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청 컸군, 중저가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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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원 김일환(가명·47)씨는 21일 회사 부근인 서울 명동 SK텔레콤 을지로직영점에서 삼성전자의 보급형 스마트폰 ‘갤럭시윈’을 샀다. 원래 가격은 35만2000원이지만 보조금 15만원을 지원받아 20만2000원에 살 수 있었다. 그는 “기능에 큰 차이가 없고 쓰기에 무리가 없을 것 같아 저렴한 스마트폰을 골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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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을지로직영점의 이진우(30) 매니저는 “요즘은 스마트폰 성능이 워낙 좋아져서 그런지 고사양이 아닌 보급형 폰을 찾는 직장인도 늘고 있다”며 “중심가보다는 동네 상권으로 갈수록 더 많이 팔린다”고 말했다.

 중저가 스마트폰의 공습이 시작됐다. 이미 세계시장에선 중저가폰 시장이 초고가 프리미엄폰보다 훨씬 크다. 그런데 국내에서도 다양한 중저가폰이 출시되면서 그 영역을 넓혀 가고 있는 것이다.

 중앙일보가 입수한 미국의 시장조사업체 스트래티지애널리틱스(SA)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300달러 이상 프리미엄폰이 전체 스마트폰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36.2%(600만 대)였다. 그러나 이는 사업자와 유통 마진을 반영하지 않은 순수 도매가로, 글로벌 업계에서는 이 중 3분의 2 정도를 통상적인 프리미엄폰으로 간주한다. 결국 세계 스마트폰 시장에서 프리미엄폰이 차지하는 비중은 24.1%, 나머지 75.9%는 보급형(고가)이나 그보다 더 싼 초저가폰이 팔리는 셈이다. 이런 추세는 올해도 이어지고 있다.

 SA와 업계는 올해 말까지 프리미엄폰이 약 2억6860만 대, 보급형은 3억1930만 대, 중저가폰(중가+저가)은 5억9980만 대가 팔릴 것으로 보고 있다. 비중으로 치면 프리미엄폰 비중은 22.4%로 지난해보다 줄고, 중간지대에 포진한 보급형과 중저가폰의 시장점유율은 77.6%까지 늘어날 전망이다.

 프리미엄 스마트폰에 주력하던 애플과 국내 기업들이 저가폰을 앞세운 중국·유럽 업체의 도전을 받고 있는 것도 이런 중저가폰 수요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게 원인이라는 분석이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부랴부랴 대응에 나섰다. 기업의 간판(플래그십) 스마트폰을 대대적으로 홍보하되 잇따라 보급형 모델을 내놓고 있다.

 삼성전자는 ‘갤럭시’라는 이름을 그대로 쓰면서 갤럭시 그랜드2, 갤럭시 어드밴스, 갤럭시 W 등의 보급형 모델을 선보이고 있다. 갤럭시 어드밴스의 경우 4.7인치형(118.3mm) 화면에 한눈에 들어오는 큰 ‘이지모드’를 지원해 스마트폰을 처음 접하는 소비자도 쉽게 사용할 수 있다. LG전자 역시 20만원대의 F시리즈, L시리즈에 이어 지난 18일 G3의 보급형인 G3비트를 49만원대에 내놓았다. G3비트는 G3의 디자인과 핵심 기능을 그대로 본떠 왔는데 5인치 화면에 800만 화소 후면카메라, 셀프카메라를 찍을 때 주먹을 쥔 뒤 3초 뒤 자동으로 촬영되는 ‘제스처샷’ 등 카메라 기능을 강화했다.

 LG전자 모바일커뮤니케이션(MC)부문 관계자는 “중국이 저가폰을 앞세워 아래에서 위로 치고 올라온다면 우리는 위에서 아래로 내려가는 전략”이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글로벌 기업인데, 전 세계 80%에 육박하는 보급형·중저가 시장을 장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만 프리미엄폰의 경우 단위당 영업이익이 높고, 기업의 이미지와 직결되는 만큼 여전히 마케팅의 중심에 둘 수밖에 없다.

 삼성전자 정보기술·모바일(IM)부 관계자는 “(보급형 저가폰을) 늘려도 늘린다고 얘기를 안 할 뿐이지 다양한 제품 포트폴리오를 통해 시장의 수요에 적극 대응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세계시장과 달리 국내에선 중저가 스마트폰이 기를 펴지 못한 것은 이동통신사들이 약정제나 보조금을 활용해 단말기 가격을 확 낮춰버리기 때문이다. 삼성전자의 프리미엄 스마트폰인 갤럭시S5와 LG전자의 대표 스마트폰인 G3의 출고가(소비자가격)는 각각 86만6800원과 89만9800원. 모두 90만원에 육박하는 초고가폰이다. 하지만 보조금이나 약정제를 활용하면 단말기 가격은 절반까지 떨어진다. 이 때문에 소비자들은 비싼 스마트폰을 비싼 줄 모르고 사용하고 있는 셈이다. 고가폰일수록 판매점이나 대리점에 떨어지는 마진이 높기 때문에 소비자가 보급형 폰을 원해도 판매점이나 대리점 측에서 꺼리기 일쑤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10월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단통법) 시행으로 보조금 규모가 투명하게 공개되면 보급형 스마트폰을 찾는 소비자가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소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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