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천혜의 개펄을 가꾸어|영양의 보고 굴을 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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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서산읍에서 창리포구를 합해 육로로 60리. 다시 똑딱선을 타고 1시간쯤 남으로 내려가면 조그마한 섬 하나가 시야에 들어온다.
어리굴젓의 본고장이며 전국 생산량의 90%를 차지하고있는 충남 서산군 부석면 간월도. 「서산 어리굴 젓」의 본바닥이다.
59가구에 인구 3백68명. 섬 주위를 둘러싼 91ha의 굴 양식장은 바로 주민들의 생활터전이다. 지난해 가구당 평균소득이 3백70만원으로 전국8위의 알부자 마을.
간월도 굴은 자연생인 토화굴(전체생산량의 20%)과 양식한 적화굴의 2종류.
다른 지방의 것에 비해 색깔이 가무스름하고 알이 작지만 물 날개(지느러미)가 잔잔하고 그 수가 많아 고춧가루 양념이 속살에까지 배어드는 게 특징.
굴이 건강하게 잘 익으려면 바닷물과 민물이 부딪치는 곳이라야 한다. 간월도는 바로 부석면의 해미산·가야산 두산에서 사철 흐르는 육수(육수)가 서해와 만나는 곳.
굴 따는 시기는 10월부터 이듬해 5월까지 7개월간. 밀물·썰물시간에 맞춰 개펄에 나가야하므로 작업시간은 하루평균 6시간. 이때는 온 식구가 잠방이를 둘러메고 동원되어 재빠른 솜씨를 보여야한다.
한사람이 하루평균 따는 굴은 4∼5㎏. 채취한 굴은 l㎏에 l천6백50원씩 받고 서산읍에 있는 가공공장으로 넘긴다.
공장에서는 굴을 해수에 씻어 천일염으로 간을 맞추고 섭씨20도쯤의 온도로 2주일쯤 담가둔다.
짭짤하게 간이 배면 대바구니 째 걸러 물기를 빼고 꼽게 빻은 고추 가루와 버무려 청수(청수·하루전에 섭씨1백도로 끓여 식힌 물)로 국물을 낸 뒤 용기에 넣어 석 달을 저장한다.
20년째 어리굴젓을 생산하고 있는 김동숙씨(49·서산수산물 가공공장 대표)는『염장할 때 간을 잘 맞추고 고추는 재래종 양건초(양건초)를 써야 제 맛을 살린다』고 한다.
하루에 생산되는 완제품은 1ℓ들이 깡통(싯가5천5백원)으로 불과50여통. 철저한 맛 관리로 대량생산이 어렵단다. 따라서 서산일대나 간월도 현지에서 본바닥 어리굴젓 맛 보기는 하늘의 별 따기다. 오히려 서울의 유명백화점 식품 부에서 찾는게 수월할 만큼 전량 서울로 반출되고 있다.
공동 채취하는 토화굴 이외에 가구마다 평균l·5㏊씩 되는 양식장에서 생산하는 굴만 갖고도 연간 1백50여만원의 소득을 올린다. 주민들의 소유선박도 5t짜리가 19척. 만조때면 연해어업을 나가 도미·복어 등을 잡아들이고 섬의 논밭 16정보는 주민들의 자급에 충분하다.
마을 주민들의 향학열도 대단해 의지에 있는 상급학교 진학률이 90%가 넘는다. 금년 졸업생 11명 중 몸이 불편한 2명을 빼곤 9명 전원이 부석중학에 진학했다.
굴을 따 9식구가 산다는 이경자씨(38·여)는『서산명물이 끊어지지 않는 한 아들을 고등학교까지는 졸업시킬 자신이 있다』고 한다.
주민들의 가장 큰 불편은 전기가 안 들어오는 것. 자체발전시설을 갖추려고 주민 모두가 2백여만원의 성금을 모았으나 아직 재력이 달리고있다.
『바지런하고 성실한 간월도 주민들을 위해 취로사업자금 1백만원을 전기시설자금으로 돌릴 계획이지만 그것만 갖고는 부족할 것 같습니다, 부석면장 이강호씨(51)는 안타까운 표정이다.
주민들의 보다 큰 고민은 그들의 생존의 터전인 굴 양식장이 절반이상 없어지게 된 것.
87년 완공예정인「서산A·B지구 간척농지개발사업」으로 창리∼간월도 연결해역이 매몰된다는 것이다.
『그땐 그때고 간월도 어리굴젓의 맛을 옛이야기로만 돌릴 순 없지 않겠시유.』이장 노예갑씨(53)는 더 많은 굴을 따도록 금년 산신제는 한층 정성을 들였다며 바다에 눈길을 둔다.

<간월도=전종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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