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토」식 방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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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나토」군 북부사령관을 지낸「존·해키트」 장군의 『제3차세계대전』은 4년전 「유럽」인의 흥미를 끈「가상소설」이었다.
1984년 8월4일 새벽 소련군은 삽시간에 동·서독 국경을 돌파,전쟁을 연다. 중동 유전을 장악하고 서방 정찰위성을 모두 파괴한다. 개전17일째엔 영국 「버밍검」시에 핵폭탄을 투하한다. 미국은 이제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소련「민스크시에 훨씬 더 강력한 핵폭탄을 투하한다.드디어 이런 혼란속에 「쿠데타가 일어나고 소연방은 와해한다.
극동에 초점은 일본판 『가상』도 있다. 같은 해에 발표된 군사전문가「도문슈·헤이」(土文周平) 작이다.
198×년 어느날 「이란」 과「이라크」 가 전쟁을 벌이자 소련은 재빨리 개입, 유전지대를 점령한다.소련이 「쓰가루」(津輕)해협과 대한해협의 안전통항을 요구하자 일본은 당황하나 한국은 단호히 거부한다. 북한이 남침하고 한국의 수도는 대구로 옮겨진다. 1주일 후 우리국군은 반격에 나서 빙원과 원주를 있는 방어선에서 미국의 증원군이 오기를 기다린다는 줄거리. 「유럽」이나 「아시아」나 승전의 열쇠는 모두 미국이 쥐고 있는 것이 공통된다.
미군은 현재 서구에 20만명. 한국에 3만9천명이 있지만 전면전이 일어나면 본토에서 대규모 증원군이 공수되어야 한다. 「플로리다」 주 「탬파」시에 본부를 둔 10만병력의「신속배치군」이 그 임무를 맡는다. 신속배치라 하지만 1개사단이 한반도에 투입되려면 11일 이상이 걸린다.
개입에는 「북대서양조약」 과 「한미상호방위조약」이 각각 그 근거가 된다. 그러나 이 두 조약은 외부의 무력공격에 대한 동맹국의「반응속도」에 있어서 큰 차이가 있다. 「나토」식은 『개별적이거나 공동으로 즉시 행동을 같이 한다』로 돼있다. 「한미」식은 『각자의 헌법상의 절차에 따라 행동한다』고 돼있다. 「헌법상 절차」 란 물론 해외파병에 대한 미의회의 승인이다.「의회의 승인」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바로 주한「유엔」 군사령관 「위컴」대장이 「나토」식 상호지원법을 제정해야 된다고 요즘 미하원에서 증언한 사실은 이점에서 주목하게 돤다.
우리정부는 66년 월남증파 때 미국의 「답서」로 이「헌법절차」조항을 「즉각행동」조합으로 수정할 것을 요청한 바 있다. 미국은 『미국 대통령이 한국방위를 다짐하고 있는데 그럴 필요가 있겠느냐』 고 좋은 말로 거절했다.
『미국은 「유럽」에서 「1」 의 전쟁을 수행하고 기타 지역에선 「0.5」 의 전쟁을 수행한다』 는 「브라운」전 미국방의 말도 있다. 뿌리깊은 「유럽」 방위우선지원이다. 주한미군철수정책을 포기한 「레이건」행정부에 대해 또 다시 「나토」식 방위조약으로의 개정을 바란다면 주체성이 없다고 할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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