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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피아 놓친 윤리위 재취업 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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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장세정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김회룡
김회룡 기자 중앙일보 차장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장세정
사회부문 기자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 부이사관을 끝으로 퇴직한 김모씨는 감사담당관을 역임했다. 공정위 직원들의 비위 사실을 잘 알고 있을 테니 법무법인 재취업 이후 (친정 부처에) 영향력을 행사할지 모른다.”(기자)

 “개연성은 있지만 그것만 갖고는… (재취업을 막기 어려웠다). 그 법무법인은 공정거래 분야의 후발 주자라서 (김 부이사관을) 모신 거라고 한다.”(안전행정부 당국자)

 정부서울청사 13층 안행부 기자실에서 7월 31일 오간 대화다. 관피아(관료 마피아) 척결을 위해 대폭 강화된 공직자윤리법 시행령을 반영한 첫 재취업 심사(7월 25일) 결과를 설명한 자리였다. 그동안 ‘특급기밀’인 양 심사 결과를 감추고 한 번도 공개하지 않았던 공직자윤리위원회가 세월호 참사 이후 관피아가 공분을 일으키자 처음 공개 브리핑에 나서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여전히 국민의 눈높이를 맞추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윤리위가 관피아의 민간기업 재취업을 제대로 여과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공정위의 경우를 보자. ‘경제검찰’로 불리는 공정위는 기업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서울에서 개업 중인 한 법무법인의 임원은 “국민은 잘 모르지만 ‘공피아(공정위 마피아)’의 폐해가 심각하다”고 꼬집었다. 그에 따르면 공정위는 기업들에 엄청난 과징금 폭탄을 때린다. 기업들은 억대의 몸값을 지불하고 공정위 간부 출신을 로비스트로 영입한다. 이들은 친정에 영향력을 행사해 과징금을 깎아 주는 역할을 한다. 공피아를 둘러싼 먹이사슬은 지금도 작동하고 있다고 이 임원은 주장했다.

 사정이 이렇다면 윤리위는 권력기관인 공정위 출신의 재취업 심사를 더 꼼꼼하게 해야 하는 것이 상식이다. 하지만 결과는 실망스럽다. 김씨의 경우 청와대 행정관으로 파견근무 중이던 지난해 11월 기업으로부터 금품과 향응을 받은 혐의로 민정수석실의 감찰에 적발되자 공정위로 복귀했다. 김씨는 징계 절차가 시작되기 전인 2월에 사표를 냈고 공정위는 징계하지 않았다. 청와대가 4월 “부처에 복귀한 전직 행정관도 징계하라”고 지시했으나 허사였다.

 윤리위는 이런 사실조차 까맣게 모르고 있었던 것으로 3일 뒤늦게 확인됐다. 안행부 윤리복무관실 간부는 “ 인사자료에 그런 내용이 없어 심사 때 (비위 전력을) 몰랐다”고 말했다. 관피아 척결을 외친 박근혜 정부 청와대에서 미래전략수석(차관급)으로 일하던 최순홍씨 등 17명의 관료가 이번 심사에서 재취업 면죄부를 받았다.

 3월에 취임한 김희옥 공직자윤리위원장(장관급)은 법무부 차관과 헌법재판소 재판관을 지냈다. 위원장의 책임 있는 해명이 필요하다.

장세정 사회부문 기자
일러스트=김회룡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