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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만이 진정한 문학일까…"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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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박목월의 『나그네』를 <민중의식이 전혀 없는 시대를 기만한 작품으로 혹평하는 건 억지>
개인적 체준·의지가 문학적으로 승화됐으면 어엿한 민중의 시
우리 문학에서 「이데올로기」가 맹위를 떨친 것은 「카프」(「프롤레타리아」예술동맹)시절이다. 그때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용어만이 조금씩 바뀌었을 뿐 문학관에 「이데올로기」를 강조하는 문인들과 그렇지 않은 문인들 사이엔 계속해서 반목이 있어왔다.
신경림· 정희성 두 분은 『왜 우리는 문학을 하는가』(문예중앙 여름호)라는 대담을 통해 우리문단의 해묵은 쟁점인 문학 외 순수성과 참여성에 관한 문제를 매우 격앙된 논조로 재연 시켰다.
심지어 문학적인 이념이 자신들의 것과 다르다고 해서 이미 긍정적인 평가가 내려진 어떤 작품에 대해서 서슴없이 돌을 던졌다.
「한국문학사에 있어 순수문학이라는 것도 결국 식민지지배자들의 장단에 놀아난 춤에 불과」 하다고 납득이 안 되는 논리로 매도해 버렸다.
어떤 작품에 대한 평가는 평가자의 관점의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가감수정해갈 수 있다. 그러나 작품을 오직 경직된 「이데올로기」의 「도그머」로 색채가 다른 것은 모두 거부해 버리는 흑백논리를 적용해서는 안될 것이다. 문학작품은 사상이나 그 구체적인 인간의 행위만이 전부일수는 없기에 그런 시각으로만 본다는 것은 편협한 생각일 수 있다.
예로든 박목월의 『나그네』는 「민중적인 삶 같은 것」이 전혀 없고 「사람이 없는 무대장치」에 불과한 일종의 자기시대의 문제를 기피하고 기만한 작품이라고 본 것이다. 이 같은 관건이 과연 다른 독자들에게도 수긍될 수 있을까. 수긍이 되려면 그들의 한가지 시점만으로 볼 때는 가능해질 수 있다. 그러나 현대시는 내용이나 줄거리만으로 해석할 수 없다는 것이 상식인 이상 다각적으로 감상하고 평가하는 일에 인색해서는 안되겠다.
『나그네』가 지닌 정조나 가락은 오히려 우리네 고유의 민중의식이 집약된 것으로 보고싶다.
오랜 역사 속에서 이어온 생명체로서 개체의 애환을 세련된 표현이나 상상적 충동의 수준이 개개인의 주관으로 나타났을 경우다. 이것은 그 시대의 한 민중의식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신·정 두 분은 시인이 민중의 삶에 밀착되어 민중의 애환을 피부로 느끼게 써야하고 민중의 생각과 행동이 들어있는 시를 쓰며 민중과 함께 행동하는 시인이야말로 오늘의 정직하고 참다운 시인이라는 주장이다.
민중이란 낱말을 전매특허라도 낸 것인가? 어차피 시인도 자기 시대의 사회집단 속에 속한 일원인 이상 그도 민중의 구성요소인 것이다. 그 한 사람의 쓰는 언어, 그 한사람의 생각, 그 한사람의 행동이 객관적으로 볼 때는 집단의 한 흐름 속에서 이뤄지는 것이다. 유별나게 민중을 앞세워야만 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어느 시대이건 개인적인 체험이나 의지가 충실하게 문학적으로 승화됐을 때 그 시는 가장 그 시대의 민중적인 시에 해당한다고 본다. 그렇다면 구태여 자기만이 민중의 편에 서 있다던가, 민중의 아픔을 민중의 언어로 나타낸다는 자부심은 하나의「오버·액션」일수 밖에 없다.
필자는 아직 순수나 참여의 어느 쪽에 속한 문학을 해왔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시 평가들은 작품에 따라. 순수시로 해석할 때도 있었고 참여시로 해석하는 것도 보았다.
결국 20년대부터 주기적으로 제기된 이 문제는 상호간에 헐뜯을 것이 아니라 제 「스타일」 대로 문학을 해 가면 그 뿐이라고 생각된다. 문학적 이념의 차이를 극복하는 길은 자기이론에 부합되는 문학성이 짙은 작품을 썼을 때만이 비로소 설득력을 얻게 될 것이다.<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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