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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드의 겸양』본받을 만하지 않은가"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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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정치 발전 조류에 때맞추어 방방곡곡에서 헌법개정에 대한 논의와 화제가 새봄을 앞질러서 꽃을 피우고 있다.
개정 질서 하에서 경제·사회·문화·국방 등 각 분야가 안정되고 있는데도 마치 입헌 창국이라도 하는 듯한 착각을 일으킬 정도의 시대상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명색은 개헌이라지만 내용으로는 제헌 작업과 같은 모습을 보여준다.
제헌이나 개헌이나 당대의 지배적 정치 세력들의 의도를 반영하는 것이 불가항력적인 운명이겠지만 근간에 우리 민족사에서 유례 없는 관심을 집중시키는 것은 그러한 일시적인 지배 세력의 권력을 형성하고 그 형성의 권력 구조를 영속화하려는 의도가 지나치게 작용하여 기형적인 헌법이 탄생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시국이 변할 때마다 간과해서는 안될 중요한 문제는 표면상으로 나타나지 않는 소리 없는 국민의 소리다.
정치 발전이라는 시대적인 요청에도 불구하고 정치 과열에 들떠 있는 틈을 타서 호시탐탐하는 북괴의 만행이 도발되지 않을까 온 국민의 가슴마다는 불안을 감출 수가 없다.
소위 정치가라고 자부하는 분들에게는 매우 송구스러운 이야기가 되겠지만 근간에 주주총회 때마다 말썽을 빚고 있는 세칭 총회 꾼들 처럼 백안시 당하고 있는 눈초리들을 정치인들이 의식하였다면 전율을 느꼈어야 할 것이다. 전율을 느낀다면 미국 전 대통령「포드」처럼 겸양의 미덕을 남기지는 못할망정 오늘의 우리 정치 기상도는 좀더 달라져야만 하지 않을까하는 마음이다.
천부인권설을 외치고 나왔던「장·자크·루소」나 법의 정신을 강조한「몽테스키외」이래 인류 정치사는 괄목할 만큼 발전했지만 제도나 법조문보다는 정치인들의 자질에 우리의 운명을 의지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문제다.
약법삼장으로도 이상 정치를 펼 수 있었던 요순시대는 너무 멀다고 하더라도 가장 완벽하다는「바이마르」헌법 하에서도「히틀러」가 출현할 수 있다는 역사가 이를 웅변하고 있지 않은가.
그러나 정치인들의 양식에만 책임 지울 수도 없으니 차제에 일시적인 정치 세력의 의도로 개헌하지 못하도록 온 국민이 철저하게 감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불타께서 열반에 드시기 전 일생 수행 제자 아난에게 마지막 질문을 하도록 허락하셨을 때, 아난은『지금까지 부처님의 위덕으로 승단을 통솔하였는뎨, 앞으로는 승단을 어떻게 통솔합니까』하고 걱정을 했다.
동서고금 승속을 막론하고 정치 방식이 문제가 된 것이다. 부처님께서는 계율을 스승으로 받들어서 다스리라고 통언하셨다. 어느 특정인을 우상화하지 말고 율법 질서로 다스리라는 것이다.
동양의 민주정치 이론의 선교자 맹자도 『이루지명과 공륜자지교로도 부이규구면 부능성방원이오 사광지총으로도 부이육률이면 부능정오음이오 요순지도로도 부이인정이면 부능평치 천하니라』하였다.
재정인이나 특정 세력을 위주하지 말고 입헌 사상을 철저하게 주장하고 나아가서는 요순지도로도 인정으로 정치하지 않으면 천하를 평안하게 다스리지 못한다고 경고하여 정치인의 양식을 문제삼은 것이다.
정치인의 양식은 법으로 규제할 수 없는 일이니 정치인의 양식이 국민의 기대에 어긋났을 경우라도 정치가 잘될 수 있도록 제도화할 수 있는 헌법으로 탈바꿈하여 그 헌법이 역사적으로 뿌리 깊이 내리도록 보장하는데 관심이 집중된 것 같다.
지금 이 시점은 세류에 휩쓸려 현실을 냉철하게 직시하지 않으면 아니 될 중대한 상황이다.
우리 세대의 과업은 남북 평화 통일이 지상 목표다. 개헌 작업도 이 지상 목표에서 빗나갈 수는 없다. 기본권이나 자유권을 보장하는 것은 입헌하는 최초의 자서인 동시에 최후의 목표다. 그러나 목표의 중요성을 강조하다가 형식적인 기본권을 보장하면서 송두리째 기본권을 박탈당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될 것이다.
이상에 치우친 나머지 현실을 월원할 수 있다고 착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상은 오늘의 현실을 바탕 하여서만 실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상적인 개헌은 가장 현실적 이어야만 한다.
직설적으로 이야기하면 여하튼 명분과 이상이라도 국가 안보에 우선할 수는 없고 아무리 영구적으로 구상하여도 남북통일이 성취될 때까지라는 운명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
역설이 되겠지만 입헌 민주 정체 하에서 독재정치를 하지 않을 수 없는 경우는 현실적으로 불가피한 선의의 필요 정치악이 아닐까.
그러한 악순환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임기 동안 소신껏 살림할 수 있도록 살림꾼에게 보장하고 영구 집권을 하다 보면 부정 부패한 독재로 탈바꿈한다고 역사가 증명하고 있으니 장기 집권을 할 수 없는 제도만 확립하면 가장 이상적이라고 할 것이다.
월남의 비극이나 「아프가니스탄」의 현실을 보지 않더라도 지금까지의 의견이 결코 지나친 기우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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