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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난 프란치스코 ② 문한림 주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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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아르헨티나 주교 시절 프란치스코 교황이 1995년 한인성당을 찾아 미사를 드리고 있다. 당시 신부였던 문한림 주교가 교황의 강론을 통역했다. [사진 문한림 주교]

천주교 대전교구장 유흥식 주교가 지난 4월 바티칸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을 독대했을 때다. 교황의 입에서 ‘문한림 주교’ 이야기가 나왔다. 문 주교는 1976년 부모와 함께 아르헨티나로 이민 가서 사제가 됐다. 해외 한인 교포 출신 중 주교가 된 건 그가 처음이다. 그를 주교로 임명한 이도 프란치스코 교황이다. 교황은 문 주교를 거론하면서 “궬 라갓죠 몰토 브라보!(Quel ragazzo molto bravo!)”라고 했다. ‘그 아이는 아주 괜찮다’는 뜻이다. ‘그 아이’라는 표현을 쓸 만큼 친근하다는 의미다. 문 주교의 연락처를 수소문했다. 아르헨티나는 지구의 반대편, 시차도 딱 12시간이다.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있는 문 주교와 전화로 인터뷰를 했다. 한국의 낮 12시에 질문을 던졌고, 아르헨티나의 밤 12시에 그는 답을 했다.

추기경 때도 버스·지하철 타고 다녀

-젊을 때 이민을 갔다. 힘들진 않았나.

 “76년 말에 부모님과 이민을 왔다. 숫자를 셀 때 한국 사람은 손가락을 펼쳐서 하나씩 접어들어간다. 아르헨티나에선 반대다. 주먹을 꽉 쥔 뒤 하나씩 편다. 물건 사고 거스름돈 줄 때도 반대다. 100원 내고 83원어치 샀다. 한국에선 10원짜리를 내주고, 5원짜리, 그리고 2원을 준다. 여기서는 2원을 먼저 줘서 85원을 채운다. 그런 뒤 5원짜리 줘서 90원 채우고, 나머지 10원을 줘서 100원을 만든다. 이처럼 문화가 많이 다르다. 그래도 사랑은 통하더라.”

 문 주교는 84년에 사제가 됐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아르헨티나에서 사제로, 주교로, 추기경으로 일했다. 문 주교는 교황이 되기 전의 그를 마주할 기회가 많았다.

 -프란치스코 교황을 언제 처음 만났나.

 “꼬박 20년 전이다. 94년이었다. 당시 저는 부에노스 아이레스 시립병원의 원목신부로 있었다. 그때 호르헤 마리오 베르고글리오(프란치스코 교황의 본명) 주교님이 제가 있던 병원 지역의 보좌주교로 왔다. 막 주교가 됐을 때다. 당시 병원에서 일하던 수녀님들이 나이가 많아서 철수했다. 빈 자리를 메우려고 한국 성가소비녀 수도회에서 수녀님들이 왔다. 그때 이분의 자상함을 알았다.”

파견 온 한국 수녀들 자상하게 챙겨

 -무엇이 그리 자상했나.

 “한국 수녀님 세 분이 여기로 올 때 비행기 값을 주시더라. 뿐만 아니다. 아르헨티나에 온 뒤에도 언어 공부를 하라고 강사료도 주셨다. 굉장히 자상하다고 느꼈다. 그때 왔다갔다 하면서 당신이 사는 방을 들여다 볼 기회가 생겼다.”

 -방이 어땠나.

 “침실문이 열려 있어서 들여다봤다. 침대 하나와 옷장 하나만 있더라. 아주 소박하고 단출했다. 정리정돈은 깔끔했다. 처음 주교관에 갔을 때는 매우 당황했다. 접견실에 테이블도 없고 1m 간격으로 똑같은 의자 두 개만 달랑 있었다. 어느 쪽이 상석이고, 어디 쪽에 앉아야 할지 모르겠더라. 천주교에도 사제·주교·대주교·추기경·교황 등 권위의 계층이 있다. 그분은 그냥 편하게 대하셨다. 권위의식이 없었다. 만나서 문제를 상담하면 파악과 이해가 아주 빨랐다. 30분 만에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해결책을 주셨다. 그건 통찰력이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즉위한 지 16개월밖에 되지 않았다. 그런데도 가장 주목받는 세계의 지도자가 됐다. ‘이유가 뭐냐’고 물었더니 문 주교는 “사람들이 편하게 느끼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그 이유도 설명했다.

