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정의사회구현을 위한 공직자 부패방지방안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공무원사회의 정화가 단행된 데이어 부정부패의 예방을 위한 제도적 장치가 논의되고 있다. 참신한 공무원상의 정립과 공직자의 부정축재방지책의 일환으로 고위공직자의 재산등록제의 실천방안이 관계 부처에서 검토되기 시작했다. 정의사회의 구현이란 차원에서 전국민적 관심사로 부각된 공직자 부패방지문제에 대해 관계전문가의 의견을 듣는다.<편집자주>
▲고영복교수=부정부패 척결은 작금의 논의가 아닙니다 .수없이 되풀이 돼 온 거죠. 부정부패가 근본적으로 발본색원 될 수 없었던 데에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습니다. 해방 후 민족반역행위자·일제와 결탁해 치부한자들이 단죄되지 앉고 그대로 넘어온 게 그 첫 번째 구조적 요인입니다.
둘째는「6·25」의 쓰라린 경험 속에서 어떻게든 살아야한다는 동물적 충동이 한동안 의식구조를 지배한 일입니다. 셋째, 급속한 근대화의 추구과정에서 자본축적을 위해 부정부패가 일상화됐고, 넷째, 정치에 있어서 정권유지를 위한 음성적 정치자금조달이 부정부패를 조장했습니다. 다섯째 공무원사회도 청빈한 생활과 봉사에서 긍지를 느끼는 것이 아니라 치부에 대한 기대감으로 공직에 종사하는 풍토가 만연했던 것 같습니다.
▲박승서변호사=특히 국토분단과「6·25」를 겪는 동안 모든 일을 합리적으로 하지 않고 결과만을 위해 억지로 꾸려나가는 습성이 생겼고, 관존민비 의식에서 감투쓴 사람에게 돈을 주는 일은 비난받을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많았지요.
▲김용내차관=첨부하자면 우리의 전통적 윤리관에서는 정직의 가치서열이 별로 높지가 않았습니다. 예를 들어 효를 위해서는 거짓말도 정당화되어왔어요.
그리고 특히 지적돼야 할 것은 어느 집권자이건 관기쇄신을 내걸지 않은 사람이 없었지만 실제에 있어서는 그 실천운영책임자 스스로가 부정에 연관돼 있었죠.
그래서 근원적 부정부패 색출은 못하고 외형적 통계숫자위주, 발표위주의 숙청작업만이 있었던 것입니다.
▲고=지금은 부정부패의 발본색원에 대한 정치적의지가 강력히 나타나고 있는데 문제는 그것이 의지만으로는 해결되는 게 아니라는데 있습니다..
설혹 공무원 사회를 정화하는 방안이 수립된다해도 다른 부문에서 호응하지 않으면 효과가 없는 것입니다. 부정부패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주변 사회적 환경과 조건을 아울러 검토하는 여유를 가져야합니다.
▲박=전국민의 호응 없이는 발본색원이 어렵죠. 결국 국민정신자세가 제일 중요합니다. 특히 정치부패의 방지가 숙제입니다. 그것만 막으면 하위직 공무원의 부패문제는 저절로 해결될 걸로 봅니다.
▲김=이번 정부의 노력에는 국민으로부터 상당한 호응이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국민스스로 부정에 오염되어있다고 죄의식을 느끼고 분개하고 있는 것 같아요. 공무원이 올바른 방향으로 선도적 역할을 하면 사회적 분위기가 성숙될 것 같습니다.
▲고=기대해 봐야겠군요. 문제는 공무원의 생활수준은 타 분야보다 훨씬 낮더라도 깨끗하게 생활하면 다른 사람들도 따라 올 것이라는 보상이 보장되어야 하는 게 하나 있고, 또 하나는 공무원의 정직히 너무 강조되다보면 질서와 규범에 집착한 나머지 생산·개척·진취·창조를 특징으로 하는 우리의 성장위주 개발정책의 의욕을 저해하는 상충적 요소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입니다.
▲박=부정부패를 없애기 위해서는 몇 가지 전제가구비되어야합니다.공무원신분보장제도의 확립이 그 첫 번째 입니다. 그리고 선거공무원의 선출에 돈이 많이 드는데서 부패의 싹이 나므로 선거제도를 개선해야 합니다.
우리 같은 대륙식 공무원제에서는 모든 권한을 특정인에게 집중시키지만 중요결정을 위원회에서 하는 식으로 분산시켜야 해요. 또 공무원부정부패 단속을 형법이나 특가법 정도에만 맡기지 말고 직무상 알게된 지식의 활용이나 뇌물의 유도, 직무와 무관하더라도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 등을 세분해서 규제하는 외국의 예를 참조할 필요도 있지요.
▲김=공무원도 평균인간에 불과하므로 성장지향성 사회에서 그들에게 정직만 요구하는 것은 무리라는 고 교수님 말씀에 동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청렴한 정부, 참신한 공직자를 갖기 위해서는 반드시 선행시켜야 할 것이 인사제도개선과 생계보호입니다.
고도산업사회, 기술개혁시대에서 관료집단의 자기 혁신 없이는 새 시대에 대처할 수 없는 것이니 인사제도에서 혁신능력을 부여해야 합니다. 그것은 바로 공정한 인사제도로서만 가능합니다.
생계보장과 관련해 지금 당장은 입에 풀칠하고 지낼 수 있더라도 노후대책과 의료·자녀교육에 관한 최소한의 보장이 없으면 부패의 유혹을 받기가 쉽습니다. 정부재정문제 등 제약조건은 많지만 개선하려고 노력중입니다.
