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탄핵 공방, 10년 전 노무현 때와 닮은 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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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오바마(左), 노무현(右)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을 둘러싸고 미국 정치권에서 벌어지는 탄핵 공방은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당시의 한국 정치 상황을 떠오르게 한다. 탄핵 공방이 불거진 이유에서부터 대통령의 여론 지지율 추락까지 닮은꼴이다.

 미국의 극우 보수파인 티파티와 공화당 일부 의원은 탄핵 사유로 대통령 권한 남용을 주장했다. 오바마 대통령이 의회를 거치지 않은 채 행정명령을 내리는 편법을 쓰며 3권 분립을 해치고 있다는 비판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공화당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9월 행정명령을 통해 불법체류자에 대한 구제조치에 나설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공화당이 반대한 최저임금 인상도 행정명령으로 우회 도입했다. 세라 페일린 전 알래스카 주지사는 지난달 11일(현지시간) 오바마 대통령을 “제왕적 대통령”으로 지칭한 뒤 “막 나가는 행정부에 대한 마지막 견제가 탄핵”이라고 주장했다.

 2004년 노 전 대통령 탄핵도 월권 논란에서 시작됐다. 당시 노 전 대통령이 방송기자클럽에서 “(여당인) 열린우리당을 압도적으로 지지해 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가 야당이 대통령의 선거 개입으로 들고 일어났다.

 의회의 세력구도도 비슷하다. 하원을 장악한 공화당은 수적 우위를 바탕으로 오마바 대통령의 각종 입법안을 저지해 왔다. 2004년 한국 국회도 여소야대였다. 여당인 열린우리당(47석)은 한나라당(145석)은 물론 민주당(62석)에도 못 미치는 원내 제3당에 불과했다.

 지지율이 급락하며 탄핵 요구의 배경으로 작동했던 여론 상황도 유사하다. 4월 여론조사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취임 이래 최저 수준인 41%의 지지율을 보였다. 취임 때 여론 지지율 60%로 출발했던 노 전 대통령도 집권 1년 만에 22%로 추락했다.

 그러나 미국 정치에서 탄핵이 현실화될지는 불투명하다. 존 베이너 하원의장 등 공화당 지도부가 탄핵에 소극적이다. 오바마 대통령을 권한 남용 혐의로 제소하는 결의안 통과를 주도했던 베이너 의장은 탄핵에는 “그럴 생각이 없으며 앞으로도 그렇다”고 선을 그었다. 반대로 백악관의 댄 파이퍼 선임고문은 “탄핵 가능성을 가볍게 보고 있지 않다”며 탄핵 위기를 부채질했다. 여기엔 ‘탄핵의 추억’이 작동한다고 미국 언론들은 분석했다. 공화당 지도부가 1998년 클린턴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에 나섰다가 중간선거에서 패배했던 전례가 있다.

워싱턴=채병건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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