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은퇴 거부하는「1백세」|미국 「휘튼산업」<유리용기제조업체> 회장「휘튼」씨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요즈음 친구들은 조금만 나이가 들어도 연금이나 타먹으며 빈둥거리고 싶어한단 말야.』미국「휘튼」산업의 회장「프랭크·휘튼」씨는 이런식으르 자기 아랫사람들의 무기력을 꼬집는다. 그러나 그의 이런 개탄에 감히 반론을 펼 사람은 없다. 그도 그럴것이「휘튼」씨는 올해 1백세나 되는 「노인중의 노인」이면서도 고집스럽게『일을 떠나지 않겠다』는 「현역」이기 때문이다.
그가 「휘튼」산업을 붙들고 일해온 세월은 자그마치 82년. 1899년에 처음 일을 시작했다. 당시의 종업윈은 50명 남짓. 순전히 수공으로만 유리용기를 만들어내던 영세기업이 현재는 종업원 1만여명의 대회사로 성장, 미국과「브라질」의 41개 공장에서 1주일에 유리 및 「플래스틱」용기가 6천 5백만개나 쏟아져 나온다.
연간 매출액도 3억 「달러」(약2천1백억원)을 웃돈다.
「휘튼」씨는 지난 16일로 1백회의 생일을 맞았다.「휘튼」산업이 자리잡고있는「밀빌」에서는 이 노익장의 사업가를 기리는 뜻에서 이날 가두「퍼레이드」와 각종「파티」등 성대한 축하행사를 벌였다.
「휘튼」씨는 66년 사장자리를 아들인 「프랭크·주니어」(68)에게 물려주었다. 현재의 직함은「휘튼」산업회장. 이제는 귀가 어두워졌고 안경이 없으면 앞이 보이지 않을 만큼 시력도 약해졌다. 3년전엔 엉덩이뼈를 크게 다치는 바람에 요즘도「훨·체어」를 타야만한다. 그러나 그는 백발이나마 짧게 깎은 머리에 하루에도「이탈리아·시가」를 10대이상이나 갈아물고 왕성한 식욕을 과시하면서 젊은이 못지않게 일에 매달리고있다.
「휘튼」씨의 책상 위에는 그의「성공비결」이 보관된 자그마한 나무상자가 하나 있다. 상자뚜껑을 열면 안에는 딱 한마디『일하라』는 말밖엔 없다.
이것이 그의 유일한 성공의 비결이자 인생철학인 셈이다.
「휘튼」씨의 경영원칙은 간결하면서도 단호하다.『절대로 돈을 빌지말라』『줄돈은 지체없이 주라』『고객들이 늘 만족스럽게 생각하도록 하라』는 것이다.
「휘튼」 산업은 약이나 화장품을 담는 특수용기를 제조하고 있다. 미제「아스피린」약병은 십중팔구가「휘튼」사 제품이고 유명한「에이본」향수병도 여기서 만든다.
그가 벌어들이는 엄청난 돈에 비할 때 그의 생활은 검소하기 짝이 없다. 그는 60년전에 사서 든「미니」3층집에 지금도 산다. 가정부와 상주간호원이 각각 1명씩 그의 시중을 들고있고 집안의 가구라야 고물TV「세트」하나뿐이다.
그러나 공익을 위해서는 돈을 아끼지 않는다. 고향「밀빌」병원은 최근 새로 건립한 암치료「센터」를 그의 이름을 빌어 명명했다.「밀빌」사람들은 뭐니뭐니해도 낙후된 지역경제발전의 주춧돌 역할을 하고있다는데서 더욱 그를 존경하고있다.
「휘튼」씨의 출근시간은 정확히 아침 8시15분이다. 운전사가 차를 몰고오면 그는 간호원을 대동하고 앞「시트」에 앉은 채 몇백m거리의 공장단지로 간다. 창고에 들러 그날 들어오는 자재를 점검하고 자기방에 도착하는 시간이 8시30분. 그때부터 회사중역들과의 업무협의, 간부들의 보고청취, 거래선 접견 등 눈코뜰새없이 꽉 짜인 일정속에서 일을 한다. 요즘은 상오 11시에 일단「스케쥴」을 끝낸다. 주치의의 엄한 명령 때문이다.
그러나 떠나려는 방문객과 악수를 나누는 그의 손은 여전히 힘에 가득 차 있다. 그는 늘 이렇게 말한다.『혹시 이 늙은이가 망령이라도 들었다고 생각이 드시거든 오셔서 나를 좀더 살펴보시구려』라고.【뉴욕=김재혁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