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APG 가입 … 명의는 중앙은행총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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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북한이 핵무기개발자금 및 테러자금 거래 방지를 위한 아시아·태평양자금세탁방지기구(APG)에 처음으로 가입했다 (중앙일보 7월 18일자 1면). APG는 18일 마카오 정례총회에서 북한과 투발루의 옵서버 가입을 만장일치로 승인했다고 발표했다. APG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산하의 ‘자금세탁방지 금융대책기구(FATF)’ 아태지역기구로 한국·미국·일본·중국·호주 등 41개 회원국이 활동하고 있다.

 이에 따라 북한은 옵서버 가입 요건인 ▶자금세탁, 테러자금 조달, 확산금융 방지 ▶지식 및 경험 공유 의무 ▶국제기준에 기초한 관련 입법 및 조치 등을 이행할 과제를 안게 됐다. APG는 향후 3년간 대표단의 북한 방문을 포함해 연례 보고서 작성 등 북한 활동을 평가한 후 정회원 가입을 논의할 예정이다.

 정부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북한이 APG 가입에 소극적이었던 점을 들어 이번에 가입하게 된 배경과 의도를 분석 중이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18일 “(북한의 의도는) 저희도 퀘스천(의문)”이라며 “북한이 금융제재를 완화시킬 방안을 찾는 과정에서 대외적 이미지 제고를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북한이 (APG에 가입하며) 지켜야 할 리스트가 많기에 어떤 정도의 진정성과 결단을 가지고 나왔는지 두고 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핵 포기 가능성이 낮은 북한이 국제사회에 보여주기식 행동으로 제재 완화를 모색할 가능성을 경계하겠다는 의미다.

 외교부에 따르면 북한은 지난해 상하이 APG 총회까지만 해도 옵서버 가입 요건의 세 번째 항목인 ‘국제기준 이행’에 난색을 보였다. 그러면서 “포괄적으로 유엔 결의를 준수한다는 내용을 제외해야 가입할 수 있다”는 입장을 보여왔다고 한다. 유엔 결의 중엔 자금세탁방지법, 핵테러 방지법, 핵물질 방지법 등의 내용이 포함돼 있는 만큼 북한이 추구하는 핵·경제 병진노선과 모순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달 북한이 “APG 규정을 모두 준수하겠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정부는 북한이 APG 규정을 준수하면 북한의 자금 투명성이 높아지는 장점이 있고, 규정을 준수하지 못해 옵서버 자격을 잃을 경우 대북제재를 더 공고히 할 수 있다고 판단해 북한의 가입을 반대하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북한이 규정을 엄격히 준수할지는 미지수다. 또 북한이 중앙은행 총재 명의로 APG 가입 서명을 한 것을 놓고도 엇갈린 관측이 나오고 있다. 북한 내부적으로 조율된 결정일 수도 있지만 추후 규제 준수에 대한 평가를 받는 과정에서 북한이 책임을 북한 중앙은행에 떠넘길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정부 관계자는 “(마카오에서) 북한대표단은 가입 승인 후 앞으로 APG 국제기준 이행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점을 강조했고, 우리 정부는 안보리 결의 이행 준수가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고 말했다.

 북한이 3년간 APG를 준수할 경우 이행 수준에 따라 정회원 가입이 가능하지만 전망은 불투명하다. APG의 상위 기구인 FATF는 지난 2월에도 북한과 이란을 돈세탁과 테러지원 위험국가로 지목하며 “최고 수준의 금융제재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정원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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