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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리스마 최? 연기하며 이렇게 겁나긴 처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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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명량’에서 이순신을 연기한 최민식. 올해 그는 공교롭게도 명량해전 당시 이순신 장군과 같은 나이다. 그는 "젊은 관객의 반응이 궁금하다”고 말했다. [사진 CJ E&M]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요, 죽고자 하면 살 것이다(生卽必死 死卽必生).” 이순신 장군의 이 비장한 말이 영화 ‘명량’(30일 개봉, 김한민 감독)에 등장하는 것은, 그가 결전을 앞두고 적에 대한 두려움이 가득한 병사들 앞에 섰을 때였다. 1597년, 장군이 불과 열 두 척의 배로 300척이 넘는 왜선과 맞선 명량해전을 다룬 영화다. 치열한 해전 장면은 단연 시선을 사로잡는다. 자기 자신과 병사들의 두려움을 다스려 바다로 나서며 장군이 겪는 고뇌 역시 그 못지 않은 진중한 무게로 펼쳐진다. 처음부터 끝까지 온전히 이순신, 나아가 그를 연기한 최민식(52)의 영화라 할 만하다. 영웅을 연기하며 그가 느낀 두려움과 고뇌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사진 전소윤(STUDIO 706)]

 -국민적 영웅을 연기한 소감은.

 “잘못 연기하면 욕만 바가지로 먹겠구나 싶었다. 개봉 전 반응을 보니 대중의 관심도 남다른 것 같다. 위대한 인물의 이야기를 함부로 만들면 안 된다고 압박하는 것 같다. 허투루 만들지 않았다는 자부심은 있다. 작품의 진정성이 통하길 바란다.”

 -진정성이라면.

 “촬영 현장에서 주·조연 할 것 없이 (전쟁의)지옥도를 보여주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모두 ‘이러다 죽지’ 싶은 각오로 덤볐다. 역사적 사건을 그린다는 책임감도 있었다. 그 마음가짐이 영화에 보일 것 같다.”

 -이순신이라는 인물에 어떻게 접근했나.

 “나 같은 범인(凡人)은 절대 이해할 수 없다. 사람이 어떻게 그만한 결기와 신념을 지닐 수 있나. 다만 그 분도 인간인지라 두려웠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따로 기댈 자료는 오직 『난중일기』뿐이었다. 일기는 개인적이고 진솔한 기록이라 마음에 와 닿는 것이 많았다. 극 중에서 장군이 어머니의 위패를 대장선에 모시는 설정은 내가 제안한 것이다. 그 앞에서나마 넋두리하는 장군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의 외로움을 이해할 수 있었나.

 “노력했다. 만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소주라도 한잔하면서 물어보고 싶었다. 왕에게 버림받고, 모략질로 갖은 고초를 겪고, 휘하에 있는 부하들은 내뺄 궁리만 하던 그때에 왜 그렇게까지 목숨을 걸었느냐고. 그의 용기와 충성심에 탄복하다가 나 자신이 너무 초라해지기까지 했다. 자신감이 무너졌다.”

 -겁을 냈다는 건가.

 “연기하면서 이렇게까지 겁나고 고통스럽기는 처음이었다. 매 상황을 장군의 마음으로 정확하게 보고 있는지 확신이 없었다. 그분의 존재감이 그 정도로 태산같이 다가왔다. 촬영할 때 등 뒤에서 지켜보는 것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결국 그 고통을 감수했는데.

 “역할이 운명처럼 다가온 느낌은 있다. 출연을 고심할 때, 하늘에서 커다란 학이 내려와 내 목을 탁 집는 꿈을 꿨다. 촬영 전 명량해전에서 희생된 이들의 넋을 기리고자 씻김굿을 제안했다. 장군의 형상을 붙잡고 있자니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평소 천식 때문에 기침이 잦은데 장군복을 불 태울 때는 시커먼 연기가 얼굴을 뒤덮어도 기침 한 번 안나왔다.”

 -애국주의를 강요하는 영화라는 반응도 있다.

 “오랜만에 상업영화에서 애국주의 좀 느껴보면 어떤가. 역사를 바로 알리는 것도 영화의 교육적·사회적 역할이다. ‘명량’이 기폭제가 되어 역사적 가치를 지닌 작품이 여럿 나왔으면 한다.”

 -이 영화가 시리즈로 이어진다면.

 “예전에 김한민 감독이 ‘명량’이 흥행하면 ‘노량’과 ‘한산’까지 이순신 3부작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잘해봐, 응원할게’라고 했다. 두 번은 못 한다. 이제 내 마음에서 그분을 놔드려야 한다. 조만간 아산 충무공 묘에 가서 마지막 인사를 드릴 예정이다.”

이은선 기자

★ 5개 만점, ☆는 ★의 반 개

★★★☆(김형석 영화평론가): 영웅의 고뇌와 역사의식 이전에, 영화의 절반을 차지하는 해전 액션만으로도 볼 만하다.

★★☆(박우성 영화평론가): 누구나 알고 있는 영웅서사를 누구나 감동할 수 있는 절차로 구성한다. 진중하지만 심심하다.

★★★★☆(전찬일 영화평론가): 대작을 넘어서는 거작. 연출·연기·주제의식 모두 최상급. 사극 해상영화의 새 장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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