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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 문화」에 먹힌 「지성지」|미 「하퍼즈」지 폐간의 언저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미국의 지성을 대변하는 순수 문예지는 월간 「하퍼즈」지와 월간 「어틀랜틱」지라고 많은 사람이 서슴없이 말한다.
「뉴욕」에서 창간돼 1백30년의 역사를 가진 「하퍼즈」나 1백23년 전에 「보스턴」에서 창간된 「어틀랜틱」은 미국의 조상 「뉴잉글랜드」 사람들의 완고한 귀족주의를 면면히 이어왔다는 점에서 공통될 뿐만 아니라 변화하는 시대의 큰 흐름에 밀려 사양길을 걷고 있다는 점에서도 그 운명이 흡사하다.
다만 「하퍼즈」지는 오는 8월 지령 1천5백63호를 끝으로 폐간되나 「어틀랜틱」지는 최근 새경영자에게 넘어가 잔명을 잇게 된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미국의 많은 주간·월간·계간지 가운데 「하퍼즈」나 「어틀랜틱」지는 드물게 보는 「수준 높은」 잡지다.
창간호부터 순수 소설과 수준 높은 시사 해설, 그리고 사상적인 기사만 취급해왔던 두 잡지는 간부지성의 취향과 여론을 반영하여 미국의 문화사·사회사·정치사를 조감한다고 자부하고 있다.
그러나 시대의 변화는 그들의 편이 아닌 것 같다. 1950년대부터 개학한 이른바 「TV문화」는 미국의 잡지계에 「그레셤」 법칙을 적용시키기 시작했다.
「섹스」와 「스포츠」 「패션」 「스피드」 「가십」 위주의 잡지가 대중의 인기를 얻게되고 시사 전문 잡지나 「비즈니스」 잡지 같은 생활에 밀착한 잡지류가 부상했다.
취미와 기호의 세분화에 따라 쉽게 읽히는 기사를 제공하는 잡지는 성장했고 엷은 독자층의 고상한 취향을 따르던 많은 권위 있는 잡지들은 하나 둘씩 사라져 갔다.
「라이프」 「루크」 「새터디·이브닝·포스트」 「콜리어즈」 같은 잡지가 이미 「텔리비전」의 희생물이 되었다.
1백30년 동안 10년 남짓 흑자를 냈던 「하퍼즈」는 1965년 「미니애폴리스·스타·앤드·트리뷴」 회사로 팔려갔다.
「하퍼즈」지가 큰 곤란에 빠진 것은 70년대 초 발행 붓수가 30만이 넘으면서부터다.
광고주는 잡지의 질보다 발행 붓수로 광고 효과를 계산하기 때문에 「하퍼즈」는 힘겨운 확장을 했던 것이다.
그러나 광고 「페이지」수는 계속 떨어져 월 30「페이지」를 밑돌아 광고수 입은 월 10만「달러」에 지나지 못했다.
게다가 올해 들어 재 구독률이 50%로 상승한데 힘을 얻어 붓수를 32만5천부로 늘린 것이 큰 부담이 되었다.
폐간 직전의 7월호에서도 「하퍼즈」지는 구독 확장 전면 광고를 냈다.
l백50만「달러」의 적자를 안은 「하퍼즈」는 그동안 여러 차례 판매 교섭을 벌였으나 무산됐다.
「하퍼즈」와 비슷한 길을 걷던 「어틀랜틱」지와 「새터디·리뷰」지는 최근 새 주인을 만나 겨우 명맥을 잇게 됐다. 그러나 교양 잡지의 수난이 곧 미국 잡지계의 불황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매주 2천만부 이상 발행되는 「TV 안내」외에도 「리더즈·다이제스트」는 1천8백만부 이상 팔리고 있으며 「내셔널·지오 그래픽」 같은 수준 높은 월간지도 l천만부를 육박하고 있다.
현재 미국에는 발행 붓수 40만부 이상의 잡지가 1백25종이나 된다. 【뉴욕=김재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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