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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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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지난해 이맘때보다도 요새 기온은 3,4도나 높다. 어제 서울지방은 29.2도나 됐다고 한다. 불쾌지수는 78도.
여름이 보름쯤 앞당겨온 것이다. 올해엔 지겹도록 길고 무더운 여름이 될 것만 같다.
청풍무력도득열 낙일착시비상산 인고기구강해갈 천개부석하결건…
때로 불어오는 청풍으로도 이 열기를 식힐 힘이 없다. 석일은 날개돋친 듯 좀처럼 서산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이대로 가면 바닷물 마저 메마르지 않을까 하늘도 걱정하고 있을 게다….
왕안석과 동시대의 왕령의 시다. 그는 양자강과 가하사이 양주사람이었다. 그 무더위도 대단했던 모양이다.
서울의 주말의 무더위는 31.6도까지 올랐었다. 영국의 신사라해도 견디기 어려웠을 것이다.
영국에서는 6월24일을「미드·서머·데이」(Mid-summer Day)라 한다. 그 전야는 또「미드·서머·이브」라 하고….이때에는 모두가 더위를 먹고 제정신을 잃는다. 「셰익스피어」 의 희극『한 여름밤의 꿈』에서 등장인물이 모두 광난하는 것도 바로 이날 밤이다.
그러나 영국사람들을 반미치광이로 만드는 더위란 고작 28도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니 우리가 30도가 넘는 더위를 이겨내지 못하는 것도 당연하다고 할까. 더위도 겪고 나면 견딜 맛이 난다고 한다. 그러니 이 고비만 넘기면…하는 생각도 든다.
차라리 늘 28도가 넘으면 좋겠다. 그러면「에어컨」도 틀을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그것도 전기 값이 무서워서 마음놓고 켤 수도 없는 올해다.
왕령의 시는 이렇게 맺는다-.
곤륜지 고유적설 봉래지원상유한 부능수제천하왕 하인신거유기간
곤륜산정에는 만년설이 쌓여있고 동해 끝 봉래도는 추위 모르는 별천지 라더라. 하나 천하를 온통 끌고 그런 시원한 곳에 날아가지 못하는 한 나만 한가히 피해갈 수도 없겠다. 이런 뜻이다.「에어컨」을 꿈꿀 수도 없는 시민들도 많다. 한가하게 낮잠자기에는 너무 일에 좇기는 근로자들도 많다.
그런 줄 빤히 알면서 혼자 더위를 쫓는 궁리를 할 수도 없을 것이다.
더위만큼은 나만히 당하는 것이 아니라면 그래도 견딜 맛이 난다. 남들이야 어쨌든 나만 더위를 모르면 된다는 사람들이 많다고 생각하면 더욱 더위가 견디기 어려워진다.
더위는 이제부터다. 그 기나긴 광난의 무더위를 어떻게 견디어야하는지 생각만 해도 비지땀이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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