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심장은 터보, 꿈이 달린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01면

캘리포니아 T는 페라리로 들어서는 관문이다. 알루미늄으로 만든 지붕은 스위치만 눌러 14초 만에 착착 접어넣을 수 있다.

#프롤로그

 “캘리포니아T는 출퇴근용으로도 어울리는 차다.”

 페라리로 출퇴근이라니, 귀를 의심할 수도 있다. 하지만 페라리의 주세페 카타네오 극동아시아 총괄 지사장은 캘리포니아T를 이렇게 소개했다. 지난 2일 서울 청담동에서 열린 발표회에서다. 그는 자신했다. “페라리 차 중 가장 쉽게 운전할 수 있어 인기가 높을 것”이라고. 머리로는 이해가 된다. 서열만 따지면 캘리포니아T는 페라리 입문용이다. 그래서 수퍼카나 스포츠카 대신 장거리 여정을 소화하는 그랜드 투어러(GT)로 정의한다. 하지만 가슴에 의문은 남았다. 모순된 명제에 대해 페라리가 내놓은 답에 대한 호기심이기도 했다. ‘생활형 페라리’가 과연 ‘궁극의 수퍼카’인 페라리의 가치를 어떻게 구현했을까. 

 기우였다. 캘리포니아T는 100% 페라리였다. 머리카락 펄럭이게 달려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운전석에 앉는 순간 확신하게 된다. 페라리 특유의 전투적 운전자세 때문이다. 캘리포니아는 팔꿈치를 바짝 치켜든 채 스티어링 휠을 쥐어야 한다. 두 팔 들고 공격 기회를 찾는 권투 선수와 비슷하다. 열쇠를 비틀어 전원을 넣고 빨간 버튼을 누르면, 캘리포니아가 우렁찬 포효와 함께 깨어난다. 사실 GT라는 페라리 주장만 믿고 나긋나긋한 주행감각을 예상했다. 전혀 아니었다. 페라리의 막내지만 피는 못 속였다. 조작과 반응의 마디마디가 왜곡 없이 투명했다. 브레이크를 밟는 압력만큼 제동력이 샘솟았고, 엔진은 맹렬히 돌 때 가장 쌩쌩했다. 몇 시간 운전하는 사이 잡념은 사라졌다. 셔츠는 땀으로 젖었다. 캘리포니아에서 운전은 곧 스포츠였다. 피 끓는 레이싱 혈통의 후손다웠다.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까지 속도를 높이는 데 걸리는 시간은 단 3.6초다. 최고속도는 시속 316㎞다.

 그런데 달랐다. 캘리포니아T의 운전대 놀림(스티어링)은 의외로 가벼웠다. 그러나 손아귀로 더없이 풍성한 정보를 전했다. 가속페달도 부드럽다. 그래서 섬세하게 다루기 좋다. 하체는 기울임을 자연스레 받아들인다. 코너에서 가속으로 꽁무니를 주저앉혔다 뒷바퀴 접지력을 살려 내빼는 재미는 예술이다.

 캘리포니아T는 앞모습을 대대적으로 성형했다. 순한 느낌의 눈망울을 위아래로 잡아당겨 매섭게 다듬었다. 보닛은 가운데 부위를 납작 다졌다. 그릴은 좌우로 넉넉히 찢었다. 그릴이 끝나는 지점엔 공기를 빨아들일 구멍을 뚫었다. 이 모든 요소가 어울린 결과 캘리포니아T가 달릴 때는 이전보다 훨씬 더 바닥에 낮게 깔리는 듯 보인다. 이 차의 전동접이식 지붕은 프레임과 패널 모두 알루미늄이다. 쇠 골격에 직물을 씌운 이른바 ‘소프트 톱’보다 무게가 오히려 가볍다. 지붕은 스위치만 눌러 14초 만에 벗길 수 있다. 캘리포니아T는 차체 골격과 껍데기도 12가지 종류의 알루미늄 합금으로 짰다.

 기존 캘리포니아에 ‘T’가 붙으면서 스며든 변화의 정점은 엔진이다. 이전 세대 마지막 버전인 캘리포니아 30은 V8 4.3L로 490마력을 냈다. 캘리포니아T 역시 엔진은 V8이다. 그런데 배기량을 3.8L로 줄였다. 대신 공기를 강제로 압축하는 터보차저를 물렸다. 27년 만에 장착한 터보엔진이다. 냉각성능도 높였다. 그 결과 70마력 더 치솟은 560마력을 뿜는다. 동시에 연비는 약 15% 개선했다. 빠른 만큼 잘 서기도 한다. 페라리에 따르면 시속 100㎞로 달리다 멈춰서는 데 34m면 충분하다. 브레이크는 열에 강한 카본-세라믹 로터로 무장했다. 특수 소재를 쓴 브레이크 패드는 폐차할 때까지 바꿀 일이 거의 없다.

▷여기를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에필로그

 “국내에서 시속 300㎞로 달릴 데가 어디 있어?”

 페라리 이야기를 꺼낼 때마다 받는 반문이다. 그런데 페라리의 매력은 최고속도가 아니다. 진정한 페라리의 맛은 페달로 엔진을 쥐락펴락 하고, 운전대로 차체를 호령하는 전 과정에 녹아들어 있다. 속도와 상황에 따라 다채로운 희열을 맛볼 수 있다. 운전이 능숙해질수록 쾌감의 폭은 넓어지고, 깊이는 심오해진다. 중독성도 짙다. 무료한 일상이 드라마처럼 바뀌는 순간이다. “우린 차가 아니라 꿈을 판다”던 루카 디 몬터제몰로 페라리 회장의 말이 다시 떠올랐다.

취재팀=김영훈·조혜경 기자, 김기범 로드테스트 편집장

ADVERTISEMENT
ADVERTISEMENT