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기초자치구 '복지 디폴트' 강 건너 불 아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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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기초자치단체는 ‘복지 디폴트(지급불능)’를 고민해야 하는 현실에 직면했다.”

 노현송(강서구청장) 서울구청장협의회 회장은 엊그제 ‘지방재정 해결을 위한 공동성명’을 발표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복지 지출이 급증하면서 기초자치단체의 재정 압박이 한계에 달해, 기업부도 같은 사태가 올 수 있다고 경고하고 나선 것이다. 서울 25개 자치구의 복지예산 부족분은 올해 1154억원으로 추정된다. 기초연금 607억원, 무상보육 461억원, 폐렴구균 예방접종비 86억원을 더한 수치다. 재정자립도가 낮은 성동·중랑·금천 등 3개 구의 경우 시비 우선배정이나 국비 지원이 없으면 당장 이달부터 기초연금 지급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

 중앙정부·광역단체가 개입하면 당장 ‘디폴트’가 발생할 가능성은 낮다. 하지만 이런 추세라면 머지않아 중앙정부·광역단체 지원으로 해결할 수 없을 정도로 지방재정이 나빠지는 최악의 상황이 올 수 있다. 서울 기초자치단체 예산에서 복지 지출 비중은 2009년 33.3%에서 2013년 45.9%로 늘었다.

 구청장들 입에서 ‘디폴트’라는 극단적 표현까지 나온 이유는 명료하다. 복지제도는 확충되는데 재원은 그만큼 늘어나지 않은 탓이다. 근본적으로는 사회보장과 보편적 복지의 큰 틀을 어디까지 가져갈지 고민해야 할 시점에 왔다. 복지확대가 더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된다면 증세를 포함한 복지재원 확보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 다만 이는 하루 이틀 사이에 정할 문제는 아니다. 당장은 발등에 떨어진 불을 꺼야 한다.

 중앙부처는 자치단체와 충분히 협의하지 않고 복지서비스의 실행방식을 결정, 하달하는 방식부터 고쳐야 한다. 중앙정부가 모든 재원을 부담한다면 몰라도 현실적으로 자치단체와 짐을 나눠질 수밖에 없는 구조 아닌가. 당장은 중앙정부와 광역단체, 기초단체가 머리를 맞대고 합리적인 부담비율과 재원조달 방안을 찾아내야 한다. 자치단체 역시 중앙만 바라보지 말고 행정 효율을 높일 방도를 함께 고민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