▲박=공무원 소비수준이 가끔 논의가 되는데 가난한 것을 고통스럽고 창피한 것으로 알지 말고 오히려 떳떳하게 생각하는 풍토가 되어야 합니다.
흔히「좋은 자리」라고 하면 보람있는 직책보다는 부수입이 생기는 자리로 생각하는데 그런 풍토는 사라져야 할겁니다.
▲김=우리 나라 사람은 자리에 대한 욕구가 대단한 데 적성과 능력이 발휘되는 자리가 좋은 자리란 의식구조가 되어야겠지요.
▲고=우리 공무원은 과거 경치바람을 너무 탔던 것 같아요. 예를 들어 공무원이 어느 연한·직위까지는 장래에 대한 예측이 가능하지만 그 이후는 정치적으로 결점이 되죠. 그래서 더 이상 가망이 없는 사람은 이권만 생각합니다.
그러니 공무원제도 자체가 올바른 행동을 유도하는 장본인이 되어야 하고 더욱이 외부작용으로 신분사회가 흐트러지지 않게 보장해줘야 합니다.
한가지를 더 얘기하자면 공무원은 감시되고있다는 의식을 가져야 부정이 줄어듭니다. 사정당국만으로는 안되고 신문기자·민원인·동료 등을 무서워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재산등록도 한 방법이 될 수 있지만 신원조서에 일상생활의 정직성·청렴성이 중요하게 평가되도록 하여 고과와 인사배치에 반영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제까지와 달리 청렴하고 실리에 둔감한 사람일수록 높은 자리를 차지 할 수 있는 인사체제로 바꾸는 것이 좋다고 봅니다.
▲김=부패의 제도적 예방책의 일환으로 정부에서 재산등록제를 검토하고 있는데 이를 실시하는데 따른 여러 문제점들을 짚고 넘어가 볼까요.
▲박=국민들은 이 제도가 과연 실효성 있게 지탱될 것인가에 관심이 많습니다. 과거 민주당에도 비슷한 법안이 국회에 제출되었다가 흐지부지된 일이 있었는데 이번만은 실효성 있는 제도로 만들어야합니다.
▲고=이 제도의 실천여부에 문제는 있으나 하는 게 낫다고 봅니다. 재산등록은 곧 재산공개를 의미하는데「프라이버시」의 침해문제가 거론되겠지만 공직신분에 있으면 그 정도의「프라이버시」는 일단 희생되어야겠지요.
▲박=미국의 공직윤리법에도 공직자의 소득을 공개하도록 되어있지요.
▲고=고위직 공무원뿐 아니라 국회의원· 법관 등 공직자층은 경제생활을 공개토록 사회분위기를 끌고 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현재의 여러 제도를 함께 고쳐야 합니다. 현금은닉을 못하도록 은행의 비밀구좌제를 철폐한다거나 세무자료를 철저히 보완해 정확한 수입을 측정하는 것 등입니다.
▲김=동감입니다. 실천성 있는 운영을 위해서는 지도층의 솔선수범과 입법의 기술적 문제가 해결되어야 합니다. 지난64년 국무총리 훈령으로 3급이상 공무원에 대해 재산을 신고토록 했으나 지도층이 호응하지 않아 실패한 예가 있습니다. 또 기술적인 측면으로는 허위신고·재산은닉 등을 어떻게 막고 수많은 사람의 재산증감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파악하느냐가 문제입니다.
▲고=아무튼 물샐틈없는 조치가 강구되어 대상자들이 아무리 빠져나가려고 몸부림쳐봐야 소용없다는 인식을 갖게되어야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봅니다.
▲박=대상자의 범위를 어떻게 잡는지도 중요하지요. 장·차관만 우선 실시해 실태를 완전히 장악한 뒤 단계적으로 l급,2급 이상 공무원 하는 식으로 확대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김=단계적으로 확대해 가는 것도 한 방법이고, 혹은 시일을 두고 철저히 준비를 해 일시에 시작하는 방법도 있을 수 있습니다. 또 부패도가 상대적으로 높다는 기관을 우선적으로 시행하느냐 여부도 연구되어야겠지요.
▲박=제 생각으론 공무원도 공무원이지만 정치인의 재산을 공개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봅니다. 외국에도 정치인의 재산을 등록하도록 하는 예가 있습니다. 그 다음에 공공단체 종사자들에게까지 폭을 넓히는 것이 순서겠지요.
▲고=1차 적으로는 공직자를 대상으로 하지만 앞으로는 사회인이라 할 수 있는 모든 사람이 스스로 재산을 공개하는 풍토로까지 발전되어야 할겁니다.
한편 이 제도의 실시에 따른 부작용도 고려해야지요. 보상 방법 없이 청렴만을 강조하면 우수한 인재들을 공무원으로 끌어들이기 어려운 면도 있어요.
또 지위가 올라가면 일반적으로 윤택한 생활을 기대하게 마련인데 이것이 좌절되면 판에 박힌 관료주의가 더 심해져 사회발전을 저해하는 요소로 작용할 수로 있어요.
▲김=부작용과 문제점에 대한 대책이 아울러 마련돼야 하겠지요. 60만 공무원의 대부분은 청빈한데 지금까지 일부사람들 때문에 도매금으로 누명을 쓴 셈이니까 이 제도로 오히려 홀가분하게 생각할 사람도 많습니다.
지금은 사정관계자가 일신되고 지도층의 핵심인물들이 부정에 연관되어 있지 않아 솔선 호응할 각오이기 때문에 이 제도가 어느 때보다 성공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고·박=기대해 보겠습니다.

<좌담참석자>
▲고영복씨 (서울대교수·사학자) ▲김용내(총무처차관) ▲박승서씨(변호사) (가나다순)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