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승호의 ‘생각의 역습’]생각을 지배하는 프레임의 마력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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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5호 29면

한 연구에 의하면 올림픽 시상대에 선 동메달리스트들이 은메달리스트들보다 휠씬 밝고 기쁜 표정을 지었다고 한다. 은메달리스트들은 결승전에서 금메달을 놓쳤다는 아쉬움이 강한 반면, 동메달리스트들은 노메달에서 벗어났다는 안도감이 크기 때문이다. 만족감이란 이처럼 상대적이다.

인간의 선택행위 역시 주관적 만족감과 마찬가지로 상대적인 기준을 따른다. 선택행위가 현재를 기준으로 이익 추구 또는 손실 회피의 방향에 따라 결정되기 때문이다. 다음을 보자.

A. 99% 무지방 고기
B. 1% 지방 고기

당신은 A와 B 중 어떤 것을 선택하겠는가. 99% 무지방은 1% 지방을 의미하기 때문에 A와 B는 같다. 하지만 실제 실험에서 사람들은 A를 선호하는 경향이 뚜렷하다. 우리의 뇌는 ‘무지방’은 좋은 것(이익)으로 인식하는 반면, ‘지방’은 나쁜 것(손실)으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정보 처리는 거의 무의식적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인지적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A와 B가 동일하다는 사실을 즉시 알아차리기 어렵다. 심지어 ‘98% 무지방’이 ‘1% 지방’보다 더 많이 선택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위험도가 휠씬 높은 상황에서 선택행위는 어떠할까. 다음을 보자.

A. 생존율이 90%인 수술법
B. 사망률이 10%인 수술법

생존율 90%는 곧 사망률 10%를 의미하기 때문에 A와 B는 동일한 내용을 다르게 표현한 것뿐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생존’은 좋은 것이고 희망을 주는 단어지만, ‘사망’은 기분 나쁘고 절망적인 단어다. 만약 당신이 의사이고, 당신의 환자가 수술 받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하면 ‘생존율’을 강조하고, 환자가 본인에게 해로운 수술을 고집한다면 ‘사망률’을 강조해야 한다.

이처럼 우리의 뇌는 어떤 판단을 할 때 기준점에 의존하는 경향이 강하다. 따라서 동일한 내용이라 해도 어느 기준점에 의존해 표현하느냐에 따라 선택행위가 쉽게 변경된다. 이를 ‘프레임 효과(frame effect)’라 하는데, 이를 증명하는 유명한 실험은 다음과 같다. “만약 인구가 600명인 마을에 원인을 알 수 없는 질병이 발생하였고, 학자들이 다음과 같이 두 종류의 백신을 개발했다”고 가정한다.

A. 200명은 생존하는 백신
B. 600명의 목숨을 구할 확률이 3분의 1, 모두 사망할 확률은 3분의 2인 백신

당신은 A와 B중 무엇을 선택하겠는가. 실험결과, 과반수를 휠씬 넘는 사람들이 A를 선택하였다.

C. 400명은 사망하는 백신
D. 모두 생존할 확률의 3분의 1, 600명이 사망할 확률이 3분의 2인 백신

실험결과, 이번에는 과반수를 휠씬 넘은 사람들이 D를 선택하였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A, B, C, D는 모두 동일한 내용이다. 이처럼 객관적으로 동일한 내용이라도 연구자가 이익과 손실 중 어떤 방향의 프레임을 사용하느냐에 따라 사람들의 선택 행위는 정반대로 나타난 것이다.

결국 충분한 인지적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인간의 선택 행위는 프레임이 좌우한다. 언어를 무기로 싸우는 대중정치에서 프레임 효과는 매우 강력하다. 이 때문에 대중정치는 끊임없이 사회적 이슈를 프레임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문제는 유권자들이 프레임에 너무 취약하다는 것이다.

남들이 만든 프레임에 휘둘리지 않으려면, 이슈의 내용을 판단하기 전에 이슈의 프레임부터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 누구나 성년이 되면 유권자가 된다. 하지만 프레임부터 따져보는 현명한 유권자는 그냥 되지 않는다. 권리에도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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