 지시가 차내 무전기를 통해 쉬지 않고 떨어진다.
감시도 틈을 주지 않는 극성스런 선배 데스크가 호랑이처럼 느껴진다. 『빌어먹을』하고 투덜대지만 데스크의 지시는 절대 명령. 사건기자의 세계는 명령에 살고 명령에 죽는 군대사회와 같다.
그러나 후줄근한 모습으로 회사에 들어서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 『오늘 고생했지』하며 신문사 뒷골목 대폿집으로 끌려가 소줏잔을 주고받을 땐 그「극성」이「제대로 눈이 박힌」후배를 만들겠다는 「사랑」으로 바뀌어 가슴을 덥힌다.
상오10시. 「커버」하고 있는 4개 경찰서 중 마지막 「코스」인 D서에 도착한다. 『미모의 여의사의 자살.』 기사 마감시간 40분을 앞두고 충격적인 사건이 「체크」됐다.
시간이 부족하다. 온몸을 죄는 듯한 긴장과 초조로 이마에 땀이 솟는다.
여의사의 자살 속에 숨은 「α」를 찾아야 하는 것이다.
인근 파출소와 통·반장에게 물어 여 의사 집을 찾았다. 슬픔에 잠긴 비통한 집안 분위기 속에서도 변사자의 사진을 찾아야 하는 비정함과 뻔뻔스러움. 차가운 슬기와 뜨거운 가슴으로 죽음의 정체와 「α」를 규명하고 보다 생생하고 실감나는 소식을 독자에게 전하기 위해서는 욕을 먹어도 할 수 없다.
마감시간 3분전. 송고를 위해 다이얼을 돌린다. 수화기를 타고 고막을 찢는 데스크의 고함소리
『이봐, 마감 시간도 몰라? 지금 기사를 부르는 거야!』
기사 마감시간 만큼 사건기자의 신경을 죄는 공포물은 없다. 때문에 사건기자는 마감시간에 쫓기며 산다.
그러나 잉크냄새 풋풋한 신문을 눈앞에 대했을 때, 그리고 자신이 송고한 기사가 사회면에 생생하게 꿈틀거리고 있음을 발견할 때 가슴 뿌듯한 희열로 벅차 오른다. 이「희열」은 사건 기자를 뛰게 하는 힘이다.
그날 신문이 배달되는 하오 1시30분∼하오2시 사이는 또 한번 가슴이 쬐는 순간. 편집국 하오 부장 회의에서 타지와 비교를 끝낸 데스크의 호통이 떨어지는 때이다.
『A지에 비하면 기사 내용이 부실해!』 넋 놓고 있을 순 없다. 또 뛰어야 한다.
하오3시. 3판에 부를 기사를「체크」하면서 아침에 들렀던 「윤상군 수사본부」에 다시 들른다. 굵직한 사건 때마다 설치되는 수사본부는 사건이 해결될 때까지 한 달도 좋고 두달도 좋게 사건기자들의 힘을 있는 대로 다 짜내고 없어지는 괴로운 존재다.
하오7시 귀사. 오늘의 지면을 평가하고 내일의 제작을 위한 부 회의. 밤새워 글을 써야할 동료, 수사본부를 지켜야 할 야간 당직기자, 밤중으로 만나야할 취재대상, 내일의 특별 취재 등등 기관총알 같이 일감들이 쏟아져 나온다. 회의 끝나는 시간은 언제나 하오 8시30분 전후.
삼삼오오 짝을 지어 소추한잔에 피로를 푸는 시간은 점보와 아이디어의 교환시간. 알딸딸하게 오르는 취기를 느끼며 콩나물 버스에 오르면 꾸역꾸역 밀리는 졸음-.
별보고 나왔다가 별보고 들어가는 아빠를 둔 수경이는 아빠 얼굴 본지가 언제인지 가물가물하다.
그래도 내일 다시 새벽같이 사건현장을 찾아 미친 듯 뛰어야하는 사건기자.
졸음이 파도처럼 밀려온다. 『당신이 창조하신 것을 까닭 없이 괴롭히는 주여, 지구를 잠시만 멈춰 주소서. 실컷 잠 좀 자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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