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의 길, 총장이 답하다] 전혜정 서울여대 총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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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혜정(65) 서울여대 총장은 “작지만 강한 대학이라고 자부한다. 이제 학교 내실을 적극 알릴 것”이라고 운을 뗐다. 전국 여대 가운데 유일하게 2회 연속 ‘잘 가르치는 대학’(ACE) 선정, 올해 ‘대학 특성화’(CK) 사업단 선정 수(5개) 기준 전국 여대 1위(수도권대 2위), 올해 ‘고교 교육 정상화 기여 대학’ 지원금(연 16억원) 전국 여대 1위(전체 6위)…. 최근 교육부 대학재정지원사업 평가에서 줄줄이 거둔 성과에 대한 자신감이 묻어났다. 그는 “학교에서 열심히 가르친 덕분에 서울여대 졸업생은 어디서든 바르다, 다르다는 평가를 받는다”고 소개했다. 이어 “최근 한 졸업생이 학교에 2000만원을 기부했다”며 “원래 1000만원을 기부하려 했는데 졸업생의 남편이 ‘당신처럼 훌륭한 사람을 키워준 대학에 1000만원을 더 주고 싶다’고 했다더라”고 덧붙였다. 12일 서울 노원구 서울여대 총장 집무실에서 만난 그는 수 차례 “소수정예 엘리트를 키워내겠다”고 강조했다.

봉사활동 마일리지 쌓이면 장학금 줘

 -‘잘 가르치는 대학’으로 2회 연속 선정됐다. 비결로 ‘바롬 인성교육’을 꼽았는데.

 “개교(1961년) 이래 지속해 온 서울여대의 대표 브랜드다. 전교생이 기숙사 생활을 하며 어울리는 법을 배운다. 1학년 때는 3주간 합숙하며 스스로를 돌아본다. 대학시절 이루고자 하는 목표를 친구들 앞에서 선언하는 시간도 갖는다. 2학년 때는 2주 동안 합숙하며 타인과의 의사소통 능력을 주로 키운다. 3학년 때는 합숙은 하지 않지만 16주에 걸쳐 팀 프로젝트 수업을 하며 문제해결 능력을 기른다.”

 - 왜 인성교육인가.

 “사실 대학에서 인성을 교육한다는 것 자체는 슬픈 일이다. 인성은 가정에서, 전문성은 대학에서 배워야 한다. 그런데 지금은 가정 교육이 무너졌다. 초·중·고에선 입시에 치여 경쟁만 체득한다. 공동체를 생각할 틈이 없는 거다. 우리 대학은 전문성을 가르치기 전에 사람부터 길러야 한다는 생각에서 인성교육을 지향해왔다. 타 대학에선 ‘출혈’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인성교육 전담 인력만 60여 명이다.”

 서울여대는 1970년대 초반에 영어 시청각교육실(LAB)을 설치했을 정도로 외국어 교육에 관심이 많다. 95년 개발한 몰입형 영어교육 프로그램 ‘스웰’(SWELL·Seoul Women's University English Language License)이 대표적이다. 학기 중엔 오전·공강 시간을 활용해 매주 14시간씩 12주 동안 강사에게 영어 말하기·듣기·읽기·작문을 배운다. 토익·토플·영어면접 강좌도 개설돼 있다. 취약한 부분에 대해선 원어민 강사로부터 일대일 과외도 받는다. 방학 중엔 기숙사에서 5주 동안 영어를 쓰며 합숙하는 프로그램을 갖췄다.

 - 스웰의 차별화 포인트는 뭔가.

 “많은 돈을 들여 해외연수 다녀오면 뭐하나. 외국어 공부는 조금하고, 나머지 낭비하는 시간이 많다. 스웰은 영어에 푹 빠지도록 하는 몰입 프로그램이다. 방학 중 진행하는 합숙 스웰의 경우 학습량이 많은 데다 일일·주간 테스트를 소화해야 해 빡빡하기로 유명하다. 하지만 다른 대학 학생들도 와서 들을 만큼 성과가 좋다.”

 - 학생들이 재학 중 포트폴리오를 만들어 학교 생활을 스스로 관리하도록 하는 프로그램이 호응을 얻고 있다.

 “교육의 질은 끊임없이 관리할수록 나아진다. 학생들은 재학 중 교과·비교과 활동, 취업준비 활동을 모두 공통 양식에 자료화한다. 이 자료를 토대로 지도교수가 상담을 하고, 추천서를 써준다. 학생들이 인턴·공모전·봉사활동 등 비교과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경우 ‘캠퍼스 마일리지’를 준다. 일정 수준 이상 마일리지를 쌓으면 장학금을 준다.”

