굶주림도 슬픔도 … 인생에 다 쓸모 있습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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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 배달소년, 권투 선수, 신학생을 거쳐 오페라 테너로. 조용갑씨는 굽이진 인생 이야기를 강연에 담아 사람들을 위로한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성악가 조용갑(44)씨는 신문 배달소년이었다. 1986~89년 고등학교 3년 내내 오전 4시30분이면 신문을 돌렸다. 또 아파트 단지를 돌며 세차를 했다. 자장면 배달, 지하철 행상, 떡볶이 장사도 해봤다. 일을 끝내고 오후 5시30분에 학교에 갔다. 아르바이트는 전자기계고등학교의 학비를 내기 위한 일들이었다. 물론 생활비도 부족했다. 그러나 지금은 오페라 무대에 서는 테너다. 전국 각지에 다니는 강연자로 방송 출연도 잦다. 그 인생 스토리를 강연 형식으로 소개한다. 슬픈 이야기도 웃기게 하는 조씨의 평소 스타일을 빌렸다.

 가까이서 보니 잘 생겼죠? 얼굴도 별로 안 크죠? 저는 노래를 하고 나서 제 외모를 좋아하게 됐습니다. 강한 소리를 내려면 목이 짧은 게 좋아요. 단단한 몸집, 작은 키도 유리하고요. 제 인생에는 이렇게 안 좋은 점이 좋게 보이게 된 일이 참 많았습니다.

 우리 아버지는 좋은 분이었어요. 술만 안 드시면 말이죠. 술만 들어가면 어머니와 싸우고 저를 때렸습니다. 집에 불까지 질렀습니다. 그런데 절망이 계속 오다 못해 정도를 넘어서면 억지로라도 희망을 찾을 수밖에 없습니다. 아버지가 하도 때리니까 아버지 오시기 전까지는 최대한 재미있게 놀았습니다. 정말 열심히 재미를 찾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즐거웠어요. 맞다가 도망갈 때 신발 빨리 신는 방법도 꾸준히 연구했습니다. 이것도 하다 보니 재미있었어요.

 제 고향은 가거도입니다. 목포에서 배 타고 다섯 시간 갑니다. 어릴 땐 원망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원망을 해도 바뀌는 게 없더라고요. 숙명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습니다. 내 고향은 가거도다, 우리 아버지는 때리는 사람이다, 받아들이고 나니 마음이 편해지더군요. 여러분, 인생에 필요 없는 것은 없습니다. 슬픔? 괴로움? 다 쓸모가 있습니다.

 중학교 때 무작정 서울로 올라와 성수동 용접 공장에 취직했습니다. 일 못한다고 얻어맞았어요. 항상 배가 고팠고 한 시간밖에 못 잔 날도 많았습니다. 그래도 그냥 받아들였습니다. 아니, 하도 시골에서 살았더니 도시에 온 것만으로 그렇게 좋을 수가 없어요.

 일단 뭐든 했습니다. 권투를 배워 한국 챔피언 전초전까지 갔습니다. 오늘 강연이 졸려도 참으세요, 제 주먹 아직 살아있습니다. 목사가 될 생각으로 신학 공부도 했습니다. 말주변이 괜히 좋은 게 아닙니다. 지하철에서 물건도 얼마나 잘 팔았는데요.

 그래도 제 길은 못 찾았습니다. 그런데 교회 사람들이 노래 잘한다고 배워보라는 겁니다. 레슨비도 안 주면서 말이죠! 또 다른 사람은 노래하면 이탈리아니까 유학을 가라더군요. 하, 유학비도 안 주고 무책임한 사람들이에요.

 그런데 유학비가 생겼어요. 제가 아주 시끄러운 놈이었습니다. 집에서 노래를 했더니 이웃집에서 난리예요. 하는 수 없이 공릉동을 휘젓고 다니면서 노래를 했더니 너무 시끄러웠던 거죠. ‘쟤 좀 이탈리아로 보내버려’ 하지 않았겠습니까? 하하. 제 유학비를 대주신 분은 한 목사님입니다. 매달 100만원씩 5년을 후원해 주셨어요. 그 돈을 들고 로마로 가서 산타 체칠리아 음악원에 합격을 해버렸습니다. 박수 안 치시나요? 10여 년 동안 유럽에서 콩쿠르 28번 우승하고 오페라 무대에 300번 섰습니다.

 제가 지난해 강연을 300번 했습니다. 대기업·중소기업 안 가본 데가 없는 것 같아요. 지쳐 있었던 사람들이 제 얘기를 들으면 막 웁니다. 자살까지 시도했던 사람이 울면서 찾아온 적도 있어요. 아마 이런 거겠죠. ‘아, 저런 사람도 도전했구나.’ 결과는 안 좋을 수도 있습니다. 그저 뭔가 하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제가 말했죠? 하고 나면 쓸모없는 거 없다고.

 몇 년 전 조용갑 성악스쿨을 열었습니다. 전공자·비전공자 50명 뽑아서 돈 안 받고 노래 가르치고 있어요. 음악만 도와주는 게 아닙니다. 전국 소년원 돌면서 스포츠에 재능있는 아이도 찾아요. 도와줄 겁니다. 한 목사님이 저를 도와줬듯 말입니다. 이제 돌려줄 차례지요. 소년원 출신이 갑자기 올림픽 금메달 따면 제가 키웠는줄 아세요.

 사람들이 제 강연 좋아하는 이유가 또 있어요. 노래 불러드리거든요. 이제 여러분에게 용기를 주는 노래, ‘유 레이즈 미 업(You raise me up)’ 부르면서 강연 마치겠습니다. 1절만 부르겠습니다. 저도 남는 게 있어야죠. 더 듣고 싶으면 다음 달 27일 오후 2시 서울 예술의전당 ‘사랑나눔 팝 콘서트’에 오세요. 역경이 예술가를 어떻게 단련시켰는지 보실 수 있습니다.

글=김호정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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