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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수남편 향한 일편단심|어느 『옥바라지 17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옥바라지 17년. 20대 초반의 곱던 모습이 흰머리와 주름살에 뒤덮인 중년이 됐다.
생후 40일이었던 핏덩이 딸도 이젠 어엿한 17세의 고교2년생. 무일푼이던 생과부가 억척 하나로 내집도 마련했다. 남은 것은 무기수로 수감중인 남편이 돌아오는 것뿐.
오늘도 서미혜씨(41·서울신정동·31)는 성당을 찾아 기도한다.
『천주님, 그이를 내품으로 돌려주십시오』
10년을 한결같이 드린 기도다.
서울영등포교도소에 수감중인 남편 김정수씨(44·무기수)가 일을 저지른 것은 제대직후인 63년6월. 17년전인 27세때였다. 결혼3년만에 첫딸을 낳고 몸조리중이던 부인 서씨(당시 24세)에게는 날벼락이 아닐수 없었다.
먹을것을 구하러 나간 남편이 칼로 계모등 3명을 살해하고 스스로 할복해 위독하다는 소식을 동네사람이 전했다.
당시 천안에서 손꼽히는 부농집안의 둘째아들이었지만 계모의 구박으로 끼니를 잇기조차 어려웠던 김씨가 끝내 일을 저지른 것이었다.
동네주민들이 연서로 구명운동을 펐으나 김씨는 1심인 대전지법에서 사형선고를 받았다. 바로 그날 부인 서씨는 혼인신고를 했다. 법절차를 위한다기보다 스스로의 마음을 다지기 위해서였다. 면회실에서 혼인신고를 했다는 말을 들은 김씨는 펄펄 뛰었다.
『앞으로는 면회도 필요없다. 아이는 버리고 개가하라』고 윽박질렀다.
서씨 모녀는 이때부터 교도소 정문앞에 거적을 깔고 진을 쳤다.
한달쯤 지난 어느날 억수같이 쏟아지는 빗속에서 서씨는 호송「버스」를 타는 남편을 찾아냈다. 2심재판을 받으러 서울로 압송키위해 대전역으로 가는 길이었다. 정신없이 따라간 모녀는 같은 열차에 뛰어올라 수갑을 찬 김씨와 극적으로 만날수 있었다.
흠뻑 비에 젖은 모녀를 본 김씨의 마음도 움직이는 것 같았다.
아무말없이 수갑을 찬 손으로 백일이 갓 지난 딸을 안아주며 눈길은 창밖을 향한 채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다.
2심에서 김씨는 정상이 참작돼 무기로 감형됐다.
이때부터 서씨의 외롭고 기약없는 옥바라지 생활이 시작됐다.
처음에는 가정부·여공생활을 하며 김씨가 이감 되는대로 대전·대구·서울로 따라다녔다. 한달에 한번씩 허용된 면회만이 유일한 즐거움이었다.
딸이 커가며 부인 서씨는 든을 벌어야겠다고 결심했다. 7세된 딸과 함께 서씨는 서울로 올라왔다.
서울영등포구신길동 판잣집 방1간에 세든 서씨는 다음달부터 과일행상을 시작했다.
새벽4시부터 밤12시까지 광주리를 이고 골목을 누볐다. 다른 행상들은 하루 두 광주리가 고작이었으나 서씨는 6∼7광주리를 팔았다. 목이 아프고 손바닥이 갈라지고 발바닥이 부르텄다. 철따라 생선·계란행상등 닥치는대로 했다.
국민학생이 된 딸과 동네사람들한테는 남편이 일본에 있다고 숨겼다. 전주로 이감된뒤 면회는 자주 못 갔지만 하루가 멀다하고 편지를 썼다.
남편도 매일 답장을 썼다. 지금까지 주고받은 편지가 한짐도 넘는다. 2년의 고된 행상 생활끝에 서씨는 시장 한구석에 조그만 포목상을 낼수 있었다. 이어 싯가 2천여만원의 아담한 집도 마련했다.
딸도 중학생이 됐으며 한번도 1등을 뺏기지않는 모범생이었다.
남편은 이미 67년 대구교도소에서 김수환신부(현추기경)에게 영세를 받은후 독실한 신자생활을 하고 있었다. 지난 4월24일 생일 남편은 영등포교도소에서 김추기경으로부터 견진(정식입교된 신자가 참된 「그리스도」의 군사가 되려고 받는 성사)까지 받았다. 아내의 보살핌에 용기를 얻어 1급모범수가 된것은 물론 수감자로는 우리나라 최초로 문선식자부문에서 2급기능사자격도 얻었다.
남편의 석방외에 서씨에겐 또 하나의 소원이있다. 대를 이을 아들을 낳는 일이다.
교도소측은 김씨가 1급모범수이기 때문에 부인의 간곡한 뜻을 받아들여 작년과 올해 2차례 3일간씩 귀휴를 허가했다. 주민들이 알까봐 일본인행세를 하라고 남편에게 중절모를 씌우는등 부인의 배려는 극진했다.
『속죄하는 마음으로 살아왔읍니다. 가능하다면 내후년에 있을 딸의 대학입학식에 남편과 나란히 참석하는게 꿈입니다. 아들을 낳을수 있다면 더욱‥』 남편을 바라보는 서씨의 눈에는 눈물이 어렸고 말끝을 맺지 못한다.
김씨는 언젠가는 사회에 나가 그간의 주고받았던 편지로 책을 내겠다며 대견스럽고 미안한 표정으로 아내를 달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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