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어진 수요일] 잠들지 못한 152명, 아들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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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엄마의 아침은 눈물로 축축합니다. “아들아, 일어나!” 엄마는 아들의 이름을 부르다 문득 깨닫습니다. “맞다, 죽었지, 우리 아들….” 군에 간 아들은 죽어서도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왜 죽은 건지 이유라도 알았으면….

 해마다 군에선 평균 120여 명의 청춘이 목숨을 잃습니다. 각종 사고나 구타·가혹행위 등이 그 이유입니다. 그러나 아직도 사인(死因)이 불분명한 청춘들도 많습니다. 가족들이 찾아가지 않은 장병의 영현(英顯·시신과 유골)이 152구에 달합니다. 냉동보관 중인 시신이 18구, 군부대 봉안소에 있는 유골이 134위입니다.

 국방부는 미인수 영현의 사인을 대부분 ‘자살’로 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유가족들은 진상 규명을 요구하며 시신을 찾아가지 않습니다. 지난 십수 년간 이 지루한 싸움은 계속됐습니다. 국방부는 2012년 7월 가혹행위로 인한 자살자 등도 순직자로 인정하도록 훈령을 개정했습니다. 하지만 가혹행위를 입증할 책임은 여전히 가족에게 있습니다. 지난 2년간 가혹행위가 인정돼 순직 처리된 장병은 46명에 불과합니다.

 군에서 짓밟힌 ‘푸른 봄(靑春)’이 우리를 슬프게 하는 계절입니다. 가혹행위로 숨진 28사단 윤 일병의 청춘도 그렇게 스러졌습니다. 사인이 불분명해 돌아오지 못한 152명의 장병도 푸르게 빛나는 청춘이었습니다. 미인수 장병의 영현은 현재 전국 15군데 군 병원과 유골 봉안소에 잠들어 있습니다. 그들의 부모가 죽은 아들에게 띄우는 편지를 청춘리포트에 보내 왔습니다. 눈물로 찍어 쓴 편지에서 애끊는 소리가 들립니다.

사진설명 = 경기도 고양시에 있는 ‘벽제 제7지구 봉안소’ 내부. 유가족이 인수를 거부한 유골 83위가 태극기에 싸인 채 모셔져 있다. 납골함 아래 칸에는 유가족들이 놓고 간 물품이 가족사진과 함께 놓여 있다. 벽제 봉안소가 납골당 형태로 정비된 후 내부가 언론에 공개된 건 처음이다. 국방부는 미인수 영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담팀을 구성하고 유가족들과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 [고양=김상선 기자]

네 명예회복이 엄마의 마지막 임무야
살았을때 아무 도움도 못 줘 미안하다

아들아, 엄마는 오늘도 부치지 못할 편지를 쓴다. 이렇게 네 이름을 적어 보지만 어디로 보내야 될지 모르겠구나. 네가 떠난 지 벌써 1년3개월. 엄마는 널 보낼 수가 없구나. 넌 언제나 엄마 속에 살아 있어. 이렇게 품고 있다고 달라질 게 없는데도 너의 손을 놓아 버리면 엄마 또한 살 수 없을 것 같아. 그리움이 짙어가고 그리움이 고통으로 바뀌어 가는데 엄마는 언제까지 여기에 있을 수 있을까.

 엄마가 아직 아들을 위해 해야 할 일이 남았구나. 억울하게 떠난 아들의 명예를 찾아주고 아들이 편히 쉴 수 있는 곳으로 데려다 놓는 게 엄마의 마지막 의무야. 살았을 때 지켜줬어야 했는데…. 미안하다, 아들아. 내 아들이 그토록 괴롭고 힘들 때 아무 도움도 주지 못했는데, 떠난 후에도 널 어둡고 외로운 곳에 홀로 남겨 두었구나. 아들을 햇빛 한 점 들어오지 않는 그 창고 같은 보관함에 두고 돌아설 때는 심장이 갈기갈기 찢겨 나가는 것 같아 견디기가 무척 힘들었다.

