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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취재일기

전시성 통일교육의 적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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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이영종
이영종 기자 중앙일보 통일전문기자 겸 통일문화연구소장
강일구
강일구 기자 중앙일보 일러스트레이터
일러스트=강일구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7일 민관 합동기구인 통일준비위원회 첫 회의에서 통일교육을 강조했다. “통일을 위한 낯선 여정(旅程)에 스마트하고 정확한 내비게이션이 돼 달라”고 당부하면서다.

 박 대통령 발언 이틀 뒤인 9일 서울 소재 한 대학에선 통일부 산하 통일교육원이 마련한 해외전문가 초청 특강이 열렸다.

 통일교육원 측은 일본 언론사 논설위원 H씨를 ‘한반도 문제 전문가’라며 초빙교수로 위촉해 강단에 세웠다. 그런데 특강 시작 시간이 됐는데도 행사장이 거의 텅 비었다. 학생 몇 명만이 자리를 지키자 다급해진 통일교육원과 학교 측은 옆 전산실 직원까지 동원해 자리를 채우려 했다. “한 시간만 앉아 있어 달라”고 읍소했다. 담당교수와 조교까지 포함해 겨우 열 명을 넘겼다.

 한 시간 남짓한 강의는 학생들의 관심을 끌기엔 역부족이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 집권 시기를 리뷰하고 장성택 숙청 같은 국내 언론에 이미 수차례 소개된 내용이 강의의 대부분이었다. 한 참석자는 “강사가 일본 대학에서 가르치던 북한 개론 수준의 내용을 그대로 되풀이하는 바람에 우리에겐 너무 진부한 얘기로 들렸다. 왜 돈을 들여 초청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통일교육원 측은 36쪽짜리 강의안 안내 책자를 100부나 준비했다. 지나가는 학생·교직원에게 그냥 떠안겼다.

 강의 후 만족도 조사에선 통일교육의 문제가 더욱 극명하게 드러났다. 특강 후 열린 오찬장에서 현장에 나온 통일교육원 직원은 강의를 듣지 않은 사람에게까지 설문 답변을 요청했다.

 한 참석 학생은 “강의는 듣지 않고 오찬에만 온 개성공단 기업인에게까지 설문 요청을 하자 당사자와 이를 지켜본 교수·학생 모두 황당해했다”고 전했다.

 물론 통일교육에 대한 관심을 높이려 애쓰는 담당자들의 고충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해외전문가 초청 특강을 시작하면서 통일부와 통일교육원은 “국민들의 국제적 시각을 넓히고 통일의지를 제고시키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브리핑했는데 실상은 구호와는 너무나 달랐다.

 통일부와 통일교육원은 별도로 이번 강의와 같은 행사를 계속 진행할 예정이다. 앞으로 미국인 B씨 등 해외 전문가가 H씨의 뒤를 잇는다. 이들에겐 왕복항공료와 숙식비, 국내 여비 등 일체가 제공되고 전용 사무실도 마련해준다. 별도로 주어질 시간당 강사료 등은 모두 국민세금이다.

 그런데 현장에서 본 통일교육은 알맹이는 없는 보여주기식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전시성 통일교육은 적폐(積弊) 수준이다. 적폐는 해소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통일 여정의 내비게이션’은 길을 잃을 수밖에 없다.

이영종 정치국제부문 기자
일러스트=강일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