 “아르헨티나에서 추기경에게 제공되는 자동차도, 운전기사도 거절했다. 대신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다녔다. 거기에는 ‘나도 평범한 사람이다’는 뜻이 담겨 있다. 또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 알려면 지하철에 끼여서 다니기도 하고, 사람들이 밀면 밀려도 봐야 한다. 대중이 사는 걸 똑같이 살아봐야 안다. 대중이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느끼는지 말이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편하게 느끼는 거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달 이탈리아 마피아의 본거지에 가서 ‘마피아 파문’을 선언했다. 마피아의 반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아르헨티나의 빈민촌은 매우 위험한 지역이다. 그 안에서는 마약이 많이 돈다. 마약이 돌면 돈이 돌고, 돈이 도니까 총싸움도 잦다. 빈민촌에 들어가는 건 목숨을 거는 일이다. 교황께선 사제가 되기 전부터 빈민촌에 자주 들락날락했다. 거기서 사람들을 만나고 봉사활동도 했다. 젊었을 때는 친구가 빈민촌 입구까지 데려다 줬다. 거기서 친구는 집으로 돌아가고 교황님만 안으로 들어갔다.”

좌파도 우파도 아닌 예수의 제자일 뿐

 -목숨을 걸지 않고서 그게 가능한가.

 “빈민촌에도 마피아가 많다. 총에 맞아 죽는 게 두렵다면 예전에 이미 그만뒀을 거다. 사제가 돼서도, 주교가 돼서도, 추기경이 돼서도 그분은 빈민촌을 찾았다. 그런 활동을 굳이 외부에 알리지도 않았다. 우리는 그분이 거기서 무슨 일을 하는지도 몰랐다. 아주 가끔 활동이 알려지면 ‘아, 그렇구나’하고 알 뿐이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에 관심이 많다. 이런 모습을 보며 혹자는 ‘교황은 좌파다. 교황은 해방신학자다’고 주장하고, 반대편에선 ‘좌파가 아니다’고 반박한다.

 -한국 사회는 좌·우 진영간 갈등의 골이 깊다. 프란치스코 교황을 자신의 진영으로 끌어들이려는 이들도 꽤 있다. 묻고 싶다. 교황은 좌파인가, 우파인가.

 “그건 제가 정확하게 말할 수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좌파도 아니고, 우파도 아니다. 그분은 예수의 제자일 뿐이다. 거기에 초점을 맞출 뿐이다. 그의 행보는 사상적으로 해석할 게 아니라 성서적으로 해석해야 한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지향은 ‘가난한 영성’이다. 사회주의나 공산주의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 겉만 보니까 비슷하게 보는 거다. 그래서 자신들이 아는 식대로만 해석한다. 속까지 알면 다르다. ‘가난한 영성’은 그리스도교 신자라면 당연한 일이다. 그게 있어야 예수를 따를 수 있다. 그렇다고 가난한 영성이 다가 아니다. 그 밑에는 사랑이 있다. 사랑이야말로 그리스도 영성의 핵심이다. 너무 사랑하니까 나의 몸, 나의 마음, 나의 생명까지 다 내어주는 거다. 그게 사랑이다. ‘요한복음’을 보면 유대인이 예수님을 잡아 죽인 게 아니다. 예수님이 당신을 온전히 내어주기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거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지향은 바로 여기에 있다.”

백성호 기자

◆문한림 주교=1955년생. 서울 성신중·고교 졸업. 가톨릭대에서 공부하다 76년 아르헨티나로 이민.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신학교 졸업 뒤 84년 사제 서품. 로마 교황청립 그레고리오대에서 영성신학 전공. ‘사도들의 모후’ 본당 신부, 테오도레 알바레스 병원 원목 등 역임. 2014년 2월 해외교포 출신 사제 중 첫 주교 서품. 현재 부에노스 아이레스 인근 산 마르틴 교구 보좌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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