 오래 두진 않을 거야. 엄마가 우리 아들 꼭 제자리로 돌려 놓을게. 엄마는 대한민국과 이 나라 군을 절대 용서할 수 없다. 이런 세상에서 숨 쉬며 살아야 된다는 게 고통이구나. 외롭더라도 엄마가 데리러 갈 때까지 잘 지내고 있어야 해. 사랑해, 사랑해…. 그리고 많이 보고 싶다.

2014년 8월 11일 사랑하는 엄마가 아들에게 

※김모(사망 당시 21세) 이병은 2013년 5월 강원도 부대 내에서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됐다. 군은 군생활 부적응을 자살 원인으로 발표했다. 유가족은 과도한 업무 스트레스와 가혹행위를 자살 원인으로 주장하며 국립묘지 안장을 요구하고 있다. 군이 국립묘지 안장을 거부해 현재 대전에 있는 53군지단봉안소에 유골이 임시 보관돼 있다.

엄마는 벌써 예순넷 할머니 됐지만
국립묘지 눕히겠다는 약속 꼭 지킬게

문환아, 특출 나게 공부를 잘한 건 아니지만 속 한 번 썩이지 않았던 내 아들…. 아직도 네가 죽은 날 기억이 생생하단다. 그날 저녁 부대에서 전화가 왔었어. 네가 죽었다고…. 순간 가슴이 무너지고 머릿속이 하얗게 질렸어.

 부대에서는 ‘총기 자살’이라고만 했어. 휴가 전 아빠 준다며 담배도 챙겨 놓고 동기와 함께 휴가를 나온다며 날짜도 맞춘 네가 자살을 했다고? 수양록에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살아야 한다”는 말을 빽빽하게 적은 네가? 엄마는 믿을 수가 없었어. 자살에 사용했다는 총기도 네 것인지 확인할 수 없고, 시신이 다른 곳으로 옮겨진 정황도 곳곳에서 발견됐거든. 그러니 군의 발표를 어떻게 그대로 믿을 수 있었겠니?

 문환아, 네 죽음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동분서주하던 아빠가 눈에 선하구나. 건강하던 아빠는 네가 죽고 1년이 지나 간암으로 세상을 떠났지. 눈을 감기 며칠 전 엄마 손을 잡고 그러셨어. “그래도 문환이 장례는 내가 보고 가야 될 텐데….” 차디찬 냉동고 속에 있던 너를 화장한 뒤 아빠는 너를 따라 하늘나라로 가셨지.

 그로부터 13년이 흘렀어. 엄마가 꼭 약속할게. 네 명예를 회복시키고 국립묘지에 안장해 주겠다고. 엄마도 어느덧 예순네 살 할머니가 됐어. 얼마 남지 않은 생애지만 내 아들이 편히 누울 자리는 꼭 만들어 줄게.

2014년 8월 10일 사랑하는 엄마가 문환이에게

※김문환(사망 당시 20세) 일병은 2001년 3월 14일 초소 근무 도중 머리에 총상을 입고 숨진 채 발견됐다. 군은 총기 자살이라 발표했다. 그러나 군의문사위원회는 ‘타살 개연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결론 냈다. 유가족은 13년째 진상 조사를 요구하고 있다. 김 일병의 유골은 현재 강원도 원주 31보급대대에 보관돼 있다.

하늘나라에선 너를 고참으로 모실게
기다리란 말만 하는 아빠 혼내주렴

사랑하는 아들아, 네가 우리 곁을 떠난 지 어느덧 12년이 돼 가는구나. 2002년 11월 20일 저녁, 휴가 마지막 날 부대 정문으로 걸어가던 네 모습이 마지막이었지. 너와 헤어진 지 10분도 안 돼 부대에 복귀하지 않았다는 전화를 받았을 때 얼마나 놀랐는지…. 그 다음 날 새벽 부천의 아파트 화단에서 아주 깊은 잠을 자고 있는 너를 주민이 발견했단다. 병원에서 마주한 너는 군복은 벗겨지고 몸은 차갑게 식어 있었어.

