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파는 기득권 … 여당과 협상하면 2중대라고 공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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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당은 군대가 아니다. 싸워 이기는 전투 조직이 아니라 국민들의 마음을 사 정권을 잡는 게 목적이다. 하지만 새정치민주연합은 언제부턴가 여야 대결에서 이기는 정치에만 골몰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지난 5월 초 일이다. 새정치연합은 기초연금법 처리를 놓고 9시간의 의원총회를 열었다. 강경파 의원들은 정부안 수용에 극렬히 반대했다. 참다 못한 노웅래 당시 사무총장이 “당이 개판 오 분 전이다. 십인십색이다”고 언성을 높였다. 강경파들은 “우리가 개냐”고 고함을 질렀다. 김한길·안철수 공동대표조차 강경파들의 서슬에 눌렸다.

당초 지도부가 전체 의원들에게 문자메시지로 찬반을 물은 결과는 정부안 수용에 찬성하는 의원이 73명, 반대하는 의원은 35명에 불과했다. 결과적으로 35명의 소수 강경론자가 당의 의사결정을 막은 셈이다.

 2011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안을 놓고 대치했을 때다. 민주당 시절이던 당시 이종걸 의원은 “개혁 진보진영의 면전에 인분(人糞)을 투척한 것” “여당의 2중대이자 트로이의 목마” 등의 문구가 담긴 공개성명서를 발표했다. 놀랍게도 그가 공격한 대상은 같은 당의 원내대표였다.

당시 김진표 원내대표가 한·미 FTA 비준안에 반대하는 의원들에게 “내용도 모르고 무조건 반대하는 게 선(善)이라고 생각하는 강경파들은 ‘쇼’를 한번 보이려는 것”이라고 말한 게 발단이었다.

 이런 일들이 반복되면서 새정치연합에는 침묵의 나선이론이 지배하고 있다. 목소리가 큰 소수 강경파들의 주장에 질린 합리적 중도세력들은 침묵한다. 그러다 보니 강경파들의 주장은 쉽게 당론이 된다.

 원내수석부대표를 맡았던 정성호 의원은 1일 “소수 강경파들은 민심을 이해하는 눈과 프레임(틀) 자체가 다르다”며 “그들은 아직도 이번 선거에서 진 원인을 오히려 지도부가 정부·여당에 대한 투쟁 수위를 낮췄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 의원은 “강경파 의원들은 이미 기득권이 돼버렸다”며 “여당과 합의를 하려고 하면 무조건 ‘정부와 재벌의 하수인이냐’며 반발하는 바람에 당내에서 대화와 타협의 목소리가 사라지고 있다”고 토로했다.

 군인 출신 백군기 의원은 “최소한 정부나 기관에서 발표한 사안은 믿고 논의를 시작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천안함·무인정찰기 사건 등에서 정부 발표마저 부정하고 이의를 제기하면 누가 야당을 신뢰하겠느냐”고 했다. 그러면서 “운동권 출신들이 국회에서도 과거 문화를 답습하고 있다”며 “장사도 안 되고, 먹고살기도 힘든 국민들에게 정의와 명분만을 강요해서 어떻게 표를 얻을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강경파로 분류되는 한 의원은 “스스로의 주장에 무리가 있다는 걸 알면서 어쩔 수 없는 경우도 있다”며 “내가 중도적 행동을 하면 당장 지지세력들이 ‘의원 시켜줬더니 자격이 없다’고 공격하는데 어쩌겠느냐”고 토로했다.

최민희 의원은 “국정원 국정조사나 세월호 참사가 너무 큰 사건이었지만 경제나 민생 등과도 균형을 맞췄어야 했다”며 “국민의 심판을 받은 건 우리가 균형감을 잃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강태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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