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명소 아일랜드, 하인리히 뵐은 뭘 봤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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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전혜린(1934∼65)의 산문집 제목이기도 한 장편소설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를 쓴 독일 전후 작가 하인리히 뵐(1917∼85·사진). 그의 단편집 『아일랜드 일기』(미래의창)가 원로 독문학자 안인길(77)씨의 번역으로 국내 초역 출간됐다. 1972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뵐이 50년대 초반 아일랜드 서부를 둘러 본 후 쓴 18편을 묶은 것이다.

 아일랜드는 제임스 조이스·사무엘 베케트·윌리엄 버틀러 예이츠 등 걸출한 작가들을 많이 배출했다. 세상과 인생의 의미를 묻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척박한 생존 환경, 기구한 역사의 굴곡 때문일 것이다.

 뵐의 시선에 비친 아일랜드는 한결 다채롭다. 아이들과 가톨릭 신부, 맥주와 개를 수출하고 끊임없는 이민 행렬로 이전 100년 동안 인구가 700만 명에서 400만 명으로 준 상태였다. 그럼에도 “신은 시간을 만들 때 충분히 만들었다”며 느긋해 하고, 한 사람이 한 해 수영장만큼이나 많은 양의 차를 목구멍으로 흘려보내는 나라다. 이런 아일랜드를 묘사하는 뵐의 문장은 과학실험실의 렌즈만큼이나 차갑고 물기가 없다. 전혜린이 전후 독일에서 맞닥뜨렸을 마음 시린 풍경들이다.

신준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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