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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상에 남은 20세기 최후의 「프런티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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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한반도 크기의 6O배정도
남극대륙의 넓이는 1천3백30만 평방㎞. 한반도의 60배에 해당한다.
이렇게 넓은 땅에 처음 영토권을 주장하고 나선 나라는 영국이었다. 1908년 영국이 「포클랜드」제도를 속령으로 한다고 선언했을 때 반대한 나라는 한 나라도 없었다. 『얼음과 바위뿐인 토지를 영토로 삼아서 어쩔 셈인가』라면서 냉소하는 정도였다. 영국이 내세운 영토권주장의 근거는 「쿠크」선장 이래의 탐험활동.
그 후 남극에 영토권을 주장하는 나라가 늘어서 1940년 「칠레」의 영토권 선언을 마지막으로 7개국이 되었다. 영·불·호·「노르웨이」·「칠레」·「아르헨티나」·「뉴질랜드」 등이다.
7개국은 남극점을 중심으로 부채꼴로 금을 그었는데, 「노르웨이」는 주장지역의 남쪽 한계가 없다.
영토권 주장 없는 지역도
영토권 주장의 공백지대도 있다. 이 지역은 미국의 탐험대가 활동했던 곳이다.
남극지도에 자를 대고 금을 긋기에 바빴던 나라들도 미국의 실적을 생각해서 남겨놓은 지역이 오늘날 남극대륙에서 영토권 주장이 없는 유일한 지역이다.
이들 7개국의 영토권 주장의 근거와 방법 등은 엉성하기 이를 데 없다.
불은 「뒤몽·뒤르빌」의 「아델릴랜드」 발견을, 「노르웨이」는 「아문센」의 탐험과 포경의 실적을, 호주와 「뉴질랜드」는 영국의 권리의 승계를, 「칠레」와 「아르헨티나」는 지리적으로 가깝다는 점과 「스페인」의 권리의 승계를 각각 내세우고 있다. 심지어는「칠레」 「아르헨티나」의 경우 남극대륙의 존재가 아직 확인되지 않았을 때의 고증문서를 근거의 하나로 내세우기도 한다.
46도의 자오선부터 서쪽에 있는 모든 토지를 「스페인」에 부여한다는 1493년 「로마」법황의 교서를 내세우기도 한다는 것이다.
『남극에는 자고로 사람이 살지 않았기 때문에, 다시 말해 전혀 임자가 없는 땅이었기 때문에 그런 식의 영토권 주장이 생겨나는 것이겠지요. 옛 탐험가들이 배를 타고 섬을 한번 구경했다던가, 해안에 발자국을 찍었다해서, 한번 가보지도 않았던 광대한 땅을 「자기 것」 이라고 할 수 있는 건지 의문입니다.』 답사 반과 남극에 쇄빙선을 함께 타고 간 유명한 남극전문가 「앨런·거니」씨(48)는 이렇게 각 국의 영토권 주장의 맹점을 찌르면서 웃었다. 「거니」씨는 영국계 미국인. 남극에 미쳐서 대학을 졸업한 후 줄곧 남극탐험과 연구에 몰두해왔다.
영토권주장 7개국 중 영·불·호·「노르웨이」·「뉴질랜드」 등 5개국은 서로 상의하고 경계선을 그어 그들 상호간에는 문제가 없다. 그러나 영·「칠레」·「아르헨티나」는 남극반도에서 서로 영토권주장이 중복되어 한때 옥신각신이 일기도 했다.
「내 땅·네 땅」의 개념 흐
원래 영토문제는 다분히 감정적인 것이다. 쓸모없는 한 조각의 섬을 놓고 피를 크게 홀리는 일이 비일비재. 남극에서 영토권 문제로 날카로워지는 것을 염려한 미국이 48년 남극대륙의 전역을 「유엔」의 신탁통치에 맡기자고 했고, 작년 인도와 「뉴질랜드」가 같은 제안을 했으나 관계국의 동의를 받지 못했다.
그러다가 미국의 「이니셔티브」, 소련의 적극찬동으로 59년 영토권 주장 7개국과 미·소·일·「벨기에」·남아공 등 5개국 모두 12개국이 남극조약에 서명해 61년부터 발핵, 남극대륙을 공동 관리하는 형식으로 오늘에 이르고 있다.
남극조약은 ①남극지역(남위60도 이남)을 일체의 군사목적에 이용치 않고 평화목적에만 이용한다 ②과학조사의 자유와 국제협력 ③영토권 주장의 동결 등이 골자.
영토권 주장은 어디까지나 조약이 유효한 기간 내에는 행사하지 않고 동결시킨다는 것이지,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는 단서가 야무지게 붙어 있다. 조약은 원칙적으로 무기한 유효하지만, 30년 후(1991년)남극조약협의회 「멤버」국의 요청이 있으면 그의 운용에 관해 재검토한다고 규정돼 있다(제12조). 이 조항 때문에 남극조약은 91년에 중대한 시련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영토권 주장 국들에 의해 영토권 동결조항이 삭제 또는 변경되던가, 아니면 남극조약자체가 사실상 종결될지도 모른다는 것이 국제사회의 일반적인 관측이다(남극조약은 6l년 발핵 후 「폴란드」·동독·화란·「덴마크」·「루마니아」·「체코」·「브라질」·「불가리아」·서독 등 9개국이 가입, 현재의 가입 국은 모두 21개국이다).
싸움 없는 유일한 국제사회
진짜문제는 지하자원. 자원이 많다는 사실이 자꾸 드러나면서, 자원문제가 영토권 문제와 불가분으로 새로운 각도에서 문제되고 있는 것이다. 남극조약에는 자원문제는 일체 규정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문제는 더욱 곤란해지고 있다.
남극은 무기를 갖고 있지 않은 채 인류가 평화 공존하는 유일한 국제사회다. 이를 상호 자유로이 시찰할 수 있는 남극이다. 이점은 현지의 답사결과 너무나 잘 지켜지고 있었다.
그러나 남극현지의 분위기는, 그 국가적인 배경과는 달리 훈훈하기 그지없었다.
『한국도 여기에 기지를 설치하러 온다구요. 그거 좋지요』
『당신네가 영토권을 주장하고 있는 남극반도에 설치할 생각입니다』
『「노·프로블럼」(문제없다)-.』
이런 식이었다. 「칠레」의 「프레이」 공군기지대장, 「아르헨티나」의 「브라운」기지대장 등을 비롯, 그 곳의 대원들도 아주 쉽게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었다. 그들의 사견이 정부의 견해와 같을 수는 없겠지만, 아무튼 남극현지에서는 「내 땅·네 땅」의 개념이 없는 그런 분위기였다.
영토권 주장의 근거가 박약하거나 없다시피 한 남극대륙, 그나마 영토권의 행사가 동결돼 있는, 그래서 아직은 임자 없는 땅 남극이다. 우리가 발붙이지 못할 땅이라고 미리 겁낼 필요는 없지 않을까.
「디셉션」도에서
글 손우주 특파원
사진 김택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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