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해외관계」와 관리의 부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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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로니·람(림)」(가명)은 40대초반의 건장한「홍콩」화교 사업가다.그의 공식직함은 미국 모석유희사익「홈콩」현지법인의 판매담당이사.그러나 그의 진짜 사업은 석유와는 거리가 먼 농산물중개업이다.중공에서확보한 물량을 다른 나라에 팔아넘기는 삼각무역을 하고있다. 「홍콩」에는 두가지 일을 하는 사람이 적지않기 때문에 별로 이상할 것이 없다.,
그러나「람」의 삼각무역은 매우 특이하다.그의 매부는 13명의 중공부수장가운데 한사람이며, 그의 형은 1급 군구의 사령관인 장군이다.
그의 사업비결은 바로 이 대륙의끈에 있다. 그는 이들 대륙의 세도있는 가족의 영향력으로 각종 상품을손쉽게 얻어낸다.
중공에는 각부문별로 수출입을 총괄하는 공사가 있고「홍콩」에도 그공사의 독점수출입 대리점이나 지사가설치되어 있다.그련데도「람」은 그런 경로를 통하지않고 물량을 직접빼내오는 것이다. 농산물이 중공의 자체수요에 달리는데도 불구하고 그는각종 농산물을 잘도확보한다.
「홍콩」에는「람」과 같이 중공내에지도적 지위에 있는 친지들을 배경에 업고 장사를 하는 사람물이 적지않다.어떤 때는 이와같은 부류의끄나불들끼리 같은 상품과 물량을 놓고 경쟁을 벌이기도 한다.이런 때는 누가 중공에 더 강력한 배경을가지고 있는지를 조심스럼게탐색하지 않으면 낭패를 보기 일쑤다.
한 일본장사의「홍콩」현지고용인 진명은 지난 4년간 중공석유구매를 위해 중공당국과 끈질긴 교섭을 했지만 물량부족이라는 이유로 석유를 얻을 수가 없었다.그러나 80년 어느날 고위관료의 아들인 상해의 친지로부터 자신이 확보한 원유를 판매해줄 수 없겠느냐는 편지룰 받고는허탈감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다고「홍콩」의 한 신문에 투고했다.그가 받은 편지에는 원유의 수량,성분,그리고 선적할 수 있는 항구까지 자세하게 적혀 있었다.
그리고 대금결제는 현금대신 흑백「텔리비전」수상기「브라운」관과물물교환하자고 했다. 진명의 친지는 윈유에서 구전을 떼고 또 지금 한참 중공에서 공급부족으로 파동을 빚고있는「브라운」관의수입으로구전을먹는 일거양득을 노린 것이다.
화학부차관이자 연산석유종합공사의책임자인 양의방은「홍킁」에 자신의끄낙불을 직접 만들었다. 양은 79년,80년 두해동안 여러차례의「홍콩」여행중 중공관리들이 사용하도록 마련된 중공여사에 묵지않고 1류「호텔」에 투숙하여 사치스런「홍콩」여행을즐겼다.이유는 간단했다.
「홍콩」에 친지가 없었던 양은 동남아시장에 가방제품을 공급하는 한무역회사의 사장을 끄나불로 잡아 그에게 연산공사의 제품수입 독점권을 주어 단번에 1백만「달러」(약6억7천만원)의 이득을 안겨줬다. 이 금액의 상담부분이 양에게 들아갔을 것임은 말할 나위가 없다.80년9월에열린 중공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양은그의 행위가 개인적인 모리에 있었다는 신랄한 비판을 받았다.
양은 이 대회에서 그의 행위를 따지는 대표들에게 무역회사의 사장은연산공사의 판매담담고문이었다고 변명하여 장내에서 폭소를 터뜨리게 했다.양은 결국 해임됐다.
이런 풍조가 번지자 광주의 한 시민은 잽싸게「홍콩」에서 신종사기행각을 벌였다고「홍콩」의 중립지「중보」가 보도했다.진이라는 이 사기꾼은 49년 중공군이 광주를 접수할당시섭검영(당부주석겸 전국인민대표대회상무위원장)과 함께 전투를 승리로 이끈 섭의 건우라고사칭했다.그는 이에 그치지 않고 모 성당서기도 친척이며 자신은 현재 광주의한 투자공사의해외활동책임자라고 들러댔다.
그는「홍콩」에 득실거리는 외국상사와 화상들에 중공의 방대한 투자계획서(발전소및「호텔」건설계획)를 제시했다.연줄을 잡지못해 중공시장에 끼어들지 못하고있던 외국상사와 화교들은 중공당국의 투자계획청사진과「텔렉스」교신전문까지내보이는 진을 귀빈으로 극진하게 대접했다.그후 광주로 돌아간 진은 다시는「홍콩」에 나타나지 않았다.
이런 부패행위와 관련해 인민일보는 대외무역관계 관리들의 부정에 관해 경고한 적이 있다. 인민일보가 80년11월7일 외국인으로부터 뇌물을 받는 행위를 금지하는 국무원의 지시를 논평하면서『관리들이 외국의 기업가들로부터 뇌물을 받는 경향이 짙어 사회의 부패를 촉진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모택동이 살아있을 때는 국외에 가족이나 친척이 있으면 이른바「해외관계」로분류돼「반역」의혐의를받았기 때문에 그런 관계를 가긴 사람은 이를 숨기기에 바빴지만 이제는 거꾸르「해외관계」를 오히러 개인의 이익을 위해 이용하려는 경향이 있다.
익명을 바라는 한 친중공화교지식인은 이렇게 논평했다.『30여년전장개석총통이 대륙을 고스란히 모택동에게 넘기지 않을수 없었던 중요한 요인의 하나가 관료들의 사리사욕과 부패였다.성패가 엇갈렸던 그때와 지금의 대륙량안의 관료사회는상황이 뒤바뀌어가는 것인가』고-. <이수근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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