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한 여름은 건선 잠복기…방심 말고 꾸준하게 관리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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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더워지면서 진료실을 찾는 건선(乾癬) 환자에게 하는 잔소리가 는다. 일조량이 늘고 날이 습하면 증상이 일시적으로 누그러진다. 그러면 환자는 ‘병이 나았다’고 생각해 치료에 소홀해진다.

건선은 이름만 보면 경미한 피부병처럼 들린다. 겨울철 가려움증을 동반한 건성 습진과 혼동해 진료실을 찾는 환자도 적지 않다.

하지만 건선은 인체 면역체계가 고장난 질환이다. 세균이 피부에 침입한 것도 아닌데 몸이 이를 오인해 필요 이상의 과잉 면역반응을 일으켜 발생한다. 혈관이 과잉 생성되고, 새로운 피부를 만들어내는 각질 형성 세포가 정상인보다 빠르게 증식한다. 보통 표피세포가 때가 되어 떨어질 때까지 28~30일 걸리는데, 건선은 이 과정이 3~6일 만에 일어난다. 그 결과, 피부에 홍반이 생기고 각질이 겹겹이 쌓이면서 두꺼운 각질층이 형성된다. 심하면 거북이 등 껍질처럼 보인다.

건선 환자가 겪는 것은 외모의 변화만이 아니다. 환자의 10~30%에서 관절이 붓거나 변형되는 건선성 관절염이 발생한다. 일반인에 비해 심근경색은 2~3배, 뇌졸중은 1.5배 발생률이 높다. 당뇨병·고혈압·이상지질혈증 등 발생 위험도 2배에 이른다.

건선은 치료와 예방이 어렵다. 하지만 손쓸 방도가 없는 것은 아니다. 연고로 증상을 일시적으로 가라앉히는 수준을 넘어 병변 크기나 위치에 따라 광선치료법, 경구용 면역조절제, 비타민 A유도체 등으로 각 환자에게 최적화된 치료 방법을 찾는다. 특히 최근에는 피부의 과잉 면역반응을 유발하는 다양한 면역단백질에 직접 작용해 기능을 억제하는 생물학적 제제도 개발됐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치료법도 환자가 따르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다. 증상이 가라앉았다고 치료를 중단하거나 광고 또는 검증되지 않은 치료법을 따르다 뒤늦게 병원을 찾는 경우가 많다. 실제 작년 대한건선학회가 국내 건선 환자 1만6976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건선 환자의 3개월 치료 지속률은 39.5%, 1년 이상 치료 지속률은 13.7%에 불과했다. 처음 건선을 진단받은 환자의 74.2%는 두 달 만에 치료제 사용을 중단했고, 고작 5.8%만 1년 이상 치료를 지속했다.

물이 바위를 뚫는 것은 힘 때문이 아니라 꾸준함 때문이다. 건선도 제대로 치료한다면 당뇨병이나 고혈압 같은 만성질환처럼 관리할 수 있다. 환자들이 일시적인 증상 개선에만 연연하지 말고 의료진과의 상담을 통해 적절한 치료 계획을 세우고 꾸준히 지켜간다면 완치도 아주 먼 미래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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