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 군국주의 청산에 앞장선 지식인 … 존경 받는 ‘일본의 양심’으로 불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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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5호 14면

마루야마 마사오는 1914년 오사카에서 태어나 37년 도쿄대 법학부를 졸업했다. 정치사상 연구에 두각을 보여 40년에 도쿄대 법학부 교수가 된다. 44년 서른의 나이에 징집돼 평양에서 이등병으로 복무했다. 군에서 각기병으로 쓰러져 히로시마로 이송된 뒤 미군의 원자폭탄 투하로 피폭당했다.

사상가 마루야마 마사오는

패전 후엔 ‘일본의 양심’으로 불리며 전후 일본 사회에 남아 있는 군국주의의 잔재들을 통렬히 파헤쳤다. 특히 그는 일본 사회에 던져진 두 가지 질문에 대한 연구에 몰입했다. ‘일본이 왜 이런 실수(전쟁)를 저질렀나’와 ‘서구의 민주정치의 비밀은 무엇인가’라는 물음이었다. 이 두 가지 주제에 대한 연구를 통해 그는 일본 사회의 불합리성을 구체적으로 규명했다. 자신의 주장을 전파하기 위해 상아탑에 머무르지 않고 저널리즘적인 글도 많이 썼다.

하지만 60년대 격렬하게 일어났던 학생운동의 주도자들에겐 거센 비판을 받기도 했다. 96년 일본의 패전일인 8월 15일 간암으로 눈을 감았다. 클래식 음악에 조예가 깊었다.

저서로는 『일본 정치사상사 연구』 『일본의 사상』 『현대정치의 사상과 행동』 『충성과 반역』 등이 있다. 이 가운데 『일본의 사상』(1961)은 일본 대학생들의 필독서로 통하며, 그 일부는 고교 현대문 교과서에도 실려 있다. 그의 저서는 영어·프랑스어·독일어로 번역돼 서양 학자들도 널리 읽고 있다.

마루야마가 도쿄대 재직 시절 유학했던 최상용 고려대 명예교수는 그를 이렇게 소개했다. “74년 4월 마루야마 교수의 자택을 방문했다. 그가 처음 꺼낸 소재는 의외로 음악이었다. 독일의 음악가 바그너를 시작으로 한참 동안 음악 얘기를 들려줬다. 이후 주자학과 한국의 군사정권 등에 대해 얘기했다. 당시 그에게서 받은 인상은 다방면에 박식한 다재다능한 ‘르네상스적 지식인’이라는 느낌이었다.”

최근 일본의 우경화와 관련, 최 교수는 “마루야마가 살아 있다면 현 아베 정권에 대해 부끄럽게 생각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홍우 서울대 명예교수도 “지금은 한·일 양국이 갖고 있는 고정관념에 대한 재성찰이 필요한 시점”이라며 “마루야마가 일본 역사를 재발견한 것처럼 양국이 서로 접근할 수 있는 공간을 찾기 위해 노력한다면 관계 개선을 위한 새로운 지혜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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