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스 왕세자와 마침내 결혼한 커밀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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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 9일 영국 찰스 왕세자와 커밀라 파커 볼스가 ‘세속 결혼식’을 올린 런던 외곽 윈저시의 시청 계단에 양측 자녀들이 함께 섰다. 오른쪽부터 윌리엄 왕자, 해리 왕자, 로라 파커 볼스, 톰 파커 볼울스. [윈저 AP=연합]

▶ 세인트 조지 채플 결혼 축복 예배에 앉아있는엘리자베스 여왕. [윈저 AP=연합]

마침내 커밀라 파커 볼스(57)가 35년의 밀애 끝에 찰스(56) 왕세자와 결혼했다. 커밀라는 9일 눈부신 은색 드레스와 화려한 깃털이 달린 챙 큰 모자를 쓰고 결혼식장에 나타났다. 우아하고 화려한 패션을 갖춘 커밀라는 엷은 미소를 시종 잃지 않았다. 커밀라와 찰스로서는 35년 전의 첫사랑이 결실을 보는 의미심장한 순간이다. 비록 영국인 절대 다수가 고(故) 다이애나 왕세자비를 더 아끼며, 따라서 커밀라와 찰스의 관계를 불륜으로 보고 있다 하더라도.

커밀라와 찰스가 처음 만난 것은 1970년 한 폴로 경기장에서다. 커밀라가 먼저 말을 걸어왔다. 커밀라는 대범하게도 자신의 증조모가 찰스 고조부(에드워드 7세)의 애인이었던 사실을 말하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찰스는 왕실 사정에 밝고 푸근한 성격인 연상의 커밀라에 푹 빠졌다.

문제는 찰스의 우유부단한 성격이다. 찰스는 청혼하지 않고 해군에 입대했다. 전통적으로 왕족은 장교로 복무한다. 커밀라와의 만남은 자연히 뜸해졌다. 이 틈에 등장한 인물이 앤드루 파커 볼스(커밀라의 전 남편)다. 찰스의 친구인 앤드루는 커밀라를 사랑한다며 쫓아다니던 미남이다. 커밀라는 파커 볼스의 집요한 청혼에 찰스를 잊기로 했다. 두 사람은 73년 결혼해 1남1녀를 두었다.

더 큰 문제는 찰스가 여전히 커밀라를 잊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찰스는 첫사랑을 가슴에 품고서 81년 다이애나와 결혼했다. 다이애나는 커밀라와 대조적인 성격이다. 뭔가를 늘 갈구하고 의지하고 싶어하는 민감한 여성이다. 찰스는 커밀라에게서 느끼던 푸근함을 찾을 수 없었다. 찰스는 다이애나와의 불편한 부부생활에 대해 커밀라에게 조언을 구하기 시작했다. 다이애나는 점점 찰스에게서 멀어질 수밖에 없었다. 다이애나는 95년 TV와의 인터뷰에서 "우리 결혼생활은 좀 복잡했다. 세 사람이 있었으니까"라고 말했다. 그래서 다이애나 스스로 맞바람을 피웠다는 고백이다.

커밀라 역시 남편과 이혼했다. 94년 찰스가 커밀라와의 오랜 불륜을 공개했기 때문이다. 찰스는 커밀라와 재혼하고 싶어했다. 처음엔 여왕이 반대했다. 그러다 97년 다이애나가 비운의 교통사고로 숨지자 이번에는 여론이 허용하지 않았다. 커밀라는 여론의 화살을 피해 늘 엎드려 있어야 했다. 찰스와의 사적인 관계는 사실상 부부이면서도 공식적인 자리에는 나서지 못했다. 공식행사에 찰스와 함께 처음 등장한 것은 99년이었다.

2003년 커밀라는 찰스가 사는 클레어런스궁으로 아예 거처를 옮겼다. 동거하면서도 쉬쉬했다. 그러다 지난 2월 전격적으로 약혼을 선언했다. 여론은 여전히 부정적이다. 그래서 커밀라는 '웨일스 공주(Princess of Wales)'란 호칭을 얻지 못했다. 그보다 한 단계 낮은 '콘월 공작부인(Duchess of Cornwall)'으로 불린다. 찰스가 왕위에 올라도 '왕비' 대신 '왕의 배우자(Consort)'라고 불리게 된다.

런던=오병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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