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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산 사나이들의 한을 풀었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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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두 손이 언 줄도 모른 채…>
더 오를 곳이 없다. 정상이다. 여기가 하늘과 맞닿은 망의 끝이다. 아! 마침내 올라섰다. 오늘이 있기까지 우리에게는 얼마나 많은 희생이 있었던가-. 「마나슬루」 정상을 밟은 첫 한국인 서동환 대원(27)은 정상을 확인한 순간 자신의 존재를 까맣게 잊어버렸다. 눈보라 속에 두 손이 얼어붙는 줄도 모른 채 태극기를 하늘높이 치켜들었다. 해발 8천1백56m에 부는 바람은 우리의 깃발을 그 어느 때보다도 더욱 힘차게 나부끼게 했다. 솟구치는 감격의 눈물이 서대원의 산소「마스크」안으로 흘러내렸다. 저 아래 설원에서는 이곳에 영원히 잠든 한국 산 사나이들의 함성이 들려오는 듯 했다.
1980년 4월 28일 하오 1시30분, 한 맺힌 「마나슬루」의 정상이, 영원히 굽힐 줄 모르던 그 마의 봉우리가 우리 산악인의 발아래 놓이던 순간이다.
이 순간 정상에 오른 서대원과 2명의「셰르파」도, 「베이스·캠프」와 중간의 전진「캠프」에서 정상공격을 지켜보던 도든 다른 대원들도 성령의 땅, 「마나슬루」의 신에게 감사의 기도를 올렸다. 「마나슬루」의 꿈을 이루지 못한 채 원정 등반 도중 눈사태와 강풍에 휩쓸려 조난 당한 동료·선배산악인 김기섭· 김고섭·박창희·송준항·오세근 대원, 그리고 이들과 운명을 같이한 일본인 사진작가 「야스히사」 (안구일성) 대원, 10명의 고스「포터」와「셰르마」들의 명복도 함께 빌어주었다.

<두 차례 공격시도도 허사>
『당신들의 죽음은 결코 헛되지 않았으니 이제 당신들과 우리의 소망인 등정의 꿈이 이루어졌다오. 차디찬 얼음 아래서라도 부디 편안히 잠을 누리시라…』
서대원의 등정은 지금까지 「마나슬루」 원점이 그랬듯이 단 한번의 정상 공격으로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4월20일과 27일 두 차례나 등정을 시도했으나 갑작스런 날씨변화로 번번이 실패하고 말았다. 정상을 앞둔 마지막 「캠프」인 해발 7천5백m의 C5는 가파른 능선에 설동을 파 가까스로 마련했으나 「히말라야」 특유의 「제트」기류나 강추위를 피할 길이 없어 기상이 악화되면 꼼짝없이 갇히거나 죽음을 무릅쓰고 아래쪽 「캠프」로 철수할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
이곳에서 정상 능선까지는 불과 1백50m. 「마나슬루」가 손에 잡힐 듯 가깝지만 눈보라가 치거나 강풍이 몰려오는 속에서의 등정시도는 곧바로 조난을 의미할 뿐이다.
1차 정상공격조인 이종량 대원과「셰르파」인 「마상·노르부」 「락파·텐정」등 3명은 4월20일 맑은 날씨 속에 정상 공격을 확신했으나 상오 6시쯤부터 갑작스레 불어대는 바람 때문에 C5밖으로 나가기조차 못하고 1시간 뒤에는 기상이 더욱 나빠져 영하3O도의 혹한마저 닥쳐 정상시도는 불가능하다고 판단, 공격조 3명을 강추위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하산하드록 했다.
이대원이 설동안의 장비와 식량을 정돈하는 사이 두 「셰르마」 는 상오 9시20분쯤 먼저 출발했다. 이대원은 15분쯤 뒤 뒤따라 떠났으나 눈앞을 가리는 짙은「가스」 (눈보라가 일으키는 안개)와 몸이 날아갈 듯한 강풍으로「록·밴드」의「픽스·로프」 (바위절벽에 매달아놓은 고정「자일」)마저 풀어진 채 아래 부분이 없어져 길을 잃고 말았다.

<한국대는 운이 안 따른다>
허리까지 빠지는 눈 속에서 방향을 잡지 못하고 있을 때 한 순간「가스」가 걷히면서 C4위의 눈 처마가 눈에 보였다. 이대원은 사력을 다해 C4를 향했다. 시렵기만 하던 손도 심한 동상으로 감각이 둔해졌다. 불과 5백여m 떨어진 C5∼C4사이를 이대원은 6시간이나 헤매다 하오 4시쯤에야 C4에 도착, 눈으로 덮여 출입구마저 찾기 힘든 「텐트」로 들어가 겨우 목숨을 건졌다.
2차 공격조인 서동환 대원과 「셰르파」 「아지와」는 27일 상오 6시30분 C5를 떠나 2시간만에 정상으로 이어지는 바위능선에 도착, 1시간쯤 전진하는 도중 외국대가 남겨놓은 산소통 9개를 발견하고 계속 등반을 시도했으나 상오 11시30분쯤 「제트」기류가 너무 거세 C5로 철수했다.
이렇게 1, 2차 공격이 실패로 끝나자「사다」 (「셰르파」의 우두머리)는「셰르파」들에게 벌써 철수명령을 내리고 있었다. 「사다」는 28일 하루 날씨가 좋으면 다시 한번 시도를 해보되 날씨가 나쁘면 그대로 철수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한국대가 「마나슬루」원점에서 몇 번이나 실패하자 등정에 운이 따르지 않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었다.
4월 28일, 운명을 판가름하는 날이다.
나는「셰르파」들이 철수할 것에 대비, 대원 각자가 휴대하고있는 「워키토키」를 통해 C5∼C1에 흩어져 있는 대원들과 긴급회의를 가졌다.

<복받치는 감회로 말 잊어>
우리는 대원들의 건강상태도 좋았고「알파」미 등 고산식량과 산소보유량도 충분했기 때문에 「셰르파」들이 모두 돌아가더라도 우리들끼리 끝까지 정상도전을 포기하지 않기로 결의했다.
상오 7시20분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정상 공격이 시작됐다.
서대원을 가운데 두고 「셰르파」「아지와」와 「앙파상」이 2O∼30분의 시간차를 두고 각각 정상을 향했다. 날씨는 맑았으나 언제 또 「가스」와 강풍이 몰려올지 몰라 이들은 능선에 노란색의 산소 통을 표지물로 두고 전진을 계속했다.
B·C에서도 이들의 움직임은 하얀 모래 위에 개미가 움직이듯 뚜렷하게 보였다. 전진은 6시간동안 계속 됐다. 그리고 모든 것은 끝났다. 하오 1시30분, 세 개의 까만 점은 드디어 정상에 올라 서로 달라붙은 듯 움직이지 않았다.
『대장님! 여기는 정상입니다. 「마나슬루」가 제 발 아래 있습니다. 우리는 이제 한을 풀었습니다.』 서대원의 감격 어린 목소리가「워키토키」를 통한 B·C에 전달되자 대원들은 복받치는 감회로 한동안 모두 말을 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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