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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 후계책봉만 남긴 김일성 가족의 「성역화」 | 북한의 정권세습 전망-김갑철 교수 발표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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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북한 김일성의 후계자로 지명된 김정일이 권력을 물려받을 수 있을까』 『김정일이 권력을 물려받는다면 얼마나 유지할 수 있겠는가』-.
30일 「북한의 후계체제」라는 주제로 통일원이 개최한 북한연구 학술토론회에서 김태서씨 (국제문제연구소 연구위원), 박동운씨 (한국일보 논설위원), 김갑철 교수 (청주대) 등 3명이 주제발표를 하고 이런 의문에 대한 토론을 벌였다.
이에 대한 해답이 비교적 쉽게 나온 김갑철 교수의 「북한의 정치특성과 정권세습의 전망」 내용을 요약한다면 다음과 같다.
김일성이 아들인 김정일에게 1인체제를 세습시키려 할 수 있는 것은 북한공산주의자의 특수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중공과 동구의 선진 공산국가들이 민주화와 시장경제의 도입이라는 변화를 추구하고 있는데 반해 북한은 70년대부터 오히려 정치적인 통제와 폐쇄적인 「이데올로기」 운동을 강화해오고 있다. 즉 김일성의 신격화를 제도화하기 위해 주체사상에 의한 개인 신격화 이론을 전개하고 「충성의 속도전」 「삼대혁명소조운동」 등을 통해 충성심을 강제로 끌어내고 있다.
이렇게 미감염된 사회에서 김일성이 죽은 후에도 자신에 대한 격하운동 없이 「김일성 없는 김일성주의」를 후대까지 그대로 계승시키기 위해서는 가장 믿을 수 있는 친아들인 김정일을 후계자로 책봉할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김일성은 71년에 이미 『청년들은 대를 이어 혁명을 계속해야 한다』 『아버지가 다하지 못한 혁명위업은 아들이 함으로써 대를 이어가며 실현할 수 있다』는 등 후계자 이론을 내세운 뒤 73년 김정일을 후계자로 지명하고 74년 2월에는 동생인 김영주를 2인자의 자리에서 몰아냈다.
김일성의 신격화를 위해 김일성 가계에 대한 성역화가 이루어지는 가운데 김정일이 후계자로 지명되자 74년부터 김정일의 생모이고 김일성 전처인 김정숙에 대한 찬양운동이 대대적으로 전개됐다.
「김정숙 어머니 노래」를 인민개창운동으로 전개하고 동상을 건립하고 김정숙 동지 회상연구 발표회 등이 개최되었다.
그러나 김일성은 자신의 후계체계로 젊은 「엘리트」군을 선택하지 않고 아들인 김정일 개인을 선택했다는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3대혁명소조라는 젊은 「엘리트」군을 육성해 아들로 하여금 관장하게 하고 봉건적 세습제를 택함으로써 「마르크스-레닌」주의의 정통성을 이탈한데 대해 「왕체사상」이라는 이론을 동원해 「이데올로기」의 도전을 미리 제거하고 있다.
또 당내외 및 외국의 「마르크스」주의자들의 도전을 피하기 위해 김정일의 명칭을 「당중앙」, 「미래의 태양」 「향도의 햇발」 등 은유적으로 표현하는 신중성도 보이고 있다.
하여튼 당 총비서와 같은 실권을 행사하고 있는 김정일이 후계자로 지명될 것이 확실하고 황태자 책봉식만 남아있으며, 그 시기가 이번 10월10일 거행될 노동당 6차 대회일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김정일이 후계자로서 유지해갈 수 있을지에 대한 대답은 김일성이 살아있는 한 가능할 것 같다.
왜냐하면 김정일에 대한 복종이 김일성에 대한 충성과 같다는 정치교육으로 후계자로서의 위치가 유지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김일성이 10년정도 더 살아 그 동안 당내의 저항세력을 말끔히 청소한다면 김일성 사망직후 김정일이 「북한의 화국봉」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여진다.
그렇지만 문제는 김일성 없는 김정일체제가 얼마나 유지되느냐에 있다.
김정일체제가 계속 유지되느냐 여부는 ①집단지도체제를 가미한 김정일체제가 되느냐 혹은 1인체제가 되느냐 ②김정일의 정치능력 ③군·관료 등 앞으로의 정치「엘리트」의 성격 ④중·소의 체제변화 정도 ⑤남북한의 긴장완화 정도 ⑥북한의 경제발전 수준 등 여러 변수의 영향을 받게 될 것이다.
김정일의 유일 체제가 장기간 유지될 것인가 아니면 집단지도체제를 가미하든가 당과 정부의 겸직이 금지된 당·정 이원체계가 유지될 것인가를 판단하기는 아직 이르다.
다만 김일성의 사망이라는 전환기가 오면 사회·경제적 변화에 적응하기 위한 개혁이 수반될 것이며 후계체제의 정통성 확립을 위한 경영체계의 합리화 등 목표에 대한 수단의 합리성이 증가될 것으로 보인다. <문창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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