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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군 성희롱 눈감아줬더니 … 4년 만에 또 걸린 소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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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육군 A 소령(45)은 4년전 여군 중위를 성희롱 해 자살에 이르게 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그러나 소속 부대에서 면죄부를 주자 또 다른 여성 장교를 성희롱했다.

 새로운 사건이 불거지면서 과거 사건까지 다시 조사받게 됐다.

 국민권익위원회(위원장 이성보)는 13일 강원도 화천 여군 중위 자살 사건을 전면 재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국민권익위에 따르면 심모 중위(당시 25세)는 2010년 3월 강원도 화천의 전방부대에서 근무하다 부대 인근의 야산에서 목을 매 숨진 채로 발견됐다.

 유가족들은 직속상관인 대대장 A소령에게 심 중위가 지속적으로 성희롱을 당해 자살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심 중위가 숨지기 일주일 전에 휴가를 나와 “A소령 때문에 너무 힘들어 부대에 들어가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는 근거를 댔다. 심 중위가 사망한 뒤 군은 자체 수사와 감찰을 통해 A소령의 성희롱 발언 등이 모두 사실임을 확인했다. 그러나 군은 심 중위의 자살 원인을 ‘남녀 간의 애정 문제’로 결론내렸고, A소령은 당시 사단장으로부터 ‘구두 경고’를 받은 데 그쳤다. A소령은 사건 3년 뒤인 지난해 중령 진급예정자에까지 올랐다.

 군 생활에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은 A소령은 올해 4월 다시 여성 장교를 성희롱했다. 피해자의 신고로 이번엔 보직해임 및 3개월 정직 처분을 받았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심 중위의 모친은 지난 5월 권익위에 “딸이 A소령을 죽이고 싶을 정도라고 말하며 괴로워 했는데, 군 당국은 A소령에 대해선 일절 언급이 없었고, 조사결과도 알려주지 않았다. 딸의 억울한 죽음이 무엇때문이었는지 밝혀달라”고 민원을 제기해 권익위가 전면 재조사하기에 이르렀다.

 권익위는 “조사에 중점을 두는 것은 심 중위의 사망 원인과 당시 군 조치의 적정성”이라며 “A소령이 진급을 앞두고 있는 상황이어서 조사를 서두를 것”이라고 밝혔다. 권익위는 심 중위가 사망할 당시 함께 근무했던 동료들을 상대로 사실관계를 다시 확인하고 있다.

 성희롱 등 군대 내 남성 상급자에 의한 성범죄에 군이 솜방망이 처벌을 내리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다. 부하 여군에게 가혹행위와 성추행을 지속적으로 가해 자살에 이르게 한 혐의를 받은 육군의 노모 소령은 지난 3월 군사법원에서 열린 1심 재판에서 징역 2년, 집행유예 4년을 선고 받는 데 그쳤다. 육군은 당시 “강제추행의 정도가 약한 점, 피고인은 아무런 전과가 없는 초범인 점 등을 참작했다”며 집행유예 이유를 설명했었다.

 또다른 강원도 화천의 육군 사단에서 근무하던 피해자 오모 대위는 ‘상관인 노 소령이 성관계를 지속적으로 요구했고, 이를 거부하자 10개월 동안 매일 야근을 시키면서 가혹행위를 가했다’는 내용의 유서를 남기고 지난해 10월 16일 자살했다. 약혼자가 있던 오 대위는 결혼을 앞두고 있었다.

허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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