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열 "금리 인하, 소비 도움 단정 못 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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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열

“가계 부채가 금융 부실로 이어질 수 있느냐 없느냐를 눈여겨보고 있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16일 열린 한경밀레니엄포럼에서 한 말이다. 중앙은행 총재로서 충분히 할 수 있는 원론적 발언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하지만 시점이 미묘했다. 이날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이끄는 박근혜 정부 2기 경제팀이 공식 출범했다.

최 부총리는 주택담보 대출 규제를 완화해 부동산 경기를 살리겠다는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혔다. 그런데 이 총재는 거꾸로 가계 빚의 심각성을 거론했다. 그는 “가계 부채가 1200조원에 이르고 있고 가처분 소득에 대한 가계 부채 비중이 160%로 다른 나라와 비교해도 높다”며 “미국 서브프라임모기지(비우량주택 담보대출) 사태가 터지기 직전에도 이 비율은 140%가 채 안 됐다”고 지적했다.

 이런 이유로 한은 내부에서는 주택담보인정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로 대표되는 대출 규제 완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 한은 인사는 “LTV·DTI는 적재물(가계 부채)이 많은 한국 경제에 있어 평형수와도 같은 역할을 한다. 평형수를 낮추면 배는 빨리 달릴 수 있겠지만 그만큼 위험에 취약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날 이 총재는 금리 문제도 언급했다. 강연에 이은 토론에서 “기준금리 인하의 효과가 반드시 가계 부채에 도움이 된다, 소비에 도움이 된다고 단언 하기는 상당히 어렵다. 원화 절상을 금리 인하로 직접 대응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밝혔다. 지난 10일 금융통화위원회 직후 회견에서 “경제의 하방 리스크(위험)가 커졌다”며 기준금리 인하 여지를 열어놨던 것과는 사뭇 다른 태도다.

 물론 금리 인하 ‘깜빡이’를 완전히 끈 건 아니다. “소비 심리가 가라앉는 문제가 조금 더 길게 갈 가능성이 있다”는 언급이 그렇다. 모처럼 정부가 일사불란하게 경기부양을 위해 드라이브를 걸고 나선 마당에 혼자 딴죽을 거는 듯한 모양새는 부담스러울 수 있다.

다만 ‘인하’로 일방적으로 쏠리는 시장과 정부의 기대에는 견제구를 한번 던질 필요가 있다는 판단을 했을 수 있다. 일각에선 이 총재가 최 부총리와 만나기 전 입지를 넓혀 놓기 위한 포석으로도 해석한다.

조현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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