선·후배 ‘교수 멘토링’ 교육 역량 키워

 - 교수도 예외가 아니라던데.

 “강요하진 않는다. 다만 멍석은 깔아준다. 교육·연구·학생지도·대외활동으로 나눠 포트폴리오를 정리할 수 있게 했다. 선·후배 교수가 멘토-멘티 관계를 맺는 ‘교수 멘토링’ 프로그램도 개발했다. 서로 수업을 참관하고 조언을 주고받는다. 교수법이나 강의계획서 작성법, 상담기법 등을 서로 공유하는 워크숍도 가진다. 교수 업적 평가를 할 땐 같은 잣대로 하지 않고 연구중심·교육중심·행정으로 나눠 각자 잘 하는 역량을 키울 수 있도록 돕는다.”

 - 대학이 학생들 취업까지 챙겨주는 시대인데.

 “모든 전공의 1학년 과정에 전공탐색·진로탐색 과목을 개설해 방향을 잡도록 한다. 본격적으로 취업 준비를 하는 3학년을 위해 SWCD(Seoul Women's University Career Development) 아카데미를 만들었다. 학과마다 연계한 기업에 맞는 교육을 시킨 뒤 해당 기업에서 두 달간 인턴으로 실습하는 내용이다. 거의 대부분의 학생이 한 번 이상 인턴을 경험한다. 인턴 성과가 좋을 경우 취업으로 연결되는 경우도 많다. 4학년과 졸업생을 위해선 3명의 ‘잡 매니저’가 달라붙어 진로 상담과 이력서 작성, 면접 대비, 취업알선까지 도와준다.”

 - 학생들이 전공과 연계해 봉사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한 ‘서비스 러닝’이 눈에 띈다.

 “대학생 봉사활동은 일반 봉사활동과 달라야 한다. 남을 돕는 것도 중요하지만 스스로 성장해야 한다. 전공과 연관한 봉사활동에 대해선 1학점을 더 준다. 예를 들어 정보보호학과 학생이 지역 사회복지시설을 찾아 컴퓨터에 악성 코드가 없는지 점검해주는 식이다. 매 학기 50개 이상의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 수시모집 원서접수가 곧 시작되는데 학생 선발은.

 “전체 모집인원의 59%(1072명)를 수시로 선발한다. ‘일반 학생 전형’에선 학생부 교과 성적 70%, 서류 종합평가 30%를 합산해 선발한다. ‘학생부 종합평가 전형’에선 1단계 서류 종합평가 100%로 3배수를 선발하고, 2단계에선 1단계 점수(60%)와 면접 점수(40%)를 합산해 선발한다. 자기소개서의 표절·대리작성·허위사실 기재 여부를 가려내기 위해 유사도 검사를 한다. 수능 최저학력 기준을 인문 계열은 국영수 3개 영역 중 2개 영역 합 7등급 이내, 자연 계열은 국영수·탐구 4개 영역 중 2개 영역 합 7등급 이내로 지난해보다 낮췄다.”

등록금 인하 강요 말고 자율에 맡겨야

 - 교육부의 대학 정책에 하고 싶은 말은.

 “자율 경쟁에 맡겨달라. ‘반값 등록금’ 얘기가 또 나오던데, 등록금을 낮추라고 강요해선 안 된다. 대학은 초·중·고와 달리 선택 교육이다. 고급 수준의 교육을 받고 싶은 학생만 받는 거다. 높은 등록금을 받더라도 질 좋은 교육 프로그램 만들어서 가르치면 된다. 국제 사회에서 어떻게 우리 학생들을 경쟁력 있는 인재로 키우느냐 하는 고민을 해야지 반값 등록금에 머물러 있어선 안 된다. 다만 어떤 대학이 질 좋은 교육을 하고 있는지를 냉정히 평가해 달라.”

만난 사람=김남중 사회1부장
정리=김기환 기자, 사진=김경빈 기자

◆전혜정 총장=1949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92년부터 모교인 서울여대 의류학과 교수로 일했다. 94~97년 기숙사 사감을 지내는 등 학생들에게 애정을 쏟아 따르는 제자가 많다. 패션 한류에 관심이 많아 2006~2011년 서울시 패션 한류 사업에 참여했다. 대외협력처장 등 주요 보직을 두루 거쳐 학교 사정에 밝 다는 평이다. 지난해 2월 총장에 취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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