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모지에 선임병 이름 … "진짜 죽이고 싶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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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한 윤 일병이 근무했던 28사단 포병부대 내무반 옆 공중전화 부스에 12일 군대 내 언어폭력 근절을 위한 헌병대 홍보물이 붙어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28사단 소속 상병 두 명의 동반자살은 관심병사 관리의 맹점을 또다시 드러내고 있다. 두 병사 모두 자살 징후를 수차례 나타냈지만 군이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동반자살한 두 상병은 같은 시기(지난해 8월)에 군에 입대했지만 부대는 달랐다. 둘은 지난 1월 중순 처음 만나 한 내무반에서 생활하기 시작했다. 광주 출신 이모(21) 상병이 서울 출신 이모(23) 상병이 있는 부대로 전출 오면서다. 두 사람은 한 달 뒤인 올해 2월 육군 복무 부적합자 관리 프로그램인 ‘비전캠프’에 같이 가면서 사이가 돈독해졌다고 한다.

 21세 이 상병은 A급, 23세 이 상병은 B급 관심병사로 지정돼 관리를 받아왔다. 21세 이 상병은 입대 직후부터 성 정체성 등에 관한 상담을 8번 받았다고 한다. 인성검사에서도 자살 우려가 높아 현역 복무부적합자 심의 대상에 오르기도 했다. 지난해 10월 자살 시도에 이어 같은 해 11월 탈영했다. 23세 이 상병 역시 지난 5월 실시한 인성검사에서 감정기복이 심하고 자살 가능성이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 그는 지난해 말 분대장에게 “우울증에 시달린다. 자살하고 싶다”고 말했다고 한다. 당시 분대장 A씨는 “간부에게 보고해 정신과 치료를 받게 했다”고 말했다.

 해당 부대 전역자들은 “둘은 항상 붙어 다녔다”고 말했다. 전역자 B씨는 “근무가 끝난 저녁시간이면 둘은 막사 옆 교회 공터에 앉아 대화를 나누곤 했다”고 말했다. 전역자 C씨는 “둘 다 관심병사이다 보니 (다른 사람들이) 거리를 두고 건드리지 않으려 했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런 두 사람이 사흘 간격으로 휴가를 나왔다는 데 있다. 23세은 상병이 3~11일, 21세 이 상병은 6~14일이 휴가 기간이었다. 새누리당 홍일표 의원은 “휴가 시기가 겹치는데도 자살 가능성이 높은 두 병사를 보낸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부대가 관심병사 관리를 부실하게 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육군 관계자는 “두 상병이 관심병사로 분류돼 병영생활상담관이 상담도 하고 군 생활 부적응자들을 돕는 별도의 프로그램에도 참여시키는 등 관리를 해왔다”며 “휴가 중에도 해당 부대 중대장이 수시로 전화를 걸어 문제가 없는지 확인을 했다”고 말했다.

 23세 이 상병은 군 입대 후 8차례에 걸쳐 군 병원에서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 육군 관계자는 “이 상병은 지속적으로 군 병원에서 우울증 등의 치료를 받아왔다”며 “최근에는 약을 끊을 만큼 상태가 호전됐다는 군의관의 판단에 따라 약 복용을 하지 않았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의 어머니는 일부 언론에 “(아들이) 군인들이 가는 외부 병원에 갔더니 ‘밥 먹었나’ ‘오늘 뭐 했나’ ‘별일 없었나’ 묻고 끝이었다고 한다”며 “환자를 환자로 보지 않은 것”이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두 상병이 군 입대 후 가혹행위를 당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전역자들은 “선임병들이 욕을 하거나 소리를 지른 적은 있어도 구타나 가혹행위는 없었다”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현장에서 발견된 21세 이 상병의 다이어리 메모지 3장엔 ‘견디기 힘들다’ ‘아무것도 못하겠다’ ‘XX, 김○○(선임병) 진짜 죽이고 싶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휴대전화 메모에도 ‘긴 말씀 안 드립니다. 지금까지 너무 힘들었습니다. 죄송합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메모지에 나오는 선임병 김모씨는 현재 헌병대 조사를 받고 있다. 이와 관련해 이 상병의 대학 친구 D씨는 “○○는 동기들과 잘 어울렸고 학교 행사에도 빠지지 않았다”며 “○○가 관심병사였다니 의외”라고 말했다.

 서울대 곽금주(심리학) 교수는 “28사단 윤모 일병 사망사건 얘기가 나오기 시작하자 참고 있던 병사들이 ‘나도 힘들다. 도저히 살 수 없다’는 것을 알리는 방법으로 자살을 시도했을 수 있다”며 관심병사에 대한 철저한 관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관심병사=군의 특수관리 대상이다. 입대 전에 사고를 일으켰거나 자살 시도 경험이 있는 병사, 인성검사에서 우울 증세 또는 자살 가능성이 나온 병사 등을 중심으로 A·B·C 세 등급으로 나눠 지휘관이 관리한다.

이서준·윤정민·장혁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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