 그날 이후 우리 가족의 싸움도 시작됐어. 부대에선 평소 과중한 훈련 등으로 스트레스를 받던 네가 부대로 돌아오지 않고 아파트에서 스스로 몸을 던졌다고 하더라. 첫날 없다던 휴가증도 19일 후에 부대 안에서 발견되고, 대대상황 일지에도 휴가자 전원 복귀라 써 놓았는데 말이야. 나는 아직도 네가 부대에 뒤늦게 들어왔다는 이유로 구타를 당하다 죽었다고 믿고 있단다.

 아들아, “눈에 진물이 난다”는 말을 들어봤니? 네가 보고 싶어 눈을 계속 뜨고 있었더니 진물이 나는가 봐. 10여 년이 지난 지금은 그 진물조차 마르려 한다. 지금도 네가 보고 싶으면 너한테 달려가 울고 만단다. 그때마다 조금만 기다려 달라는 말밖에 못하는 게 정말 미안해. 우리 저 높은 곳에서 다시 만나거든 아빠를 혼내 줘, 알았지? 내가 하늘나라 고참으로 깍듯이 모실게. 사랑해.

2014년 8월 11일 사랑하는 아빠가 희상이에게

※채희상(사망 당시 19세) 일병은 2002년 11월 21일 경기도 부천의 아파트 단지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군은 임무에 따른 스트레스로 부대에 미복귀한 후 추락사했다고 발표했다. 이후 유가족의 문제 제기로 군의문사조사위원회가 진상 규명에 나섰으나 사인은 아직 밝혀내지 못했다. 채 일병의 시신은 현재 국군수도병원 영안실에서 냉동 보관 중이다.

울고 있는 네 엄마가 너무 안쓰러워
오늘은 소주로 저녁을 대신해야겠다

안녕, 그립고 보고 싶은 내 아들. 너무나 오랜만이지. 어느덧 널 떠나보낸 지 6년이 넘었구나. 시간이 지날수록 눈물만 많아지고 바보가 되어 가는 아빠. 세상 모든 것들이 슬픔으로 아프게만 느껴진단다. 이러면 안 되겠다 싶지만 자꾸만 가라앉는 마음을 어찌할 수가 없구나. 마지막으로 울부짖으며 안아봤던 너의 차가운 체온이 지금도 아빠의 가슴과 손끝에 남아서…. 그때 조금 더 안고 있을걸. 네 감촉이 더 절절하게 남아 있게 오랫동안 부둥켜안아 줄걸. 아쉽고 안타까울 뿐….

 오늘도 엄마는 운다. 퇴근길에 전화하는데 또 운다. 이겨내려 애쓰는 모습이 안쓰러웠는데 울고 있는 엄마에게 화가 나는 건 왜일까. 차라리 술 먹고 속상한 거 풀어내는 아빠보다도 엄마가 훨씬 힘들 텐데. 아빠도 집에 가면 소주 한 병으로 저녁을 대신해야겠다.

 먼 하늘 먼 바다 그 속에다 널 그려보고 지우고…. 이렇게 널 보낼 수는 없는데…. 아빠, 엄마가 살아서 무슨 영광이 있겠니. 그래도 이렇게 바보처럼 멍청하게 널 따라가면 안 될 것 같아 마음의 칼을 간다. 널 힘들고 아프게 했던 모든 것들을 용서하지 않을 거다. 아빠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할게. 결코 용서하지 않을 거라 맹세할게.

2014년 8월 11일 사랑하는 아빠가 아들에게 

※이모(사망 당시 20세) 일병은 2008년 5월 14일 경기도 연천 5사단 부대 내에서 총기 자살을 했다. 부대 정보병으로 일하던 중 장교에게 “너는 인간도 아니다” 등의 말을 수시로 들으며 괴롭힘을 당한 게 원인으로 조사됐다. 유가족은 업무 중 스트레스와 가혹행위를 자살 원인으로 주장하며 국립묘지 안장을 요구하고 있다. 군이 국립묘지 안장을 거부해 경기도 고양에 있는 11보급대대 봉안소에 유골이 6년째 보관돼 있다.

정강현 청춘리포트팀장, 안효성·이서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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