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금 봐줄게, 용돈 줄게’하다…동네 할아버지들의 ‘나쁜 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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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얘들아, 이리 와봐. 할아버지가 손금 봐줄게.” 지난 3월 서울 서대문구의 한 놀이터. A(72)씨가 손짓을 했다. 그는 주변 임대아파트에서 혼자 살고 있었다. 여자 아이 세 명이 A씨에게 쪼르르 달려갔다.

 “손금요? 그게 뭔데요?”

 다섯 살, 여섯 살, 여덟 살 된 여자 꼬마들이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아이들은 인근 다세대 주택에 살았다. 맞벌이 부모들이 집을 비운 탓에 어울려 놀고 있었다.

 “몇 살이지? 손을 이 할아버지한테 줘봐.”

 아이들은 A씨를 평범한 동네 할아버지라고 생각했다. 별 의심 없이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A씨가 허벅지와 엉덩이를 주무르기 시작했다. 심지어 한 아이의 성기도 수차례 만졌다. 아이들은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했다. 그날 밤 여섯 살 B양은 놀이터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엄마에게 들려줬다. 경찰은 B양의 증언을 토대로 두 달 만에 A씨를 검거했다. 놀이터 폐쇄회로TV(CCTV)가 결정적인 증거였다. CCTV엔 A씨가 세 명의 여자 아이를 성추행하는 장면이 담겨 있었다.

 서울지방경찰청 성폭력특별수사대는 보호가 취약한 여자 아동 22명과 장애인 6명 등을 성추행한 혐의로 A씨 등 20명을 검거하고 이 가운데 9명을 구속했다고 10일 밝혔다. 피의자 가운데 16명은 61세 이상 노인이었다. 50~60대 어린이집 원장 3명과 사회복지시설장 1명도 같은 혐의로 붙잡혔다.

 경찰에 따르면 노인 피의자들은 500원에서 2만원까지 용돈을 주거나 간식을 나눠주며 경계심을 풀었다. 또 강아지를 구경시켜 주거나 자전거를 태워 주기도 했다. 범행은 주로 놀이터나 공터, 아파트 엘리베이터나 계단 등에서 일어났다. 일부는 자신의 집까지 아이들을 데리고 간 뒤 추행하기도 했다. 아이들은 같은 동네에 사는 데다 용돈까지 준 할아버지를 신고하기 두려워했다. 이 때문에 세 차례 이상 지속적으로 추행을 당한 아이도 있었다.

 피해 아동은 대부분 기초수급대상자 등 저소득층 가정의 자녀였다. 조부모나 한부모 가정에서 자란 아이도 많았다. 특히 부모가 맞벌이를 해 낮에 혼자 지내는 아이들이 상당수였다.

 구속된 C(64)씨는 방과후 학교 형식의 어린이집을 운영하며 여아 한 명을 1년 넘게 집중적으로 성추행했다. C씨는 이곳에서 숙제를 봐준다는 핑계로 아이를 무릎에 앉히고 몸을 만지는 식으로 추행했다고 경찰은 설명했다.

 아동·장애인 대상 성범죄는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추세다. 서울 지역 아동·장애인 성범죄 피해자는 2012년 210명에서 지난해 248명으로 늘었다. 올해는 7월까지 201명이었다. 또 서울 지역 61세 이상 노인 성범죄자 역시 2012년 257명에서 지난해 377명으로 증가했다. 올 들어 7월까지 227명이 입건됐다.

 경찰 관계자는 “아이들은 성범죄라는 사실을 잘 인식하지 못하고 신고를 해야 한다는 생각도 잘 못하기 때문에 피해가 한 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며 주의를 당부했다.

윤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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