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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 부패 근원을 삼제 하는 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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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민주·복지와 함께 새시대의 가장 큰 명제로 대두된 정의의 실현은 어떤 방법으로 가능한 것인가. 또 우리 사회에 아직 정의롭지 않은 요소가 남아 있다면 그것은 무엇이며 어디에서 결과한 것일까.
이런 물음에 대한 진지한 추구와 성실한 문제 해결의 노력은 오늘의 시대적 요청이 되고 있으며, 이런 노력이 비단 정부나 사정 기관의 소관 사항일수 만은 없다. 정의 문제에 대한 오늘의 이같은 관심의 제고는 곧 지난날 우리 사회를 좀먹은 부정의의 정도를 반증하는 것이며, 따라서 문제 해결의 단초를 지난날의 경험에서 구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민주 국가에 있어 정의의 1차적 실현은 「게임·룰」의 준수에 있다. 다수 성원이 합의하여 승복하며, 아울러 평등하게 적용되는 「룰」에 따라 모든 성원이 보호받고 규제되고 통정될 때 그 사회의 정의 기반은 일단 구축된다. 이 「룰」의 집행과 실시의 담당은 물론 정부이며, 따라서 정부의 각종 정책·조치 등은 전체 성원의 모범이 되고 준거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헌정사는 바로 정부 스스로에 의해 이「룰」이 지켜지지 않고 집권자의 의지나 편의에 따라 자주 개선됨을 보여주고 있다. 개헌에 의한 집권 연장이나 긴급조치에 의한 통합 방식, 정치 자금 조달과 유관했던 경제 정책, 권력 강화를 위한 인맥·지연 등의 인사정책 등이 다 그런 예가 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당연히 추구돼야할 국가적인 이념·목표는 특정 집단이나 수혜층의 이익을 위해 편의적으로 변질·왜곡되고 이른바 권력형 부정 축재·정치 비리 등의 풍토가 여기서 조성됐던 것이다. 이에 따라 능력 있고 청렴하며 정직한 사람이 기용·발탁되기보다는 자기들의 이익에 봉사하는 인간형·자기「그룹」과 체질·생리가 비슷한「타입」의 인물들이 다 출세하고 성공하는 예가 많았다.
이렇게 되면 널리 권장돼야할 정직·청렴·근면 등의 여러 덕목은 오히려 출세나 성공의 저해 요인으로 보이고 그 보다는 인맥·지연의 개발과 환심을 살 기회의 포착이 중시되는 이른바 가치관의 전도 현상이 필연적으로 나오게 된다.
그리하여 치부나 성공에 이르는 과정이나 방법의 가치 평가는 경시되고 어떡하든 출세를 하고 치부를 하고 보자는 풍조가 만연하며, 그렇게 하여 획득한 직위나 금력은 다시 자리와 부를 더욱 튼튼하게 하는 수단으로 되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문제되는 부정 부패, 가치관의 전도 현상은 실로 이같은 완강한 과정의 소산이며 이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이 과정을 단절하는 단호한 노력의 집중적인 경주가 장기적으로 있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정부가 새로 구성한 사정 협의회의 첫모임을 통해서 밝힌 사정 기본방침과 전 대통령의 의지 표명을 주목하고자 한다.
10일 회의에서 전 대통령은 공직자 축재를 막는 제동 장치로 고위 공직자 재산등록제의 실시를 검토하도록 지시하면서 부정 부패의 근본 원인이 18년간의 장기 집권 중 각계 지도층의 사명감 결여에 있었다고 지적했다. 또 이날 사정 협의회는 장기 집권으로 인한 지도층의 이념 결여 및 부정 부패가 사회 전반으로 확산된 비리와 부정의 근본 원인이었다고 분석했다.
제시된 대책을 보면 전 대통령이 지시한 고위 공직자 재산 등록제의 실시를 포함한 각종 장·단기 계획의 수립·실천과 사정기관의 활성화, 정신 개혁 운동의 전개 등이 포함돼 있고 지도층 부패의 척결과 문제의 사전 예방에 중점을 둔다는 것이다.
부정 부패의 근본 원인으로 지적된 장기 집권은 새 헌법 안의 내용이나 새 지도층의 자세로 볼 때 많은 국민은 안도할 수 있다고 보며, 아울러 지도층의 사명감에 대한 기대 역시 아직은 높다.
이 두가지 요청의 충족이 부정 부패를 막는, 다시 말해 정의 사회의 구현을 위한 가장 큰 전제가 되는 셈인데 사정 업무에 관한 정부의 기본방향이 바로 여기에서 시작하고 있음은 다행스럽다. 아울러 공직자 재산등록제의 채택은 부정 부패 방지의 제도화 모색이라는 점에서 획기적이라고 보여진다.
과거의 서정 쇄신이 감시와 처벌·징계에 치우쳐 감시의 눈길이 매서울수록 부패의 기술도 지능화 하는 악순환의 일면을 보여왔는데 재산등록제는 이런 악순환을 되풀이할 필요 없이 원칙적으로 공직 사회의 부패 요소를 봉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일찍부터 채택의 필요성이 논의돼온 것이다. 이미 이 제도는 미국·「필리핀」등 여러 나라가 채택, 실시하고 있으나 「필리핀」과 같은 나라에서는 제대로 실시되지 않음으로 해서 별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이 제도는 집행자의 단호한 실시 의지와 입법 기술에 성공의 큰 열쇠가 있다고 본다. 소유재산의 도피·은닉·분산 등에 관한 나쁜 지혜가 지난 세월 얼마만큼 발달되었는가도 고려하여 입법할 필요가 있다고 보며, 적용 대상 공직자의 범위도 새 제도의 정착 실효를 보아가며 단계적으로 확대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또 등록해야할 재산의 출처에 관해서는 새삼 문제삼기보다는 기정사실로 하고 등록 후 재산 가감 요인이 선명하게 나타나도록 하는 방향에서 입법하는 것이 실효적이라고 생각된다.
앞으로 더 구체적인 세부 지침이 밝혀지겠지만 부정 부패의 해결 문제는 제도보다 는「사람」이 중요하고 일반 국민보다는 지도층에 더 많이 좌우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사람들은 그전이 유리하다고 판단되면 그 길로 가게 마련이다. 부정 부패의 길로 가면 파멸과 낙오가 있을 뿐이며 성공과 출세의 지름길은 능력과 근면·정직·청렴에 있음을 누구나 확신할 때 부정부패는 사라지고 정의로운 사회는 구현될 수 있다. 이번에야말로 이 과제는 실현돼야하고 또 실현될 수 있다고 믿는다. 문제에 대한 관심이 이토록 높았던 적도 없고 해결에 임하는 정부의 의지 또한 과거 어느 시기보다 굳기 때문이다. 「싱가포르」·자유중국에서조차 성공한 일을 우리라고 못해낼 리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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