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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캠핑장 24곳 현장 점검해 보니 ‘안전 무방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난 18일 캠핑용 캐러밴 45대가 늘어선 인천의 W캠핑장. 캐러밴 마다 연결된 액화석유가스(LPG) 통이 내리쬐는 햇볕에 그대로 노출돼 있다. 바로 옆에선 에어컨 실외기가 후텁지근한 바람을 연신 LPG통 쪽으로 쏟아낸다. 근처에 소화기가 있지만 흔들어보니 내용물이 굳은 듯, 아무 소리가 나지 않는다. 현장을 점검한 숭실사이버대 이창우(소방방재학) 교수는 “LPG통은 직사광선을 피하고 빗물이 들어가지 않게 배치해야 한다”며 “에어컨 실외기 바람까지 쐬면 폭발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같은 날 물놀이 계곡 옆에 자리한 경남 밀양의 D캠핑장. 바닥 여기저기 전선이 깔려 있고 나무에도 걸쳐 있다. 전기 시설인 배전함이 곳곳에 설치돼 있지만 사고 위험이 있을 때 자동으로 전기를 끊는 누전차단기는 없거나 작동하지 않았다. 한국국제대 김유진(소방방재학) 교수는 “전선을 바닥에 그냥 깔아놓으면 감전 사고의 위험이 있다”말했다.

피서객들이 많이 찾는 야외 캠핑장 상당수가 안전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용객들이 설치된 LP가스 시설이나 휴대용 가스렌지 등을 이용해 고기를 굽고 밥을 지어먹는 장소인데도 소화기조차 비치되지 않았다. 본지가 지난 15∼18일 한국화재소방학회 소속 교수 등 전문가들과 함께 무작위 선정한 전국 캠핑장 24곳을 현장 점검한 결과다.

24곳 중에 텐트를 치거나 캐러밴이 있는 캠핑 사이트에 소화기를 비치한 것은 두 곳(8%)뿐이었다. 20곳에는 안전 전담요원이 한 명도 없었다. 비상시 대피하라고 알릴 방송시설이 없는 캠핑장이 10곳(42)%에 이르렀다.

대구 팔공산의 D캠핑장은 70도를 넘는 절벽에서 불과 1m 떨어진 곳에도 텐트 칠 자리를 잡아 놓았다. 바로 옆에는 절벽에서 굴러 떨어진 것으로 보이는 수십 개의 돌이 보였다. 대구보건대 최영상(소방안전관리학) 교수는 “폭우가 내리면 돌이 텐트 위로 떨어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 캠핑장의 일부 지역은 차에서 내린 뒤 승용차조차 갈 수 없는 길을 60~70m 걸어 올라가야 다다른다. 불이 나면 소방차가 갈 수 없다. 소화기를 갖다 놓지도 않았다. 대구시가 관리하는 캠핑장인 데도 그렇다. 팔공산자연공원관리사무소 측은 “불이 나면 긴 소방호스가 설치된 차량을 쓰면 된다”고 주장했다.

캠핑장 안전 관리가 허술한 데는 이유가 있다. 설치ㆍ운영과 관련해 안전 기준이 아예 없기 때문이다. 하수처리 같은 일부 환경기준만 맞추면 누구나 운영할 수 있다. 지난해 10월 안전행정부가 소방차가 다닐 수 있는 진입로 확보, 누전 차단기 설치 같은 안전관리 지침을 만들었으나 권고 사항일 뿐이다.

관광진흥법에 따라 자동차야영장은 ▶차량 1대당 80㎡ 이상의 주차와 휴식공간 확보 ▶주차ㆍ야영에 불편 없도록 수용인원에 적합한 상ㆍ하수도시설, 전기시설, 통신시설, 공중화장실, 공동 취사시설 확보 ▶진입로는 2차선 이상 등만 갖추면 등록할 수 있지만 그것뿐이다. 지난해 말 기준 전국 1866곳 캠핑장 중에 230곳(12.3%)만 등록한 이유다. 세월호 사고 이후 자치단체들이 캠핑장 안전점검을 했지만 눈으로 대략 훑어보는 정도였다.

캠핑장 안전사고는 갈수록 늘고 있다. 소방방재청에 따르면 2009년 429건에서 2년 뒤인 2011년 3004건으로 7배가 됐다. 소방방재청은 2012년부터는 캠핑장 사고를 따로 집계하지 않고 있다. 한국화재소방학회 백동현(가천대 교수) 회장은 “캠핑장도 안전요원 배치나 소화기 설치처럼 인명에 관련된 최소한의 기준을 만들어 등록을 의무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찬호.전익진.임명수.위성욱.김윤호.최경호.권철암.최종권 기자 ijj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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