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남북 서로 용서하고 하나 된 한반도 위해 노력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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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에게 염수정 추기경이 봉헌한 휴전선 철조망으로 만든 가시관(冠).

프란치스코 교황은 18일 서울 명동성당 미사에서 ‘북한’이나 ‘통일’이란 단어를 직접 언급하지 않았다. 대신 “남북 모두 서로 용서하고, 하나 된 한반도를 위해 노력하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교황은 ‘평화와 화해를 위한 미사’ 강론을 시작하며 “오늘 미사는 무엇보다 중요하게, 한 가정을 이루는 한민족의 화해를 위해 드리는 기도”라며 남북 모두를 위한 미사임을 명확히 했다. 또 “우리는 이를 ‘지난 60년 동안 지속돼 온 분열과 갈등’이라는, 한민족이 체험한 역사적 맥락에서 알아듣게 된다”고 말했다.

 교황은 구체적으로 남북 대화와 인도적 지원의 필요성도 거론했다. “이제 대화하고, 만나고, 차이점을 넘어서기 위한 새로운 기회들이 샘솟듯 생겨나도록 기도하자.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인도주의적 원조를 제공함에 있어 관대함이 지속될 수 있도록, 모든 한국인이 같은 형제자매이고 하나의 민족이란 인식이 더 널리 확산될 수 있도록 기도하자”란 대목에서다.

미사를 마치고 출국한 교황은 성남 서울공항에 환송 나온 정홍원 국무총리에게 “인위적 분단상황이 일치를 향해 나아가서 남북 평화통일이 빨리 오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인위적 분단상황”이라는 용어를 쓴 데서 교황의 통일관을 엿볼 수 있다. 한마디로 분단상황을 남북의 노력으로 해소시킬 수 있다는 의미다. 전문가들은 교황이 남북한 모두에 ‘평화의 명분’을 줬다고 분석했다.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교황이 쓴 표현은 간접적이지만, 사실 남북 최고지도자나 당국자에게 강한 메시지를 준 것”이라며 “군사적 긴장 분위기를 대화 흐름으로 바꾸는 계기로 삼을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황지환 서울시립대 국제관계학과 교수는 “교황이 일흔일곱 번의 용서 등을 언급한 것은 박근혜 정부 입장에서 부담도, 도움도 될 수 있다”며 “상호 간 화해를 꾀하기 위해 5·24 조치를 해제하는 등의 조치를 취하는 건 부담이겠지만, 북한이 인천 아시안게임 참여 의사를 밝히는 상황에서 박근혜 정부가 보다 적극적인 대북 정책을 펼치는 계기나 기회가 될 수도 있다”고 해석했다. 교황 강론 가운데 인도적 지원과 민족 동질성을 강조한 것은 박 대통령의 대북정책 기조와도 맞물려 있다.

 이날 미사에 북한 출신 사제와 수녀, 평신도 등 30여 명이 초청된 것도 상징적이었다. 6·25전쟁 당시 신학생이었던 사제들과, 실제 활동한 수녀들이다. 납북자 가족과 탈북자들도 초청됐다. 성체성사가 행해질 때는 성가 대신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 울려 퍼졌다.

 박 대통령은 주철기 청와대 외교안보수석, 윤병세 외교·류길재 통일부 장관 등 외교안보라인 책임자들을 미사에 대동했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교황의 화해 메시지에 화답하는 모습을 보이기 위한 정부의 의지로 보인다”며 “통일부가 장기적 관점에서라도 개성∼평양 고속도로 및 개성∼신의주 철도 개·보수사업 계획을 발표한 건 이런 맥락”이라고 해석했다.

유지혜 기자
차준호 (성균관대 경영학과)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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