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나를 흔든 시 한 줄

안희정 충청남도지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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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동영상은 joongang.co.kr [최효정 기자]

들길에 떠가는 담배연기처럼

내 그리움은 흩어져 갔네.

언제이던가

이 들길 지나갈 길손이여

그대의 소매 속

향기로운 바람 드나들거든

아파 못 다한

어느 사내의 숨결이라고

가벼운 눈인사나, 보내다오.

- 신동엽(1930~69) ‘담배연기처럼’

1980년 고등학교 진학을 위해 처음으로 고향을 떠났다. 새 출발을 꿈꾸며 내가 당도한 세상은 군사독재로 암울했고 민주화운동으로 들끓었다. 나의 관심은 고등학교 담장을 넘어서고 있었다. 군사정권의 교내 정화위원회 설립을 반대하는 연설을 했고, 결국 자퇴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귀향했지만 부모님을 실망시킨 미안함에 가슴 저렸다. 들판을 쏘다니다 지치면 들녘에 누워 책을 읽었다. 신동엽의 시구는 내 얼어붙은 내면을 깨는 한 자루 도끼였다. 시인은 일제 강점기와 전쟁 등 비극적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새로운 미래를 위해 온 몸으로 노래했다. 자존심 강한 자퇴생 신분의 소년에게는 큰 위안이요 더없는 용기가 되었다. 진실을 피하지 않으면 더 좋은 세상이 올 것을 믿을 수 있었다. 30여 년이 지난 지금도 내 집무실 책상 위에 신동엽 시 전집이 첫째로 자리하고 있는 이유다. 그의 시는 열병을 앓던 내 청춘을 위로하는 손길이었고, 내 영혼에 내려오는 따스한 봄볕이었다.

안희정 충청남도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